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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 ‘상처뿐인 진흙탕 게임’…김 대표 통합 리더십 급선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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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0호 05면

[여의도 톺아보기] 국민의힘 김기현호 과제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와 최고위원들이 10일 정책 의총에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와 최고위원들이 10일 정책 의총에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국민의힘 전당대회가 끝났다. 이변과 돌풍은 없었다. 당원들은 변화보다 안정을 택했다. 친윤계 지지를 받은 김기현 후보가 과반 득표에 성공하며 새 대표가 됐다. 최고위원 네 명과 청년최고위원도 전원 친윤계가 차지했다. 이준석 전 대표가 지원한 ‘천아용인’ 네 후보는 모두 탈락했다. 이제 집권 여당엔 명실상부한 ‘윤석열 대통령 직할 체제’가 구축됐다. 이는 윤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와 더불어 이제 내부 분란은 끝내고 안정된 리더십을 바탕으로 일치단결해 윤석열 정부를 성공시켜 내년 총선에서 승리하라는 당원들의 염원이 작용한 결과로 풀이된다.

전대가 ‘윤심의 완벽한 승리’로 귀결된 배경엔 몇 가지 요인이 자리 잡고 있다. 첫째, 총선을 의식한 ‘전략 투표’나 수직적 당정 관계에 대한 ‘반발 투표’보다는 당정 일체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조직 투표’가 힘을 발휘했다. 둘째, 전대가 네거티브로 일관된 데 대한 당원들의 반발 심리도 컸다. 막판 고소·고발까지 벌어진 걸 ‘막장 내부 총질’로 받아들인 당원들이 ‘역심판론’을 제기하고 나섰다는 분석이다. 셋째, 이준석 전 대표의 지지를 받은 천하람 후보가 현역 중진 의원들을 제치고 컷오프를 통과하는 이변을 연출하자 위기감을 느낀 강성 당원들이 투표에 적극 참여한 게 결국 김 대표의 반사이익으로 이어졌다는 평가다.

이번 전대는 높은 투표율 등으로 일단 흥행엔 성공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에 못지않은 상처를 남겼다. 무엇보다 ‘100% 당원 투표’로 전대 룰을 변경하고 대통령실이 전대에 개입해 특정 후보를 주저앉히며 경쟁과 참여를 제약·배제하면서 민주주의의 기본인 ‘다원성’을 스스로 무너뜨렸다는 지적이 적잖다. 더 나아가 비전과 정책의 진검승부 대신 네거티브 공방으로 치달으면서 ‘누가 이겨도 상처뿐인 진흙탕 게임’을 자초했다는 비판도 면키 어렵게 됐다.

새 당대표도 승리에 도취되지 말고, 이 같은 현실을 냉정히 바라볼 필요가 있다. ‘윤심’의 벽을 넘진 못했지만 낙선한 세 후보가 얻은 ‘47%’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숫자다. 견제와 균형을 바라는 당심 또한 만만찮다는 게 확인된 만큼 통합의 리더십을 발휘하는 게 급선무다. 당장 당직 인선부터 탕평 원칙을 지키고 총선을 승리로 이끌 능력 있는 인사를 계파를 초월해 등용하는 등 ‘행동이 동반되는 통합’의 모습을 보여야 할 때다.

김 대표가 정치 개혁에 얼마나 적극 나설지도 관심사다. 실제로 최근 여의도 정가에선 선거제도 개편보다 오히려 정치·정당 개혁이 더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국민적 지탄의 대상이 된 지 오래인 한국의 정치 현실을 과감히 뜯어고치지 않고서는 여야 모두 표의 심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란 위기의식 또한 팽배한 실정이다. 핵심은 정치 양극화의 주범인 낡고 전근대적인 정당 시스템을 개혁하는 것이다. 특히 객관적이고 공정한 틀 속에서 공천을 투명하게 관리하는 ‘시스템 공천’을 갖출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총선 공천을 앞두고 또다시 친윤·비윤 갈등이 재연될 경우 국민의힘과 김 대표의 미래는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친윤계 대리인’이란 이미지를 극복하는 것도 김 대표에게 주어진 주요 과제 중 하나다. 집권당 대표가 대통령실의 통제에 따라 움직이면 당정 일체는 이뤄지겠지만 대신 당의 자율성과 독립성은 사라지고 민심과도 멀어지기 쉽다는 점에서다. 그런 만큼 정당민주주의와 책임정치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느냐에 따라 김 대표의 정치적 위상과 영향력도 달라질 공산이 크다.

여야 협치를 통한 민생 회복에 역점을 둬야 한다는 목소리도 크다. 김 대표도 지난 8일 대표 수락 연설에서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민생”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개혁법안 처리는 국회 과반 의석을 갖고 있는 야당의 협조 없인 불가능한 게 냉정한 현실이다. 마침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민생과 관련해 진정성을 갖고 김 대표와 협력해야 할 때는 머리를 맞대겠다”고 약속한 만큼 형식적인 대표 회동을 넘어 대통령과 여야 대표가 함께하는 ‘민생 살리기 원포인트 회동’ 등을 주도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

민주당도 위기 상황이긴 마찬가지다. 이 대표 체포동의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부결된 이후 여론은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체포동의안 부결은 ‘잘못된 결정’이란 의견과 ‘이 대표가 물러나야 한다’는 응답이 절반을 넘고 있다. 당 지지율도 30%를 밑도는 실정이다. 주목할 부분은 내년 총선의 최대 격전지로 꼽히는 서울의 민주당 지지율조차 국민의힘 지지율에 뒤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 대표 체포동의안 표결 때 당내 반란표 중 상당수가 여론에 민감한 수도권 출신 의원들로부터 나왔을 것이란 분석도 제기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 같은 상황을 감안할 때 향후 여야 관계와 정국에 대한 전망은 결코 밝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여의도 정가에서도 여당은 친윤 일색, 야당은 친명 일색인 현실 속에서 ‘윤 대통령의 국민의힘’과 ‘이 대표의 민주당’이 내년 총선 승리를 위해 강 대 강으로 맞붙으며 ‘대선 2라운드’를 치르게 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여론조사에서도 ‘현 정부를 견제하기 위해 야당을 지원하겠다’는 주장과 ‘현 정부를 지원하기 위해 여당에 힘을 실어주겠다’는 응답이 엇비슷하게 나오고 있다. 내년 총선 전망이 여전히 유동적이란 뜻이다.

주목할 부분은 중도층에서는 정부·여당 견제론이 여전히 강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중도층 여론의 향배가 내년 총선 승패를 좌우할 핵심 변수로 꼽힌다는 점에서 여야 모두 여론의 추이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이다. 중요한 건 중도층 여론은 곧 민생과 직결된다는 점이다. 그런 만큼 먼저 당내 갈등을 추스르고 민생 행보에 본격적으로 나서는 쪽이 총선 정국의 주도권을 쥐게 될 가능성이 크다.

1차 시험대는 오는 9월 추석 민심이 될 전망이다. 여의도의 시선도 향후 6개월간 여론의 흐름이 어떻게 바뀔지에 쏠리고 있다. 그때까지 여야가 얼마나 환골탈태하는 모습을 보이느냐가 정국의 흐름을 좌우할 것이란 얘기다. 새롭게 출범한 김기현호와 이에 맞서는 이재명호의 운명도 여기에 달려 있다.

김형준 배재대 석좌교수·전 한국선거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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