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정치 은퇴하니 꿀맛" 트럼프 저격 나선 뼛속까지 보수, 진보와 마주앉다

중앙일보

입력

2012년 백악관을 향해 뛰었던 밋 롬니(오른쪽) 당시 대통령 후보와 폴 라이언 부통령 후보. UPI=연합뉴스

2012년 백악관을 향해 뛰었던 밋 롬니(오른쪽) 당시 대통령 후보와 폴 라이언 부통령 후보. UPI=연합뉴스

한때 미국 공화당의 희망이었던 폴 라이언 전 부통령 후보가 오랜 침묵을 깼다. 뉴욕타임스(NYT)와의 7일(현지시간) 인터뷰를 통해서다. 정치 은퇴를 전격 선언하면서 안타까움을 안긴지 약 5년 만에 주요 뉴스 매체와 마주 앉았다. 반(反) 공화당 성향이 뚜렷한 NYT와의 인터뷰를 선택했다는 점도 흥미롭지만, 그가 강조한 메시지도 눈길을 끈다. NYT가 헤드라인으로도 뽑은 그의 메시지는 이렇다. “(도널드) 트럼프가 대선에 다시 출마해도 패배할 것이라는 점은 명확하다. 그의 열혈 지지자들도 그 점을 잘 알고 있다.” 뼛속까지 공화당인 그가, 공화당의 유력 대선 주자이자 전 대통령인 트럼프를 정면으로 공격한 것이다. 미국의 대통령 선거는 어느덧 내년이다.

폴 라이언은 미국 백인 남성 엘리트의 전형적 인물이다. 1998년 정계 진출 때부터 당 안팎에서 이목을 끌었다. 야심도 컸다. 2012년엔 밋 롬니 당시 공화당 대통령 후보가 라이언을 러닝메이트로 지목했다. 버락 오바마 당시 대통령의 재선을 막는데는 실패했지만 폴 라이언이라는 이름은 전 세계에 확실히 각인시켰다. 이를 토대로 45세가 된 2015년엔 하원의장직에 도전했고, 성공했다. 미국 하원에서 40대 인물이 의장이 된 건 124년만의 일이었다. 하원의장은 미국 대통령과 부통령에 이어 권력서열 3위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AF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AFP=연합뉴스

그랬던 그가 2018년 정계 은퇴를 돌연 선언했을 당시 나이는 48세. 그가 내놓은 은퇴의 변은 이랬다. “세 아이와 아내에게 충실해지고 싶다. 정치를 계속하면 아이들은 나를 ‘주말 아빠’라고만 기억하게 될 거다.” 1998년 정계 입문한지 꼭 20년 만에 은퇴를 선언했다. 은퇴 선언 뒤 바로 하원의장 의사봉도 내려놓았다. 그의 급작스런 변심엔 그러나 가족에 대한 애정 외에 다른 요소도 작용했다는 관측이 나왔다. 당시 트럼프가 정권을 잡으면서 선동의 정치, 가짜뉴스 범람 등에 그가 환멸을 느꼈다는 내용이다. 이번 NYT 인터뷰를 보면 이런 관측은 상당 부분 맞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NYT에 “정치란 원칙과 정책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 것이고 비관이 아닌 낙관, 절망이 아닌 희망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 것”이라고 운을 뗐다. 이어 “그러나 우리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가고 있다”며 “작금의 정치는 국민을 위한 설득의 기술이 아닌, 공연 예술과 같은 장르가 되어버렸고, 내 편 네편 가르기를 통해 전투를 벌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작심 발언을 했다. 그는 이어 “사회의 특정 구조가 정치를 이런 방향으로 잘못 끌고 왔다”고 말했다. 그 구조에 대해 설명하면서 등장하는 인물이 트럼프 전 대통령이다.

하원의장이었던 2017년 당시 폴 라이언. AP=연합뉴스

하원의장이었던 2017년 당시 폴 라이언. AP=연합뉴스

라이언은 NYT에 “트럼프의 가장 핵심적인 지지자들마저 알고 있는 사실”이라며 “그가 내년 대통령 선거에 다시 도전장을 낸다고 해도, 이길 가능성은 없다”고 단언했다. 이 단언은 그러나 팩트보다는 그의 희망에 근거한다. 공화당에 드리워진 트럼프의 그림자는 여전히 짙기 때문이다. 그는 “트럼프 재임 당시의 가장 큰 문제는 트럼프가 대통령이었다는 것”이라며 “대통령을 (여당인 공화당이) 백악관에서 쫓아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고 한탄했다.

라이언은 그러나 여전히 굳건한 보수다. 그는 “감세 및 규제 완화와 같은 정책을 위해 내 정치적 경력을 다 바쳤고, 후회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은퇴 후 폭스뉴스의 이사회 멤버이기도 하다. 친(親) 공화당 반(反) 민주당 기조가 뚜렷한 폭스뉴스의 이사인 그가 이념 스펙트럼의 대척점에 선 NYT와 인터뷰를 했다는 것 자체가, 그래도 미국 정치에 아직 희망이 남아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