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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은 건 끔찍"…먼로는 왜 잠옷 대신 향수만 입고 잤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프리미엄 ‘니치 향수’ 열기

‘향수 마니아들의 성지’로 불리는 프랑스 파리의 니치 향수 전문 편집숍 ‘조보이(JOVOY)’의 창립자이자 대표인 프랑수아 헤닌. 국내 첫 번째 단독매장인 현대백화점 판교점 오픈을 기념해 지난달 22일 한국을 방문했다. [사진 LF]

‘향수 마니아들의 성지’로 불리는 프랑스 파리의 니치 향수 전문 편집숍 ‘조보이(JOVOY)’의 창립자이자 대표인 프랑수아 헤닌. 국내 첫 번째 단독매장인 현대백화점 판교점 오픈을 기념해 지난달 22일 한국을 방문했다. [사진 LF]

평소 경제가 어려울 때는 립스틱 매출이 증가했지만, 올해는 ‘니치 향수’의 성장세가 두드러진다. ‘니치’는 ‘틈새’를 뜻하는 이탈리아어 니치(nicchia)에서 파생된 용어로 소수의 취향을 만족시키기 위해 제작된 프리미엄 향수를 말한다. 50ml 향수 1병에 20만원에서 수백만원까지 호가하지만 비싼 가격에도 남과 다르게 나만의 향수를 원하는 MZ세대에서 ‘작은 사치’로 유행하고 있다.

이런 트렌드를 반영하듯 요즘 백화점 1층에는 니치 향수 브랜드들이 대거 입점해 있다. 현대백화점에 따르면 올해 초부터 3월 9일까지 니치 향수 매출은 전년 동기대비 26.1% 증가했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마스크 해제로 고객들이 향에 더욱 민감해지고, 향수를 통해 본인만의 개성을 나타내려는 수요가 증가해 향수 관련 매출이 급증하고 있다”며 “특히 2030 고객 매출이 전체 향수 매출 중 40% 이상을 차지한다”고 했다.

지난달 22일 방한한 프랑수아 헤닌씨는 ‘향수 마니아들의 성지’로 불리는 프랑스 파리의 니치 향수 전문 편집숍 ‘조보이(JOVOY)’의 창립자이자 대표다. 지난해 생활문화기업 LF가 현대백화점 판교점 1층에 국내 첫 단독매장을 오픈한 것을 기념해 한국을 찾았다. 중앙SUNDAY가 그를 만나 세계적인 니치 향수 열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향수는 자기 표현이자 메시지

헤닌 대표는 블랑쉬 아르보이 여사가 1923년 파리에 설립한 후 잊혀진 조보이를 80년 만에 부활시켰는데, 베트남에서 비즈니스 스쿨을 졸업하고 사업을 벌이다가 니치 향수의 세계에 빠지게 된 스토리가 흥미롭다.

“베트남 식자재를 파리의 베트남 식당들에 공급하는 사업을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한 남자로부터 베트남 쌀국수에 들어가는 현지 허브를 모두 보내달라는 부탁을 받았어요. 소량이긴 하지만 뭔가 특별한 사연이 있는 것 같아 부탁을 들어줬죠. 스무 차례 이상 거래하면서 점차 원하는 허브 숫자가 줄더니 마지막에는 ‘피시 허브(물고기 풀)’만 보내달라고 하더군요. 알고 보니 그는 유명한 조향사였고, 피시 허브에서 추출한 에센셜 오일로 아주 유명한 향수를 만들었어요. 그때부터 ‘특별한 향기’에 관심을 갖게 됐죠.”

카너 바르셀로나 베스티움 50ml 39만원, 제로보암 베스페로 30ml 16만5000원, 라르브레 데 라 꼬네상스 100ml 25만원. [사진 LF·왼쪽부터 순서대로]

카너 바르셀로나 베스티움 50ml 39만원, 제로보암 베스페로 30ml 16만5000원, 라르브레 데 라 꼬네상스 100ml 25만원. [사진 LF·왼쪽부터 순서대로]

프랑스로 돌아온 헤닌 대표는 아르보이 여사에 대해 듣고, 2010년 조보이에 대한 권리를 인수했다.

“아르보이 여사는 최초로 향수 시향지와 스프레이 타입 향수병을 만든 분이에요. 자신의 명함에 향수를 뿌리고 다닐 만큼 열정적인 그분에게서 많은 영감을 얻었고, 다시 한 번 그 시절의 혁신을 이어가자 생각했죠.”

파리에는 큰 브랜드의 단독매장이 넘쳐나지만 젊은 아티스트들에게는 문턱이 높다. 그는 ‘남들과 같은 향기를 가지는 건 재미없다’ 생각하는 젊은 크리에이터들이 다양한 실험을 통해 극소량만 생산한 최상의 니치 향수를 판매할 기회를 만들어 주고 싶었다고 했다. 이후 조보이의 향수와 캔들은 업계에서 성공적인 레퍼런스로 회자됐다. 중동과 프랑스에 프랜차이즈를 오픈하며 성장했고 헤닌 대표는 ‘니치 향수 외교관’이라는 닉네임을 얻었다.

“서울은 전통·현대 어우러진 이미지”

헤닌 대표는 니치 향수의 비싼 가격에 대해  ‘희소가치’ 때문이라며, 뷰티 대기업 향수들에 많이 사용되는 불가리아 장미를 예로 들어 설명했다.

“불가리아가 큰 나라지만 전 세계 향수 회사들이 모두 사용할 만큼의 장미를 생산하는 건 불가능해요. 그렇다면 일부는 거짓말을 하고 있거나 인공향을 쓰는 거겠죠. 조보이에서 판매하는 향수 중 ‘아이리스 버터’라는 원료는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자라는 아이리스 버터 꽃의 뿌리를 채취해서 건조·압착해 버터로 만든 건데 향 원료 중 비싸기로 손꼽히죠. 1㎏에 약 2만 유로(약 2800만원) 정도. 이건 인간이 만들 수 없어서 자연이 주는 만큼만 사용할 수 있죠. 니치 향수를 만드는 아티스트들은 이렇게 예측불허인 자연이 허락한 만큼만 희귀한 천연원료를 사용해 자신만의 접근법으로 소량 생산하는 게 자부심이죠. 그러니까 가격이 비쌀 수밖에 없어요.”

헤닌 대표는 “니치 향수를 통해 즐길 수 있는 ‘궁극의 럭셔리’란 결국 자연이 주는 귀한 선물을 소유하는 기쁨”이라며 “그래서 나는 니치 향수라는 말 대신 레어(rare·희귀하고 진귀한) 향수라는 말을 쓴다”고 했다.

“남들과 똑같은 향수를 쓰는 건 정말 끔찍한 일이죠. 요즘 젊은이들은 자신만의 고유한 개성을 ‘레어한 향기’에서 찾는 것 같아요. 제가 금요일에 무단결근 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드릴까요? 목요일에 향수를 뿌린 재킷과 스카프를 의자에 걸어두고 퇴근하면, 금요일에도 당신의 향기가 계속 나니까 사람들은 ‘잠깐 화장실 갔겠지’ 생각하며 출근 안한 걸 눈치채지 못할 거예요.(웃음)”

그는 또 “향수는 자기표현이자 메시지”라고도 했다. “내가 어떤 향을 선택했을 때, 그 향기는 나의 시그니처가 되죠. 1960년대 마릴린 먼로가 ‘침대에서 향수만 입고 잔다’고 말한 이후로 그를 좋아하든 싫어하든 누구나 한 번쯤은 그의 말처럼 향수 몇 방울만 뿌리고 누드로 자는 경험을 해봤을 거예요. 먼로는 이런 방법으로 자신을 ‘백치미’라고 비웃는 사람들을 비웃었고, 더불어 섹시한 배우의 전설이 됐죠.”

헤닌 대표는 개인적으로 ‘조보이’와 ‘제로보암’이라는 향수 브랜드를 따로 만들고 자신의 경험과 스토리를 녹인 독특한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제로보암은 와인 업계에서 매그넘 사이즈보다 더 큰 용기를 말한다. 말하자면 제로보암 크기의 와인을 30ml로 압축한 것 같은 농밀한 향의 향수라는 의미다.

서울이 첫 방문이라는 그에게 ‘서울의 향기’를 물었더니 “아직 호텔에만 있어서 모르겠다”며 “오후에 경복궁을 중심으로 관광할 계획이다. 전통과 현대가 잘 어우러진 서울은 꽉 찬 이미지라서 기대가 크다”고 했다. 언젠가 조보이 파리 매장에 ‘서울’이라는 이름의 향수가 등장할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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