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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등 664명 번호 우리가 찍어줬다"…로또 리딩방 실체 '충격'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저번 주에 한 곳에서 2등이 103명이 나왔잖아요. 그거 사장님이 저희 쪽에서 번호 받고 수수료 챙기려고 벽에 붙여 놓으신 거예요.”

무료로 로또 당첨 번호 예측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A 업체에 전화번호를 남기자, 곧 관계자가 전화를 걸어와 이렇게 속삭였다. 그는 “주기적으로 패턴 조정을 해줘야 당첨 번호가 나온다”며 1년에 16만 5000원짜리 회원권 구입을 권유했다. 또 다른 로또 당첨 번호 제공 업체는 “지난 회에 우리 회사에서 회원들에게 준 번호 중 2등 당첨 번호가 13개나 있었다. 선생님에게도 기회는 반드시 돌아간다”며 9만 9000원을 내고 유료 가입을 하라고 권했다.

5년간 16배로 증가한 로또 피해…서민 중장년 노려

A업체 관계자는 한 곳에서 2등 103명이 나온 건 자신이 제공한 번호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지난 6일 기획재정부는 보도자료를 내고 ″103명 중 100명이 동일 날짜 동일 시간대에 복권을 구입해 동일인으로 보인다″고 밝힌 바 있다. 슈퍼 사장 전종역(86)씨는 ″번호를 받아 붙였다는 것 등은 허튼소리"라며 "나도 로또 1회부터 매회 복권을 구입해 왔지만, 1·2등에 당첨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사진은 서울 동대문구의 J수퍼의 벽에 붙여진 문구. 사진 최서인 기자

A업체 관계자는 한 곳에서 2등 103명이 나온 건 자신이 제공한 번호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지난 6일 기획재정부는 보도자료를 내고 ″103명 중 100명이 동일 날짜 동일 시간대에 복권을 구입해 동일인으로 보인다″고 밝힌 바 있다. 슈퍼 사장 전종역(86)씨는 ″번호를 받아 붙였다는 것 등은 허튼소리"라며 "나도 로또 1회부터 매회 복권을 구입해 왔지만, 1·2등에 당첨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사진은 서울 동대문구의 J수퍼의 벽에 붙여진 문구. 사진 최서인 기자

로또 당첨 번호를 예측해 준다며 돈을 받는 이른바 ‘로또 리딩 업체’가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다. 이에 따라 관련 피해도 해마다 크게 증가하는 추세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로또 예측 서비스와 관련한 피해구제 접수 건수는 2018년 41건에서 지난해 655건으로 5년사이 약 16배로 늘었다. 지난해 접수된 주요 피해 유형을 살펴보면 계약해지 관련 건이 58.3%으로 가장 많았고, 계약불이행(29.9%), 청약철회(7.3%), 품질·AS 불만(4.4%)이 뒤를 이었다.

해당 업체들은 온라인 홈페이지나 ‘로또 리딩방’ 같은 단체 채팅방을 등을 통해 매주 로또 당첨 번호를 예측해 준다며 1년에 수십~수백만원의 돈을 받는다. 당첨 번호 중 짝수와 홀수의 비율, 10회 넘게 당첨 번호에 포함되지 않은 숫자, 2주 연속 나올 숫자 등을 통계학적으로 분석한다고 홍보하며 사람들을 끌어 모으는 것이다. 일부 업체는 ‘최첨단 인공지능(AI) 시스템’, ‘패턴을 분석하는 슈퍼컴퓨터’ 등 각종 첨단 기술을 들먹이며 서비스를 광고하거나, 수많은 당첨후기를 내세워 홍보하기도 한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업체들이 주로 노리는 건 중장년층 서민이다. 최근 3년간 A사이트를 이용했다는 주부 이모(49)씨는 해당 기간 총 300만원을 지불했다. 시작은 9만 9000원짜리 상품이었다. 지난 2019년 ‘개발자 4명이 직접 만든 프로그램’이라는 네이버 광고를 보고 ‘로또 리딩방’의 세계에 발을 들였다. ‘3등 한번만 나와도 손해는 아니겠지’라고 생각한 게 화근이었다. 유료 가입 후에도 로또에 당첨되지 않자, 해당 사이트 상담사는 “당첨 확률이 더 높은 번호를 주겠다”며 다시 연간 이용료가 66만원인 상품을 추천했다. 이씨는 “생활이 넉넉하지 않아 아이 학원비라도 벌고 싶다는 생각에 시작한 거였는데, 오히려 돈도 잃었고 매주 복권을 사는 동안 스트레스도 훨씬 심해졌다”고 말했다.

일부 업체는 ‘미당첨시 가입비 환불’을 약속하며 더 큰 돈을 가로채기도 한다. 회사원 곽모(50)씨가 이용한 사이트가 그랬다. 환불 보장이라는 말을 믿고 유료 서비스에 가입했지만, 곽씨는 결국 300만원의 손해를 입었고 돈은 한푼도 돌려받지 못했다. 곽씨는 “‘이게 되겠어?’라고 생각하며 발을 들였지만, 한편으론 ‘혹시’하는 기대도 있었다”며 “맨날 똑같은 월급 봉투인데, 어디서 이렇게 큰 돈을 한 번 얻어보겠나. 확률이 조금이라도 높아져서 그런 행운이 나에게 돌아왔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이었다”고 말했다. 자영업자인 김모(53)씨 역시 환불 약속을 믿고 서비스에 가입했다가 3년간 총 280만원을 손해 봤다. 김씨는 “빚이라도 탕감한다면 생활하는 데 훨씬 낫겠다고 생각했지만 헛된 기대였다”며 “3년이 지나 더 이상 못하겠으니 환불해달라고 말했지만 코로나19에 태풍까지 갖은 핑계를 대며 환불을 피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상 사기지만…처벌까지 갈 수는 없어

여러 로또 사이트들은 무료로 당첨 예측 번호를 제공한다며 소비자들에게 가입을 유도한 뒤, ″당첨 확률이 더 높다″며 유료 프로그램 가입을 권유한다. 개중에는 2-3년간 1,2등에 당첨되지 못하면 100% 환불해주겠다고 허위 광고해 재판을 받고 있는 곳들도 있지만, 상호를 바꾸어서 영업 중이다. 사진 각 사이트 캡처

여러 로또 사이트들은 무료로 당첨 예측 번호를 제공한다며 소비자들에게 가입을 유도한 뒤, ″당첨 확률이 더 높다″며 유료 프로그램 가입을 권유한다. 개중에는 2-3년간 1,2등에 당첨되지 못하면 100% 환불해주겠다고 허위 광고해 재판을 받고 있는 곳들도 있지만, 상호를 바꾸어서 영업 중이다. 사진 각 사이트 캡처

통계 전문가들은 이 같은 ‘로또 리딩 서비스’는 사실상 사기라고 입을 모았다. 로또는 매회 각각이 독립시행이라 번호를 예측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장원철 서울대 통계학과 교수는 “예를 들어 주사위를 60번 던지면 모든 번호가 나올 확률이 1/6로 동일하지만 실제로 번호들이 정확히 10번씩 나오는 것은 아니다. 이런 차이를 가지고 특정 번호가 나올 확률이 높다고 주장하는 게 지금 예측 사이트들이 말하는 소위 ‘패턴 분석’”이라며 “복권위원회에 있는 자료를 바탕으로 간단한 분석을 직접해 본 결과 특정 번호가 더 나온다고 할 수는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지적했다.

때문에 업체들의 당첨 약속이나 홍보 등은 대부분 허위 광고에 해당한다. 또한 당첨 후기 역시 업체에서 조작한 허위 후기인 경우가 많다. 실제 지난해 8월 경기북부경찰청이 당첨 후기를 조작하고 거짓 광고를 하며 환불을 회피한 혐의로 로또 예측 번호 사이트 운영자 52명을 검거하기도 했다.

그러나 피해 사례가 크게 늘고 있는 것에 비해 업체 운영자들이 형사 처벌을 받는 경우가 흔하지는 않다. 피해 신고가 접수되면 처벌은 가능하지만, 선제적으로 단속에 나서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경찰 관계자는 “로또 번호 예측을 대가로 돈을 받는다는 게 구조적으로는 불법적인 행위가 동반될 확률이 아주 높지만, 현실적으로는 수사에 있어 난해한 부분들이 많이 있다. 노하우나 신기술이 있다는 광고 내용이 거짓이라는 걸 명확하게 증명하고, 돈을 뜯어내기 위해 일부러 사람들을 속였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도 쉽지는 않다”며 “마치 점집에서 사주를 봐주는 행위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일제히 단속하기는 어려운 것과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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