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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방미인 스키 여제’ 시프린, 월드컵 통산 최다 87승 금자탑

중앙일보

입력

11일 알파인 스키 월드컵 여자 회전에서 우승한 뒤 팬들의 환호에 손을 들어 답하는 시프린. AP=연합뉴스

11일 알파인 스키 월드컵 여자 회전에서 우승한 뒤 팬들의 환호에 손을 들어 답하는 시프린. AP=연합뉴스

‘스키 여제’ 미케일라 시프린(28·미국)이 알파인 스키의 역사를 새로 썼다. 다양한 분야에 뛰어난 재능을 보이는 ‘팔색조 매력’을 잠시 감추고 오롯이 스키에만 집중한 결과다.

시프린은 11일 스웨덴 오레에서 열린 2022~23시즌 국제스키연맹(FIS) 월드컵 알파인 스키 여자 회전에서 1·2차 합계 1분41초77로 우승했다. 2위 웬디 홀데네르(스위스·1분 42초 69)를 0.92초차로 제쳤다. 지난 2012년 12월 첫 승을 따낸 이후 11년 만에 월드컵 무대에서 거둔 통산 87번째 승리다.

남녀 선수를 통틀어 기존 최다 우승 기록 보유자인 잉에마르 스텐마르크(스웨덴·86승)를 뛰어넘어 새 역사를 세운 순간이기도 했다. 신기록이 탄생한 건 스텐마르크가 마지막 우승을 기록한 지난 1989년 이후 34년 만이다.

시프린은 지난 1월 여자부 신기록 보유자가 됐다. 이탈리아 크론 플라츠 월드컵에서 통산 83번째 금메달을 목에 걸며 기존 최다승 기록 보유자 린지 본(미국·82승)을 뛰어넘었다. 이후 두 달 동안 4승을 추가하며 알파인 스키 역사에 또 하나의 이정표를 세웠다.

질주하는 시프린. AFP=연합뉴스

질주하는 시프린. AFP=연합뉴스

‘여제’라는 별명답게 시프린은 알파인 스키 모든 종목에서 우승 이력을 쌓았다. 87승 중 주 종목인 회전에서 53승을 거뒀고 대회전(20승), 수퍼대회전, 평행(이상 5승), 활강(3승), 복합(1승)에서 시상대 맨 위에 섰다. 무려 13개의 금메달을 쓸어 담은 올 시즌은 시프린의 기량이 절정에 오른 시기이기도 하다.

시프린은 ‘팔방미인’, ‘발랄함’, ‘도전정신’ 등의 키워드로 대표되는 스포츠 스타다. 스키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다채로운 매력을 뽐낸다. 수준급 기타·피아노 연주 실력에 가수 못잖은 가창력을 겸비했다. 춤에도 일가견이 있다. 이따금씩 시프린이 직접 제작해 SNS 계정에 게재한 뮤직 비디오는 매번 100만 뷰 이상을 기록하는 인기 콘텐트다. 한때 유튜브에 음식을 만드는 동영상을 꾸준히 올리고, 해당 레시피를 정리한 요리책을 낸 적도 있다. SNS 팔로워는 128만명(인스타그램 기준)에 이른다.

엉뚱한 매력도 있다. ‘스키 여제’로 불리기 전까지 시프린은 ‘잠꾸러기님(Sir Naps-A-Lot)’으로 불렸다. 국제대회 도중 잠시라도 틈이 나면 쪽잠을 즐겨 생긴 별명이다. 지난 2014년 소치올림픽 기간 중엔 1차 레이스를 마치고 2차를 앞둔 긴장감 넘치는 분위기 속에서 홀로 쿨쿨 잠을 자는 장면이 포착돼 본의 아니게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선수 자신은 이에 대해 “눈을 뜨고 있을 땐 ‘빨리 빨리’를 입에 달고 산다. 눈을 감으면 모든 것을 멈추고 잠에 빠져든다. 그리고 새로운 에너지를 얻는다”고 설명했다.

아버지 제프 시프린(왼쪽)이 세상을 떠난 이후 시프린은 은퇴를 고려할 정도로 심각한 후유증을 겪었다. AP

아버지 제프 시프린(왼쪽)이 세상을 떠난 이후 시프린은 은퇴를 고려할 정도로 심각한 후유증을 겪었다. AP

언제나 밝게 웃던 시프린이 달라진 건 지난 2020년 아버지(제프 시프린)가 사망한 이후부터다. 표정과 행동은 물론, SNS에서도 웃음기를 지웠다. 한때 은퇴를 심각하게 고려할 만큼 방황하다 스키장으로 돌아온 뒤 시프린은 무섭게 집중했다. 근래 들어 그의 SNS 계정은 온통 경기 사진으로 가득하다. 이따금씩 아버지와의 추억이 담긴 사진을 게재하는 정도다.

시프린의 헬멧에는 ‘ABFTTB’라는 영문 이니셜이 새겨져 있다. ‘늘 남자보다 빠르게(Always Faster Than The Boys)’의 약자다. ‘여자 1위로 만족하지 않겠다’는 신념을 담아 어린 시절 직접 정한 삶의 모토는 월드컵 남·녀 통산 최다승 기록으로 실현됐다. 시프린의 다음 목표는 개인 통산 100승이다. 13승을 거둔 올 시즌 만큼의 경기력을 유지하면 다음 시즌 중 대기록 작성이 가능하다.

이와 관련해 시프린에게 ‘기록 보유자’ 타이틀을 넘겨준 스텐마르크는 독일 쥐트 도이체 차이퉁과의 인터뷰에서 “시프린이 스키를 타는 방식을 지켜볼 때마다 감탄스럽다”면서 “기술적으로 완벽하다. 알파인 스키 역사를 통틀어 최초의 월드컵 100승을 실현할 수 있는 유일한 선수”라고 칭찬했다.

통산 87번째 금메달을 확정 지은 직후 활짝 웃어 보이는 쉬프린.

통산 87번째 금메달을 확정 지은 직후 활짝 웃어 보이는 쉬프린.

FIS 월드컵 알파인 스키 여자부 회전에서 우승한 뒤 포디움에 올라가 두 손을 번쩍 치는 시프린. AFP=연합뉴스

FIS 월드컵 알파인 스키 여자부 회전에서 우승한 뒤 포디움에 올라가 두 손을 번쩍 치는 시프린.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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