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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행사' 실제 인물? 삼성 첫 女임원 출신, 그 책방은 특별했다 [비크닉]

중앙일보

입력

JTBC 드라마 ‘대행사’가 인기를 끌면서 이 사람의 이름도 함께 오르내렸습니다. 드라마 주인공 고아인(이보영 분)의 모델이 되었으리라 추정되는 인물. 바로 삼성그룹 최초 여성 임원이었던 최인아 제일기획 전 부사장입니다. 광고는 경쟁 PT로 살아남은 하나의 크리에이티브만 선택되는 시장입니다. 극단적인 전쟁터에서 살아남은 그에겐 특별한 노하우가 있지 않을까요? 최고의 자리에서 내려와 책방을 차린 지 만 7년. 그는 현재 어떤 고민을 하고 있을까요. 지난 3일 오후 서울 강남구 최인아책방에서 최인아 대표를 만나고 왔습니다.

최인아책방 최인아 대표. 사진 최인아대표

최인아책방 최인아 대표. 사진 최인아대표

고객 입장에서 질문하기  

최인아책방 책장에는 사람들이 한번쯤 고민할 법한 질문들로 분류된 책들이 놓여있다.

최인아책방 책장에는 사람들이 한번쯤 고민할 법한 질문들로 분류된 책들이 놓여있다.

2016년 8월 서울 강남구에 문을 연 최인아책방은 주인의 취향이 가득 담긴 독립서점입니다. 책방에 들어가자마자 마음을 읽은 듯한 질문들이 쏟아졌습니다. ‘서른 넘어 사춘기를 겪는 방황하는 영혼들에’, ‘스트레스, 무기력, 번아웃이라 느낄 때’…

기존 대형 서점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큐레이팅인데요. 책이 일종의 솔루션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믿음이 반영된 거라고 합니다.

“새로운 캠페인을 앞두고 정리가 안 되면 광화문 교보문고에 갔어요. 뒷짐을 지고 어슬렁거리다 보면 어느 순간 ‘아!’ 할 때가 있었거든요. 채 정리되지 않은 제 안의 생각과 책이 딱 만나 불이 들어오는 거죠. 일터에서 보내는 시간은 누구에게나 어떤 해법을 찾는 과정이에요. 책은 좋은 방법이라고 믿었죠.

단순히 책을 파는 가게가 아니라 책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이는 공간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서점이 아닌 ‘책방’을 열기로 했지만, 중요한 문제가 있었습니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유튜브를 찾는 디지털 시대. 사람들이 직접 오게끔 해야 했습니다.

광고 생활 30년, 몸에 밴 고객 중심 마인드를 작동시켰습니다. “책방에는 여가를 쪼개서 오는 거잖아요. 필수 활동 제외하면 몇 시간 안 돼요. 백화점 가는 대신, 친구 만나서 노는 시간 대신에 오는 거예요. 게다가 온라인으로 모든 게 가능한 시대, 몸을 움직여서라도 갈만한 가치가 있어야 했어요.”

그는 질문의 방향을 바꿨습니다. ‘사람들은 왜 책을 읽을까?’로요.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책을 살까’는 어쩌면 질문을 가장한 ‘목표’였어요. 독자 입장에서 책을 읽는 의미를 찾는 게 먼저였어요. 우리가 확인한 건 사람들은 어떤 도전을 앞두거나, 고민이 있을 때 책을 산다는 거였어요. 그 고민에 잘 답해야겠다 생각했고, 그래서 나온 게 고민별 분류였어요.”

창립 당시 그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12가지 주제를 정하고, 지인에게 책 추천을 받았대요. 더불어 인생의 책을 10권 골라달라 주문했죠. 정성스러운 추천 이유도 함께요. 이 귀한 책 리스트를 밑천으로 책방을 열었습니다. ‘거꾸로 내게 청하면 절대 못 할 일’을 해준 사람이 160여명이 됐대요.

책만 팔지 않아요 

[책에 담긴 추천 사유가 담긴 손편지. 사진 정세희 기자]

[책에 담긴 추천 사유가 담긴 손편지. 사진 정세희 기자]

최인아책방에서는 책만 팔지 않습니다. 회원에게는 추천 이유를 쓴 손편지와 함께 책이 배달돼요. 그리고 매달 저자와 독자들을 만나게 하는 오프라인 북토크를 열고 있죠.

“냉정하게 생각하면 그 시간에 다른 걸 하기보다 여기 오는 게 좋아야, 또 그게 반복돼야 생존할 수 있었어요. 책을 중심으로 하는 콘텐트를 만들고, 총체적 경험을 할 수 있는 곳으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얼마 전에 챗 GPT에 ‘오프라인 책방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해?’물어보니 딱 이 얘기를 하더군요. 얘는 이걸 어떻게 알았을까요. (웃음)”

코로나 위기도 있었지만 최인아책방은 명실상부한 서점 브랜드로 자리 잡았습니다. 강남 파이낸스센터에 2호점도 생겼는데요. 그는 ‘책만 팔지 않는다’는 방향성이 맞았다는 걸 증명한 시간이었다고 해요. 참, 홍대나 성수 같은 핫플레이스가 아닌 강남을 택한 이유가 있었다고 합니다.“우리 공간이 진정성을 가지려면 일하는 자, 고민 많은 사람이 모인 곳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강남 파이낸스센터에 자리한 최인아책방 2호점. 사진 최인아책방]

[강남 파이낸스센터에 자리한 최인아책방 2호점. 사진 최인아책방]

지름길에는 덫이 있다

독립서점의 매력은 주인장의 고민과 신념을 나눌 수 있다는 겁니다. 광고쟁이 시절 얘기를 빼놓을 수 없겠죠. 도대체 그는 어떻게 매일 새로운 아이디어와 영감을 얻었을까요.

‘지도 위의 대한민국은 작지만 구석구석 다녀 보면 참 큰 나라.’ 그가 만든 SK엔크린 광고 카피인데요. 평소 여행을 좋아하던 그가 구불구불한 산을 다니며 느꼈던 경험에서 나온 문구라고 합니다.

“유럽은 트인 벌판이 많지만, 우리나라는 산이 많아서 품고 있는 게 참 많구나. 제 창고에 있던 생각인데, 프로젝트를 만나 끄집어진 거예요. 아이디어는 경험하고 고민했던 것들이 때를 만나 발현돼요. 그래서 이 창고를 채우기 위해서 항상 질문하고, 안테나를 돌려야 해요.”

가뜩이나 일하는 것도 고단한데 항상 안테나를 세우고 있어야할까요? 그는 ‘지름길에는 덫이 있다’고 답했습니다.

“세상의 어떤 열매도 시간과 수고가 들어가지 않은 것은 없어요. 하지만 많은 사람이 종종 가지 않고 누리는 방법 혹은 수고를 덜 방법을 고민하는 것 같아요. 수고 자체가 어렵기는 하겠죠. 어차피 해봤자 안될까 걱정할 수도 있고요. 계산서는 정확해요. 애쓴 것은 절대 어디 가지 않고 창고에 쌓일 겁니다. 기회를 기다리면서요.”

직장에서 최소한만 일하는 게 합리적이라고 여기는, ‘조용한 사직’ 열풍에 대해 최 대표가 우려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회사에서 시키는 것만 하며 때우는 시간마저도 다시 오지 않을 인생의 일부라는 거죠.

“마음에 드는 회사에서, 노력하는 만큼 성과가 나오면 그게 가장 좋죠. 하지만 그렇지 않을 때가 사실 더 많거든요. 조용하게 그만둔 듯 지낸다? 그건 조직이 아니라 당신에게 좋지 않아요. 돈은 없다가도 생길 수도 있어요. 시간은 생기는 법이 없어요. 아무리 보톡스를 맞아도 시간이 늘어나지는 않잖아요. 회사에서 보내는 그 시간마저도 다시 돌아오지 않는 자산이고, 모든 경험은 어디 안 가고 쌓이게 될 거예요. 이건 회사가 아닌 바로 당신에게 좋은 거예요.”

최인아의 독서법 

독서법도 마찬가지입니다. 책에 응당 들여야 할 시간과 수고를 회피하지 말라고 강조했어요.

“책은 질문이에요. 책이 나오기까지는 저자에게 질문이 있었을 거예요. 이를 오랜 시간 천착한 끝에 빠르면 몇 달, 길게는 몇십 년 그가 도달한 어느 정도의 결론을 적은 게 책이거든요. 우리가 책을 잘 읽는다는 것은 그 질문을 찾는 것, 그리고 내 생각을 뭔지 생각해보는 거라고 생각해요.”

또 다른 팁은 책을 평가의 대상으로만 보지 말라는 거예요. 이건 영화나 드라마 등 다른 콘텐트를 즐길 때도 해당하는 건데요. 만든 사람의 의도를 읽으며 소통하는 게 흠뻑 누리는 방법이라고 했습니다.

책방 주인의 취향이 잔뜩 담긴 책이 궁금하시다고요? 최근에 읽은 일본 작가 마쓰이에 마사시의 소설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를 추천했어요.

“건축학자가 나오는 책인데 저는 일에 대한 열정으로 재해석해 읽었어요. 내가 어떤 일을 할 때 세상이 알아주지 않을 때, 내가 어떤 뜻이 있는데 이게 통하지 않을 때 우리는 절망하잖아요. 하지만 주인공은 아랑곳하지 않아요. 제 인생 오랜 화두이기도 한데, 이를 감각적으로 잘 표현한 것 같아요.”

육체와 정신 이원론자였던 그의 생각을 바꿔준 『움직임의 뇌과학』이라는 책도 함께 소개했어요.

좋은 질문이란  

질문을 던지며 사는 게 중요하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어요. 좋은 질문이 무엇인지 아는 게 어쩌면 더 필요할지도 몰라요.

성공한 광고인이자, 독립서점계의 브랜드가 된 그가 말하는 잘 질문하는 법을 전합니다.

“질문에도 퀄리티가 있어요. How(어떻게)는 주로 따라가는 자의 질문이에요. 하지만 뭔가를 만들어 내는 사람의 질문은 달라요. 그들은 이게 뭐지? 어디로 가야 할까? What, Why와 친한 것 같아요.

이런 질문을 품으면 발효가 일어나고, 그 끝에 생기는 게 인사이트예요. 당신의 창고를 좋은 질문으로 채우세요.”

[최인아책방의 독특한 큐레이팅. 책방은 독자가 품을만한 질문들을 대신 건네고, 책으로 솔루션을 제공해준다. 사진 정세희 기자]

[최인아책방의 독특한 큐레이팅. 책방은 독자가 품을만한 질문들을 대신 건네고, 책으로 솔루션을 제공해준다. 사진 정세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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