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상품·서비스 모두 부진, 경상수지 적자 시름

중앙선데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830호 01면

경상수지가 1월 사상 최대 적자를 기록하면서 한국 경제에 경고음이 커지고 있다. 반도체 한파와 중국 경기 부진 여파다. 중국의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 효과가 기대에 못 미칠 경우 적자 폭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10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국제수지 잠정통계에 따르면 지난 1월 경상수지는 45억2000만 달러 적자를 기록하며 두 달 만에 적자로 돌아섰다. 1980년 관련 통계 작성 이래 최대 규모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이 시작됐던 2020년 4월(40억2000만 달러), 세계금융위기였던 2008년 8월(38억4500만 달러)보다도 적자 규모가 크다. 1년 전보다 67억6000만 달러가 줄었다.

경상수지는 한 국가가 무역, 해외 투자, 서비스 교역 등 모든 경제 영역을 통틀어 해외에서 얼마나 돈을 벌고 있는지 보여주는 지표다. 경상수지의 급격한 악화는 수출 부진 심화로 눈덩이처럼 불어난 무역적자 때문이다. 경상수지를 구성하는 항목 중 무역수지와 연동되는 ‘상품수지’는 74억6000만 달러 적자로 역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1년 전(15억4000만 달러 흑자)과 비교해 90억 달러나 급감했다. 특히 상품수지는 지난해 11월부터 4개월 연속 적자를 냈는데, 이는 외환위기 때인 1996년 1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16개월 연속 적자를 기록한 이후 최초라고 한은은 설명했다.

구체적으로 보면 수출(480억 달러)이 전년 대비 14.9% 줄었다. 글로벌 경기 둔화로 주력 수출 품목인 반도체(-43.4%)는 물론 철강 제품(-24.0%), 화학공업 제품(-18.6%)이 부진했다. 중국으로의 수출이 31.4%나 줄었고 동남아(-27.9%)·일본(-12.7%)으로의 수출도 위축됐다. 반면 수입(554억6000만 달러)은 1년 전보다 1.1%(6억2000만 달러) 증가했다. 이동원 한은 금융통계부장은 “상품수지가 최대 적자를 기록한 것은 최대 수출품목인 반도체와 최대교역국인 중국의 부진이 동시에 나타난 결과”라고 말했다.

한국 경제의 고질적인 문제로 꼽히는 여행수지 적자가 확대하면서 서비스수지도 나빠졌다. 1월 서비스수지는 32억7000만 달러 적자로 적자 폭이 지난해보다 24억4000만 달러 확대됐다. 특히 해외여행 재개와 중국 관광객 감소 등의 영향으로 여행수지 적자 규모가 지난해 1월 5억5000만 달러에서 올해 1월 14억9000만 달러로 늘었다.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은 그간 상품수지 흑자로 서비스수지 적자의 ‘구멍’을 메웠지만, 이번에는 둘 다 부진했기 때문에 사상 최대의 경상수지 적자를 기록한 것이다.

그나마 투자소득 등을 집계하는 본원소득수지가 적자 폭을 줄였다. 1년 전보다 45억1000만 달러 증가한 63억8000만 달러를 기록했다. 이는 국내기업이 해외 현지법인으로부터 받은 배당 수입이 늘면서, 배당소득수지(56억6000만 달러)가 전년 대비 45억5000만 달러 증가한 덕분이다.

경상수지 적자→원화가치 하락→인플레 자극 악순환 우려

수출 부진 여파 속에 지난 1월 경상수지가 45억2000만 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사진은 부산 남구 감만부두 전경. 송봉근 기자

수출 부진 여파 속에 지난 1월 경상수지가 45억2000만 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사진은 부산 남구 감만부두 전경. 송봉근 기자

문제는 경상수지 적자 흐름이 상반기에 계속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한국의 무역은 지난달까지 1년째 적자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고, 특히 수출은 5개월 연속 전년대비 역성장을 이어가고 있어서다. 이 부장은 “2월 들어 수출 등 지표개선 흐름이 나타났으나 단기간 경상수지가 흑자를 기록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면서 “상반기 44억 달러 규모의 경상수지 적자를 예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한은은 3월부터 동절기 에너지 수입 수요가 줄고, 4월부터 중국·일본·동남아시아 등에서의 관광객이 늘면서 무역수지가 점차 나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반기에는 글로벌 경기가 개선되고, 중국의 리오프닝이 본격화하면서 연간으로는 260억 달러의 경상수지 흑자를 낼 것으로 보고 있다. 한은은 연간 경상수지 적자가 1990~97년 사이 7번(93년만 제외) 있었는데 그때와 비교해도 지금은 양호한 수준이라고 강조했다.

이 부장은 “1월에는 수출 부진으로 이례적으로 무역수지 적자가 크게 발생했지만 2월에는 적자 규모가 상당 폭 줄기 때문에 상품수지가 균형수준에 좀 가깝게 올 것으로 본다”면서 “연간으로는 아직 전망 경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수준으로 맞게 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일각에서는 경상수지 적자가 금융시장이나 한국 경제 전체의 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경상수지가 마이너스로 돌아서면, 원화가치는 하락 압박을 받는다. 이는 수입물가를 높여 인플레이션을 자극하고, 다시 교역조건이 나빠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과거에는 원화가치 하락이 한국 상품의 가격 경쟁력을 높여줬지만, 지금은 해외 현지에서 완성품을 만드는 기업이 늘면서 원자재 등을 비싸게 사와야 하는 부담이 커졌다. 또 경상수지 적자가 지속하면 대외부채가 늘어나 원금 상환과 이자 부담이 커지고, 이는 국가 전체의 신용등급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중국 리오프닝 영향으로 하반기로 갈수록 수출은 늘겠지만, 중국이 부품·소재 분야에서 한국에 의존하는 정도가 과거보다 줄었다”며 “중국 리오프닝의 효과가 제한적일 수 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하 교수는 이어 “중국의 원자재 수요가 늘면서 국제 가격을 끌어올리면, 한국의 경상수지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경상수지가 대외건전성의 핵심 지표인 만큼 흑자 전환에 총력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방기선 기획재정부 1차관은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비상경제차관회의에서 “대외건전성의 핵심 척도인 경상수지가 안정적 흑자 기조를 지속할 수 있도록 모든 부처가 원팀이 되어 총력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국제 관광 재개 분위기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방한 관광 활성화, 국내 여행 붐업 등 서비스 수지 개선을 위한 방안을 모색할 방침이다. 아울러 공급망 리스크 대응을 위해 직접 관리하는 경제안보 핵심품목 재정비를 추진한다. 구체적으로 바이오, 전기차 등 신산업과 반도체 등 핵심 산업의 필수 소재를 선제적으로 핵심 품목에 반영할 계획이다. 개편안은 차기 대외경제장관회의를 통해 확정한다.

이와 함께 전 국민이 참여하는 에너지 절약 방안을 발표한다. 방 차관은 “물가안정·무역수지 적자 완화 등을 위해서 모든 국민이 힘을 합쳐 에너지 소비를 절감할 필요가 있다”며 “그동안 공공 부문을 중심으로 추진해온 동절기 에너지 절약 노력을 연중 상시화하고 전 국민이 동참하는 강력한 절약 운동으로 확산할 것”이라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