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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위의 '핵인싸맨' 이상이에게 '링크'되셨나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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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0호 19면

[유주현의 비욘드 스테이지 연극] ‘셰익스피어 인 러브’ 주연 이상이

“연극이 우리에게 사랑의 진실과 본질을 보여줄 수 있는가.”

연극 ‘셰익스피어 인 러브’에서 엘리자베스 여왕이 제안한 내기다. ‘셰익스피어 인 러브’는 연극으로선 드물게 1000석 대극장에서 한달 넘게 예매율 1위를 기록 중인데,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대표작 ‘로미오와 줄리엣’이 창작되는 과정을 상상력으로 펼쳐낸 이야기다. 1998년 기네스 펠트로가 주연해 세계적으로 흥행한 영화가 원작으로, 김유정·정소민·채수빈 등 스타 여배우들의 남장 연기도 화제다. 여성이 무대에 오를 수 없던 16세기 영국, 배우가 되려 남장을 불사한 소녀 비올라와 작가인 셰익스피어의 위험한 사랑 이야기라서다.

‘로미오와 줄리엣’ 창작과정 그려

연극 ‘셰익스피어 인 러브’에서 정문성, 김성철과 함께 주인공 셰익스피어를 연기 중인 배우 이상이는 자신만의 차별점을 “과격하고 우직할 정도로 열정적인 셰익스피어”라고 표현했다. 박종근 기자

연극 ‘셰익스피어 인 러브’에서 정문성, 김성철과 함께 주인공 셰익스피어를 연기 중인 배우 이상이는 자신만의 차별점을 “과격하고 우직할 정도로 열정적인 셰익스피어”라고 표현했다. 박종근 기자

연극이 과연 사랑의 진실과 본질을 보여줄까? OTT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던져진 질문이기도 하다. 20여년 전 만든 영화의 새삼스런 무대화라니, 집에서 영화를 돌려보면 되는 것 아닐까. 이런 의문은 세트 하나하나 옛날 극장의 골격을 살려 만든 최고의 무대에 빠져들어 연극의 대명사와도 같은 ‘로미오와 줄리엣’이 탄생하던 16세기의 어느 날로 날아가며 무색해진다. 주인공 셰익스피어 역을 맡은 배우 이상이(32)는 그 순간을 ‘신비로운 링크의 순간’이라고 표현했다.

2014년 뮤지컬 ‘그리스’로 데뷔한 그는 장르를 가리지 않고 활동해 왔다. 2021년 예능 프로그램 ‘놀면 뭐하니’가 조직한 남성 보컬그룹 ‘MSG워너비’의 멤버로 큰 사랑을 받고,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2019) ‘갯마을 차차차’(2021) 등에서 자연스런 연기로 안방팬을 대거 확보했다. 그런데 셰익스피어 소네트가 그대로 대사가 되는 ‘고전인 듯 고전 아닌’ 이 무대를 놓치기 싫은 이유가 있었단다.

“안양예고 시절 과제 때문에 영화를 보면서 내가 셰익스피어 역이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했던 기억이 나요. 그때부터 정통 연극을 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죠. 고어체 대사도 욕심났어요. 마치 시처럼 말이 주는 맛이 있거든요. 노랫말 같기도 하고 사극 같기도 한 말투인데, 어렵지만 배우로서 꼭 도전해보고 싶은 영역이거든요.”

[배우 이상이/20230228/상암동/박종근] 연극 셰익스피어 인 러브에서 주인공 역을 맡은 배우 이상이가 28일 오후 서울 상암동 중앙일보스튜디오에서 중앙선데이와 인터뷰했다. 박종근 기자

[배우 이상이/20230228/상암동/박종근] 연극 셰익스피어 인 러브에서 주인공 역을 맡은 배우 이상이가 28일 오후 서울 상암동 중앙일보스튜디오에서 중앙선데이와 인터뷰했다. 박종근 기자

그는 김고은·박소담·안은진 등 요즘 핫한 배우들을 대거 배출한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연기과 10학번 중에서도 ‘과대표’로 유명하다. 그런데 셰익스피어 작품엔 한 번도 출연한 적이 없단다. 대입 때 ‘햄릿’ 중 레어티즈의 독백을 읊었던 게 유일한 셰익스피어 경험이었다. “그때 햄릿은 좀 더 성숙하고 복잡한 사람에게 어울린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햄릿에 꼭 한번 도전해보고 싶다”는 그는 쿨해 보이는 외모와 달리 연극에 대한 마음은 뜨거워 보였다. 정문성·김성철과 함께 트리플 캐스팅 중에서도 자신의 차별점을 주저없이 ‘열정 윌리엄’이라고 표현했다. 연극과 비올라에 미친 듯 빠져 있는 셰익스피어에 제대로 몰입하기 위해 그가 쓴 극중극의 모든 대사를 외우며 열정을 불태웠단다.

“세 명의 윌리엄이 다 다르지만, 극중 셰익스피어가 친구이자 라이벌인 말로의 영향을 받는 것처럼 우리도 그랬어요. 셰익스피어가 실존 인물이라지만 가상의 인물이라는 얘기도 있고, 갈피를 잡기 어려운 캐릭터거든요. 단순 일대기도 아니고 셰익스피어가 쓴 ‘로미오와 줄리엣’에 작가의 상상력을 보탠 판타지가 많이 들어간 작품이라, 그 어떤 공연보다 많이 토론한 것 같아요. 웃음 포인트에서도 서로 조언을 많이 해줬죠. 가장 유명한 발코니 장면 패러디도 제 경우 ‘철퍼덕 퍼버벅’으로 하고 있는데, 여러 가지 고심한 결과에요. 제가 가장 과격하고 우직한 느낌이라고 해서 그렇게 됐죠. 다행히 많이들 웃어주시네요.(웃음)”

극중 대사 한 줄 못 쓸 정도로 슬럼프에 빠져 있던 셰익스피어는 비올라와의 사랑 덕에 천재성을 회복하고 ‘로미오와 줄리엣’을 써내려간다. 이 와중에 정부의 검열과 극장 폐쇄 등 공연을 방해하는 각종 사건이 발생하고, 평소 경쟁관계였던 연극인들은 좌충우돌하면서도 하나의 공연을 무사히 올리기 위해 대동단결한다. 공연을 보러 관객이 모였으니 어떤 돌발 상황에도 쇼는 멈출 수 없다. 관객은 시추에이션 코미디 같은 상황의 연속에 배꼽을 잡으면서도 끝내 연극을 완성해내는 사람들의 끈끈한 힘을 목도하며 눈물이 핑 돌고, 마지막 대사 “참 신비로운 일이지”에 이르면 그 절묘한 구성과 완성도에 무릎을 치게 된다.

“배우라면 누구나 공연 당일까지 준비 안 된 느낌을 경험한 적 있을 거예요. 대학 시절 창작 마임 공연을 한 적 있는데, 공연하러 가면서까지 움직임을 고민했거든요. 불안한 마음을 선배한테 얘기하니, 공연 전까지는 물음표라도 들어가는 순간부터 느낌표로 가야 된다. 뭐가 됐든 밀고 나가라고 해주셨죠. 그 한마디가 힘이 됐어요. 배우가 불안해 하면 무대에서 다 보이거든요. 사람은 직관적인 동물이라, 2초라도 정적이 생겼을 때 의도한 것인지 실수나 해프닝인지 관객도 바로 알게 되죠. 준비가 좀 부족하다 싶어도 무대에선 확신을 갖고 뻔뻔하게 하는 게  중요해요. 정말 신비하게도 무대 위에서는 어떻게든 되거든요. 왜 그런지는 정말 모르겠고 허무맹랑한 소리처럼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뭔가 배우들이 순간에 집중하는 기운이 모여지면서 신비가 일어나는 것 같아요.”

사고·실수 마저도 연극의 묘미

연극 ‘셰익스피어 인 러브’는 26일까지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공연된다. [사진 쇼노트]

연극 ‘셰익스피어 인 러브’는 26일까지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공연된다. [사진 쇼노트]

그렇다면 이 연극은 과연 사랑의 진실과 본질을 보여주고 있을까. 이상이는 “‘로미오와 줄리엣’ ‘셰익스피어 인 러브’ 두 작품이 다 그렇다”고 답했다. “물리적인 상태로는 윌리엄이 남겨지고 비올라는 떠났으니 둘은 헤어진 것이죠. 하지만 글이 남겨져 연극이 나왔고, 연극을 통해 마음이 아주 확실하게 표현되고 서로에게 전달되었다 생각해요. ‘셰익스피어 인 러브’가 보여준 사랑의 본질이 그것이죠. 극중 여왕도 ‘로미오와 줄리엣’ 공연에서 사랑의 진실과 본질을 보았기 때문에 셰익스피어를 내기의 승자로 인정한 것일테고요.”

이상이에겐 반전 매력이 가득했다. 최근 종영한 화제 드라마 ‘일타스캔들’에서 보여준 유튜버 ‘핵인싸맨’ 같은 뻔뻔한 연기나, 무명 시절 직접 찍어 올렸다는 가수 비의 ‘레이니즘’, 뮤지컬 영화 ‘라라랜드’ 댄스 커버 영상을 봐도 ‘흥부자’에 자기주장이 강한 전형적인 MZ세대라 예상했다. 그런데 근육질 피지컬에 어울리지 않게 몹시 섬세하고 신중했고, 어떤 질문에도 긍정적인 답변을 하려고 애쓰는 모습에 호감도가 급상승했다. 이 예의 바른 청년을 배우의 길로 이끈 게 아버지란 것도 뜻밖이다.

“셰익스피어 시대에도 연극인들이 고생을 했지만, 지금 시대에도 연극을 한다고 하면 부모나 가족의 반대 때문에 힘들죠. 근데 저희 부모님은 제가 뭘 해도 응원해 주시는 분들이라 정말 감사하고 행복한 것 같아요. 중학생 때 형이 치던 기타를 뚱땅거리고 있는 걸 보신 아빠가 근처 연기학원에 다녀보지 않겠냐고 툭 던지신 게 시작이었죠. 제 미래를 찾아주시려고 아빠가 이것저것 생각하셨던 것 같은데, 그중 하나가 연기였어요. 노래를 하게 된 건 음악을 정말 좋아하던 형 덕분이고요. 예닐곱살 때 형이 제 귀에 꽂아준 이어폰에서 록음악이 나오곤 했거든요.(웃음) ”

‘셰익스피어 인 러브’ 덕에 연기에 대한 욕심과 배우라는 직업에 대한 사랑이 더 커졌단다. 방송에서 노래도 부르고 여행 예능까지 찍어 봤지만, 연기할 때 가장 신이 난다고. “이 작품을 두고 프로듀서가 ‘꿈을 좇는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하셨는데, 전에 했던 ‘조지아 맥브라이드의 전설’이란 연극도 꿈을 좇는 이야기거든요. 이런 작품들을 하면서 켜켜이 쌓이는 것들 때문에 배우라는 직업이 더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원하고 꿈꾸는 게 있으면 그 일을 할 때 욕심이 생기고 능동적으로 움직이게 되잖아요. 이제 영화나 드라마 같은 장르 구분은 무의미해진 것 같아요. 무대를 담은 영상이 나오고 뮤지컬 영화, 뮤지컬 드라마가 나오는 세상이니까요. 저는 무대로 데뷔한 사람이고, 앞으로도 무대는 계속 제가 일하는 장소일 거예요.”

[배우 이상이/20230228/상암동/박종근] 연극 셰익스피어 인 러브에서 주인공 역을 맡은 배우 이상이가 28일 오후 서울 상암동 중앙일보스튜디오에서 중앙선데이와 인터뷰했다. 박종근 기자

[배우 이상이/20230228/상암동/박종근] 연극 셰익스피어 인 러브에서 주인공 역을 맡은 배우 이상이가 28일 오후 서울 상암동 중앙일보스튜디오에서 중앙선데이와 인터뷰했다. 박종근 기자

연극을 사랑하는 이유도 ‘신비로운 링크의 순간’ 때문이라는데, 그런 순간이 거저 얻어지는 건 아니다. 그가 닮고 싶다는 대세 배우 박해수처럼, 무대에서 몸을 잘 써야 관객을 잘 흡수할 수 있단다. “10년전 쯤 연극 ‘프랑켄슈타인’에 출연한 박해수 배우를 보고 그 움직임에 반했어요. 제가 ‘핵인싸맨’ 캐릭터를 위해 거북목을 만든 것처럼, 배우는 굳이 말하지 않고 가만히 서 있어도 어떤 배역인지 느껴지도록 몸을 쓸 줄 알아야 하죠. 걸음걸이 하나에도 셰익스피어로 보여야 하는데, 그런 게 쌓이면서 어느 순간 관객이 무대에 링크되거든요. 관객과 같이 흘러가고 있다는 ‘육감’이 배우에게 전달되고, 2시간 반 동안 릴레이 경주하듯 ‘썸띵’을 주고받게 됩니다. 사고나 실수도 발생하지만, 크고 작은 해프닝을 대처하는 모습마저 공연의 일부인 것 같아요. 그게 바로 연극의 묘미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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