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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지진 또 온다" 12년 전 2만명 숨진 日의 '국토강인화 대책'

중앙일보

입력

7일 오전 일본 도쿄(東京) 지요다(千代田)구의 '기적의 소나무 뿌리(奇跡の一本松の根)' 전시장. 1층 전체에 직경 13m의 거대한 나무뿌리가 자리를 잡았다. 12년 전인 지난 2011년 3월 11일, 일본 도호쿠(東北) 지방을 덮친 대지진과 쓰나미로 괴멸적인 피해를 입은 이와테(岩手)현 리쿠젠다카타(陸前高田) 해안의 소나무 7만 그루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나무의 뿌리다.

7일 일본 도쿄의 한 전시장에 12년 전 동일본대지진에서 살아남은 '기적의 소나무' 뿌리가 전시돼 있다. 이영희 특파원

7일 일본 도쿄의 한 전시장에 12년 전 동일본대지진에서 살아남은 '기적의 소나무' 뿌리가 전시돼 있다. 이영희 특파원

당시 일본 국민은 '희망의 상징'이라며 환호했지만, 조사 결과 바닷물 침투로 뿌리까지 다 썩은 것으로 밝혀졌다. 시 당국은 벌채를 결정했다가 보전 여론이 높아지자 원래 나무를 뽑아내고 몸통과 가지에 합성수지 등을 채워 같은 자리에 똑같은 모양의 나무 조형물을 세웠다.

뽑힌 나무의 뿌리는 이번 도쿄 전시를 비롯해 일본 전역을 돌며 사람들에게 그날의 참사를 전하고 있다. 전시 기획에 참여한 건축가 나이토 히로시(内藤廣)는 "이 뿌리를 통해 자연의 강한 생명력을 확인하는 동시에 희미해져 가는 재해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재해 견디는 강인한 국토 만들자"   

12년 전 2만 명이 넘는 사망자를 낸 동일본대지진으로 일본은 사회 전체가 마비되는 미증유의 경험을 했다. 지진이 잦은 일본은 일찍이 1981년 재해대책기본법을 제정하고 모든 건물이 진도 7(진도는 특정 위치에서 느끼는 흔들림을 수치화한 것)의 강진에도 무너지지 않도록 엄격한 내진설계 기준을 적용해왔다. 실제로 동일본대지진 당시에도 건축물 붕괴로 인한 피해는 크지 않았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거대 쓰나미와 교통·통신 등 사회인프라 마비로 인한 피해는 예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극심했다.

동일본대지진 1년 뒤인 2012년 2월 일본 이와테현 리쿠젠다카타시에 서 있는 기적의 소나무. 쓰나미에 휩쓸린 건물 잔해와 쓰레기가 나무 주변에 쌓여있다. 서승욱 특파원

동일본대지진 1년 뒤인 2012년 2월 일본 이와테현 리쿠젠다카타시에 서 있는 기적의 소나무. 쓰나미에 휩쓸린 건물 잔해와 쓰레기가 나무 주변에 쌓여있다. 서승욱 특파원

이에 따라 일본 정부는 지진·해일·수해 등 자연재해로 치명적인 피해를 입지 않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국토 강인화(强靭化) 대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했다. 2013년 국토강인화기본법을 제정한 뒤 총리를 본부장으로 추진본부를 구성하고 기본계획을 수립했다. 주택·도시 분야에선 밀집 시가지 화재 대책, 정보통신 분야에선 장기 전력 공급 정지 및 통신망 마비 대책을 갖추고 도로·철도 등의 내진 설계를 강화하는 등 범국가적 차원에서 대책 마련에 나섰다.

이 계획은 5년마다 평가 및 재조정을 거치는데 세부 시책은 지자체들이 지역 특성에 맞춰 마련한다. 지난해 말 도쿄도는 내진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도내 주택 76만 호에 대한 공사 지원, 고층주택 비상용 전원 확보, 재해 대비 식음료품 비축 등에 2040년까지 총 15조엔(약 143조원)을 책정한다는 강인화 계획을 발표했다.

일본 정부는 앞으로 30년 이내 서부 난카이 트로프에서 규모 8 이상의 지진이 70~80%의 확률로, 수도 직하형 대지진은 70%의 확률로 발생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는 올해 1월 국회 시정방침 연설에서 "빈발하는 재해에 대한 대응은 미루지 못하는 중요한 과제"라며 내년까지 새로운 차원의 보다 강력한 강인화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튀르키예 현장에 재해전문가 파견

일본 정부는 이처럼 축적한 재해 대응 노하우를 다른 재난 국가들과 나누는 데도 앞장서고 있다. 지구촌을 위협하는 기상이변과 자연재해 등을 '기후안전보장'의 개념에서 접근해 국제적 위상 제고에 적극 활용한다는 전략이다.

지난해 12월 일본정부가 발표한 새로운 안전보장전략에도 "기후변화 등 범지구적 과제 해결을 위한 노력을 보다 적극적으로 경주할 것"이라고 적시했다. 외무성은 개발도상국을 대상으로 한 정부개발원조(ODA)에 일본의 강점인 방재기술 등을 활용한 질 높은 인프라를 공급하는 내용 등을 담은 새로운 개발협력대강을 올해 상반기에 발표한다.

지난 2월 14일 튀르키예 아다나 공군 비행장에서 군인들이 일본으로부터 도착한 지원 물자를 비행기에서 내리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 2월 14일 튀르키예 아다나 공군 비행장에서 군인들이 일본으로부터 도착한 지원 물자를 비행기에서 내리고 있다. AP=연합뉴스

이번 튀르키예·시리아 지진에서 일본 정부는 2700만 달러(약 351억원)의 긴급 인도지원을 결정했고, 총 250명의 구조대와 의료진을 현장에 보냈다. 지난 6일엔 재해 복구 작업 지원을 위해 건축·토목 전문가 등 11명을 파견했다. 외무성 관계자는 "앞으로도 현지 상황에 따라 추가 인력을 파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피난민 복귀는 18%뿐, 오염수 외교 과제로

하지만 정작 일본 역시 12년 전의 지진이 남긴 문제들을 해결하느라 여전히 골머리를 앓고 있다. 후쿠시마(福島) 등 당시 피해 지역에는 아직도 재난의 상흔이 여전하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12년간의 복구, 부흥 작업을 통해 당시 파괴됐던 도로와 생활기반시설 등 인프라 정비는 90% 이상 완료됐다. 하지만 재해로 고향을 떠나야 했던 주민 상당수는 돌아오지 않고 있다. 6일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당시 후쿠시마현 11개 시정촌에서 약 8만 8000명이 피난을 갔는데 현재까지 돌아온 인구는 약 18%에 그치고 있다.

2021년 2월, 일본 후쿠시마 제1 원전 부지에 오염수를 담은 탱크가 늘어서 있다. 연합뉴스

2021년 2월, 일본 후쿠시마 제1 원전 부지에 오염수를 담은 탱크가 늘어서 있다. 연합뉴스

더 큰 문제는 오염수다. 사고 발생 후 후쿠시마 제1 원전에서는 원전 부지로 유입되는 지하수와 빗물 등으로 하루 100㎥ 이상의 오염수가 발생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이 오염수를 다핵종제거설비(ALPS)로 정화해 방사성 물질 농도를 낮춘 후 저장 탱크에 보관하고 있으나 오염수를 무기한 보관하기는 어렵다는 판단에 따라 올해 여름부터 바다로 방출할 방침이다.

이에 현지 어민은 물론 한국·중국과 태평양 도서국 등이 반대 입장을 굽히지 않으면서 일본 정부도 대응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당장 기시다 총리는 지난달 도쿄에서 태평양도서국포럼(PIF) 대표단과 만나 오염수 방류의 안전성을 직접 강조하고 나섰다. 일본 정부는 또 4월 열리는 주요 7개국(G7) 환경장관 회의 등을 통해 국제사회를 설득하기 위한 외교에 적극 나설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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