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테마파크·박물관 같은 매장, 교육적 경험 선사해 활로 찾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830호 16면

POLITE SOCIETY

앤트로폴로지 매장. ‘파리의 벼룩시장’이라는 스토리로 상품의 편집과 디스플레이를 연출하고 있다. [사진 박진배]

앤트로폴로지 매장. ‘파리의 벼룩시장’이라는 스토리로 상품의 편집과 디스플레이를 연출하고 있다. [사진 박진배]

2018년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초반부에 ‘비바(Biba)’ 간판이 보인다. 1960~70년대 런던에서 가장 핫한 백화점이었다. 앤티크 가구로 장식되어 드라마 세트장과 같았던 인테리어, 현재는 빅토리아 알버트 뮤지엄(Victoria & Albert Museum)에 소장된 명품 드레스, 스누피, 앤디 워홀 등의 테마를 이용한 기발한 마케팅 등으로 ‘패션의 극장(Theatre of Fashion)’이라는 별명이 붙었던 장소다. 요즘엔 이렇게 쇼핑을 하면서 문화를 즐길만한 매장들이 1960년대보다도 훨씬 적은 현실이다.

이미 온라인 쇼핑으로 소위 ‘브릭 앤 모타르(brick and mortar)’라 불리는 오프라인 매장들이 초토화 된 지 수십 년이다. 매년 미국에서 1만 개가 넘는 상점이 문을 닫고 있는 시점에서 코로나는 기존의 쇼핑 행태까지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아마존은 이미 공룡이 되었고, 다른 기업들도 온라인으로의 전환이나 병행을 택하고 있다. 이제는 정말 온라인이 불가능한 레스토랑이나 스파, 미용실 말고는 극소수의 상점들만이 남을 전망이다. 가뜩이나 비어서 을씨년스러운 도시 상업공간의 게임 체인저가 누가 될지 궁금하다. 그런 와중에도 ‘비바 백화점’과 같은 과거의 영화를 부활하고자 몇 곳의 백화점이나 독립상점들이 고군분투를 하고 있다.

공방·작업실 분위기 나게 꾸미기도

뉴욕 나이키 이노베이션 매장. 공방이나 작업실 분위기로 꾸며 제작 과정을 견학하는 것 같은 프로그램으로 교육적 경험을 더 강조하고 있다. [사진 박진배]

뉴욕 나이키 이노베이션 매장. 공방이나 작업실 분위기로 꾸며 제작 과정을 견학하는 것 같은 프로그램으로 교육적 경험을 더 강조하고 있다. [사진 박진배]

참을성이 없어 지루한 환경을 못 견디는 어린이를 위한 매장에서부터 ‘리테일먼트(Retailment)’의 개념이 등장했다. 리테일(Retail)과 엔터테인먼트(Entertainment)를 합성한 단어로 단순한 상품전시나 판매를 넘어, 매장에 머무는 시간 동안 특별한 경험을 제공한다는 전략이다. 브랜드의 도약을 위한 필수 도구가 된 리테일먼트는 어른이면서 어린이처럼 옷을 입거나 행동하는 ‘빅 보이(Big Boy)’ 문화가 만연한 미국을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됐다.

영화 ‘빅(Big)’에서 톰 행크스가 바닥에 설치된 대형 피아노를 뛰어 다니며 ‘젓가락 행진곡’을 연주하던 장면은 지금도 우리의 기억에 생생하다. 1870년 독일에서 미국으로 이민 온 F.A.O. 슈바르츠가 뉴욕에 개점한,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장난감 상점이다. 바비 인형, 포켓몬, 양배추 인형과 같은 추억의 장난감부터 닌텐도의 최첨단 비디오 게임에 이르기까지 끝도 없이 진열된 장난감들 속에서 어린이들은 시간가는 줄 모르고 하루를 보낸다. 마치 도심 속의 작은 테마파크와 같다. 특히 레고블록을 직접 만드는 코너나, 바닥에 디지털로 투영되는 모노폴리 게임 등의 인터렉티브 디자인이 인상적이다. ‘아이들에게나 어른들에게나 장난감은 언제나 즐거운 것이며 무궁한 상상력을 제공해 주는 원천’이라는 믿음을 공간디자인을 통해서 전달하고 있다.

근래의 매장들은 리테일먼트를 넘어 ‘항해적 경험(Navigating Experience)’과 ‘교육적 발견(Educational Discovery)’이라는 진보된 개념을 선보인다. 대표적인 예가 ‘아메리칸 걸 플레이스(American Girl Place)’다. 아동 교육가이자 출판가인 플레산트 롤런드가 창업한 이 브랜드는 단순한 판매를 넘어, 좋은 이야기와 생각을 가진 책과 인형으로 소녀들을 교육한다는 생각으로 크게 히트를 쳤다. 자신의 연령과 외모, 성격에 적합한 인형을 선택할 수 있도록 진열되어 있음은 물론, 인형들을 시대별로 분류, 역사와 스토리를 부여함으로써 소녀들의 지적 호기심과 상상력을 자극하도록 치밀하게 기획된 프로젝트다. 매장 내부에는 인형을 위한 미용실과 병원, 어린이 연극 전용 극장과 카페도 마련되어 있다.

뉴욕 구찌 매장. 연극 무대 같이 꾸민 엔트리메시지가 돋보인다. [사진 박진배]

뉴욕 구찌 매장. 연극 무대 같이 꾸민 엔트리메시지가 돋보인다. [사진 박진배]

1990년대 초에 시작된 ‘나이키타운’ 역시 이런 개념을 잘 전달해주고 있다. 이제까지의 스포츠용품점이 아닌 박물관과 같은 ‘쇼 케이스 스토어’의 모델을 선보인 것이다. 역대 스포츠 영웅들의 흑백 사진이 전시된 ‘스포츠 영웅들의 벽(Athlete’s Wall)’이나 대학 체육관의 빈티지 스코어보드 등은 학창시절의 낭만도 불러 일으킨다. 최근에 문을 연 ‘나이키 이노베이션’ 매장은 공방이나 작업실 분위기로 꾸며 제작 과정을 견학하는 것 같은 프로그램으로 교육적 경험을 더욱 강조하고 있다.

또 하나의 특별한 상점은 뉴욕 소호에 있는 모겐탈 프레드릭스로 ‘안경의 롤스로이스’라는 명성이 붙은 안경점이다. 일반적으로 안경점에서는 전시된 많은 제품 중에서 마음에 드는 것을 직접 고르거나 점원의 추천을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이곳에 들어서면 마치 친구의 집 거실로 들어가는 느낌을 받는다. 내부에 안경은 그다지 많지 않다. 한정된 몇 개의 제품만이 캐비넷 안에 디스플레이 돼 있다. 안락한 소파에 앉아 기다리면 간단한 대화 후에 직원은 손님의 얼굴형을 보고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안경을 가져온다. 한 번에 하나씩, 많이 보여줘 봐야 4~5개. 대부분의 고객은 2~3개 이내에서 구매를 결정한다. 놀랍게도 직원들이 골라오는 안경은 손님의 얼굴과 아주 잘 어울린다. 그 상점 안에 얼마나 많은, 그리고 얼마나 다양한 안경들이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그리고 알 필요도 없다. 점원들의 전문적 안목을 신뢰하면 된다. 센스 있고 친한 친구가 집으로 초대를 해서 어울리는 안경을 선물해주는 것 같다. 마치 ‘한가한 오후에 사치스럽게 샴페인을 마시는 것’과 같은 쇼핑의 경험이다.

섹스 앤 더 시티 주인공“쇼핑이 운동”

뉴욕 모겐탈 프레드릭스 안경점. 친한 친구가 집으로 초대를 해서 어울리는 안경을 선물해주는 것 같은, 마치 ‘한가한 오후에 사치스럽게 샴페인을 마시는 것’과 같은 쇼핑의 경험을 제공한다. [사진 박진배]

뉴욕 모겐탈 프레드릭스 안경점. 친한 친구가 집으로 초대를 해서 어울리는 안경을 선물해주는 것 같은, 마치 ‘한가한 오후에 사치스럽게 샴페인을 마시는 것’과 같은 쇼핑의 경험을 제공한다. [사진 박진배]

디지털이 압도하는 환경에서 온라인 쇼핑에 없는 체험을 제공하는 전략은 필수적이다. 매장에 들렸을 때 매일 같은 상품, 같은 디스플레이는 지겹다. 친숙하고 아는 제품은 온라인으로 쉽게 구입할 수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특히 실시간으로 스마트폰으로 정보를 취득하고 인증을 올리는 MZ세대의 라이프스타일과 더더욱 맞지 않는다.

사람들은 판매공간에 물건을 사러간다. 옷을 보고 안경을 보고 전자제품을 본다. 과거에는 상품의 품질, 효율성, 가격, 판매원의 친절 정도의 전통적 가치가 중요시됐다. 하지만 현대에는 쇼핑의 즐거움과 함께 매장의 입구에 진입하는 순간부터 계산을 마치고 나올 때까지의 총합적이고 연속적인 리듬이 상품 구매만큼 중요하다.

뉴욕 F.A.O.슈바르츠. 영화 ‘빅’에서 톰 행크스가 바닥에 설치된 대형 피아노를 뛰어 다니며 ‘젓가락 행진곡’을 연주하던 장면의 배경이 된 장난감 매장이다. [사진 박진배]

뉴욕 F.A.O.슈바르츠. 영화 ‘빅’에서 톰 행크스가 바닥에 설치된 대형 피아노를 뛰어 다니며 ‘젓가락 행진곡’을 연주하던 장면의 배경이 된 장난감 매장이다. [사진 박진배]

“나한테는 쇼핑이 운동이다”라는 ‘섹스 앤 더 시티’ 주인공 캐리처럼 상품의 구매는 현대인의 큰 일상이다. 상점들은 이런 특별한 경험을 부여하기 위해서 창의적이고 다양한 퍼포먼스의 무대를 펼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고객의 라이프스타일을 포용하고 물건의 전시를 통해서 어떠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가치를 중요시한다. 요즈음 새로 부각되는 ‘리테일 미디어(Retail Media)’의 개념이다. 어떤 생각을 나타내고 고객들과 공간에서 교류하는가는 리테일 미디어가 가까운 미래에 매장의 판도를 뒤흔들 전망이다. 고객이 사랑하고 정기적으로 들르고 싶어 하는 매장이라면 영화 ‘폴링 인 러브’에서처럼 로버트 드 니로와 메릴 스트립이 리졸리 서점에서 만나 사랑에 빠지는 마술을 꾸준히 선사할 것이다.

박진배 뉴욕 FIT 교수 마이애미대 명예석좌교수. 연세대, 미국 프랫대학원에서 공부했다. OB 씨그램 스쿨과 뉴욕의 도쿄 스시 아카데미를 졸업했다. 『공간미식가』, 『천 번의 아침식사』 등을 쓰고, 서울의 ‘르 클럽 드 뱅’, ‘민가다헌’을 디자인했다. 뉴욕에서 ‘프레임 카페’와 한식 비스트로 ‘곳간’을 창업, 운영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