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구 캄보디아댁 누적상금 2억…"엄마 아빠 우리 새로 집 짓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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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출신 피아비가 여자프로당구 LPBA 챔피언십에서 우승했다. 사진 PBA

캄보디아 출신 피아비가 여자프로당구 LPBA 챔피언십에서 우승했다. 사진 PBA

‘당구 캄보디아댁’ 스롱 피아비(33∙블루원리조트)가 2022~23시즌 여자프로당구 왕중왕에 등극했다.

피아비는 11일 경기도 고양시의 JTBC 스튜디오에서 열린 ‘2023 SK렌터카 LPBA 월드챔피언십’ 결승전에서 3시간여 풀세트 접전 끝에 김가영(하나카드)을 4-3(11-6, 8-11, 11-5, 11-3, 9-11, 8-11, 11-10)으로 꺾고 우승했다.

지난 시즌 같은 대회 결승에서 김가영에게 당했던 패배를 설욕했다. 피아비는 2021~22시즌 LPBA 무대에 뛰어든 뒤 통산 5승째를 거뒀다. 김가영과 최다 우승 타이기록을 세웠다. 시즌 상금 랭킹 32위까지 출전하는 월드챔피언십을 제패한 피아비는 LPBA 최초로 정규투어-팀리그-월드챔피언십을 동시 우승하는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결승전 다운 명승부였다. 피아비는 1-1로 맞선 3세트 7이닝째 터진 하이런(한이닝 연속 최다점) 6점을 앞세워 11-5로 가져갔다. 또 4세트에 2이닝과 3이닝에 10점을 몰아치면서 세트스코어 3-1로 앞서갔다. 그러나 5세트에 이어 6세트도 8-8에서 김가영에게 걸어치기 뱅크샷과 앞돌리기를 내주면서 결국 세트스코어 3-3이 됐다.

매서운 눈빛으로 공을 노려보는 피아비. 사진 PBA

매서운 눈빛으로 공을 노려보는 피아비. 사진 PBA

7세트에 0-3으로 끌려간 피아비는 5이닝에야 첫 득점을 뽑은 뒤 까다로운 배치를 풀어나가며 5-3으로 역전했다. 무서운 기세로 추격한 김가영이 9이닝째 옆돌리기 득점으로 9-7로 달아났다. 피아비가 또 공타에 그치자 김가영이 10이닝째 1점을 추가해 우승까지 단 1점만 남겨뒀다. 하지만 김가영의 득점 실패 배치로 인해 모인 적구를 피아비가 놓치지 않았다. 피아비는 뱅크샷을 성공해 9-10으로 추격한 뒤 까다로운 빗겨치기와 뒤돌리기를 차례로 성공시키며 11-10 대역전극을 완성했다.

피아비는 “‘내가 우승한 게 맞나’ 싶다. 믿기지 않고 아직도 멍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세트스코어 3-1로 앞서다가 3-3으로 쫓겼던 피아비는 “테이블이 좀 뻑뻑했고 김가영 선수가 쫓아오다 보니 힘들었다”고 속내를 털어놓았다. 이어 “7세트에 너무 조마조마했다. 득점이 되겠다 싶다가도 빠지는 게 반복되다 보니 체력적으로 엄청 힘들었다. 7세트 풀세트 10-10에서 한 점을 남기고 우승하는 순간을 그려왔는데, 이런 명경기가 나와 자랑스럽고 뿌듯하다”고 했다. 세계선수권대회에서도 치열한 승부를 많이 펼쳤던 피아비는 “오늘 경기가 최고였다. 그림도 프로답게 만들어주시고, 흡사 월드컵 같은 느낌이 든다”고 했다.

우승 트로피에 입을 맞추는 피아비. 사진 PBA

우승 트로피에 입을 맞추는 피아비. 사진 PBA

피아비는 한국으로 시집와 당구로 인생역전했는데, 이번 대회 우승 상금 7000만원을 더해 시즌 상금 1억1940만원을 기록했다. 누적 상금은 1억9880만원으로, 거의 2억원에 달한다. 소속팀(블루원리조트)에서는 대기업 부장급 연봉을 받는다. 또 건자재 기업 에스와이, 캄보디아에서 인기가 높은 자양강장제(박카스) 제조사인 동아제약 후원도 받는다.

캄보디아 출신 피아비는 어릴적 의사를 꿈꿨지만 가난 탓에 학업을 포기했다. 고향 캄퐁참에서 새벽 4시부터 밤 8시까지 감자와 고구마를 캐고 밀가루를 만들었다. 하루 종일 일하면 한국 돈으로 2500원을 벌었다. 일주일에 만원 정도 벌면 온 가족이 이틀 먹고 살 수 있었다.

피아비와 한국인 남편 김만식(오른쪽)씨. 박린 기자

피아비와 한국인 남편 김만식(오른쪽)씨. 박린 기자

2010년 충북 청주시에서 작은 인쇄소를 운영하던 ‘아빠보다 10살 많은’ 김만식(62)씨와 국제 결혼을 했다. 이듬해 동네 당구장을 따라 갔다. 심심해 하니 연습구를 줬는데 팔이 길어서인지 곧잘 쳤다. 그날 남편이 3만원짜리 큐를 사줬다. 피아비는 인쇄소에서 박스에 구멍을 뚫고 큐가 반듯하게 나가는 연습만 3개월간 했다.

피아비는 인터넷으로 가난한 캄보디아 아이들을 보며 매일 울었다. 남편 김씨는 “나도 1960년대 중반 보리밥도 못 먹고 자랐다. 당신이 당구만 잘 치면 저들을 도울 수 있다”며 대회 출전비 40만원씩을 기꺼이 내줬다. 집에 ‘나는 이들을 위해 살 것이다’라는 한글 문구와 캄보디아 아이들 사진이 걸어둔 피아비는 2018년 세계여자3쿠션선수권 3위, 이듬해 아시아3쿠션여자선수권대회 우승을 차지했다. 2021년 프로당구로 전향한 피아비는 작년 6월에는 편찮은 부모를 한국에 모셔와 치료해드렸고, 엄마와 아빠가 보는 앞에서 우승을 거두기도 했다.

캄보디아에서 봉사활동을 하는 피아비. 사진 피아비

캄보디아에서 봉사활동을 하는 피아비. 사진 피아비

남편 김만식씨는 최근 경기장 방문을 자제한다. 피아비는 “제가 불편할까봐 그런 것 같다. ‘경기장에서 마음 편하게 치라’고 오지 않겠단다(웃음). 집에서 TV로 경기를 보는데도 엄청 긴장한다. 실제로 보면 더 긴장할 것 같다고 못보시겠다며 안 온다”고 했다. ‘부모님과 통화했느냐’는 질문에는 “매일 한다. 옷 스타일도 정해준다. ‘꽃무늬는 피해라’, ‘빨강색 입어라’ 말씀하신다. 만날 왜 그렇게 힘들게 이기냐며 그러지 말라고 하신다. 제가 ‘그러면 재미없잖아’라고 한다”며 웃었다.

캄퐁참 부모님집 앞에서 포즈를 취한 피아비. 사진 피아비

캄퐁참 부모님집 앞에서 포즈를 취한 피아비. 사진 피아비

또 피아비는 이날 우승 후 “이 상금을 받아서 엄마, 아빠 집 짓고 싶었다. 몇십 년 동안 못해줘서 너무 죄송했다. 습하고 비 오면... 엄마 아빠, 우리 새로 집 짓자”라고 외쳤다. 피아비 부모는 캄보디아에서 35년 된 낡은 집에서 살고 있는데, 2019년부터 상금을 받기 시작한 피아비는 최근에 부모님 차도 사드렸다.

피아비는 요즘도 옷도 잘 안 사는 대신 기회가 될 때마다 마스크, 구충제, 학용품을 사 캄보디아에 보낸다. 비 시즌에는 고향을 찾아 봉사활동을 한다. 최근에는 캄보디아에 ‘피아비 스포츠 종합센터’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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