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이주 노동자의 ‘코리안 드림’이 위험하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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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0호 30면

국내 체류 외국인 215만, 경제 필수 인력

열악한 환경, 인권 사각지대서 차별 발생

보편적 인권 보장하고 제도 보완 나서야

한국에서 이주노동자의 역사는 30년에 이른다. 처음에는 아무 제도가 없다가 1994년 외국인 산업연수생 제도를 도입했다. 2004년에는 고용허가제를 실시하면서 ‘코리안 드림’을 좇아 들어오는 인원이 대폭 늘었다. 하지만 이주노동자에 대한 부당한 대우와 차별적 시선은 여전하다. 현장에선 아직도 수많은 이주노동자가 열악한 노동·생활 환경에 시달리는 실정이다.

최근 태국에서 온 60대 남성 이주노동자가 경기도 포천의 돼지농장 근처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이곳 농장주는 트랙터를 이용해 인근 야산에 시신을 내다 버린 혐의로 구속됐다. 현재까지 타살 혐의점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하나, 경찰과 고용노동부는 해당 농장을 대상으로 전반적인 노동환경과 임금체불 여부를 조사 중이다.

사망한 이주노동자는 2013년 관광비자로 입국한 뒤 10년가량 이 농장에서 일했다. 매달 180만원을 받아 20만원 정도만 남기고 대부분을 태국에 있는 가족에게 보냈다. 불법 체류 신분이었던 그는 거의 농장 밖으로 나오지 않고 비위생적 환경의 축사 안에서 생활하다 비극을 맞았다. 조립식 패널로 된 숙소 내부엔 곳곳에 곰팡이가 피어 있고 제대로 된 난방시설도 없었다고 한다. 지난달에는 전북 고창에서 50대 태국인 부부 이주노동자가 밀폐된 방 안에서 불을 피웠다가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사망한 사건도 있었다.

법무부에 따르면 지난 1월 기준 국내에 체류하는 외국인은 215만 명에 이른다. 대전이나 광주광역시 인구보다 많은 수치다. 코로나19의 여파로 한때 50만 명 넘게 줄었다가 지난해 다시 증가세로 돌아섰다. 이 중 불법 체류 신분인 외국인은 41만 명으로 집계됐다.

더럽고 힘들고 위험한 이른바 ‘3D 업종’에서 이주노동자에 대한 의존도는 절대적이다. 고령화가 심각한 농촌 지역에선 이주노동자가 없으면 농사를 지을 수 없는 실정이다. 한국 경제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 이주노동자의 존재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된 지 오래다.

사정이 이런데도 이주노동자와 관련한 안타까운 소식이 끊이질 않는다. 언어 소통이 힘들고 체류 신분이 불안정하다는 점을 악용한 인권 침해나 폭행·임금체불 등이 반복되고 있다. 경제적으로는 이미 선진국 반열에 올랐다고 평가받는 한국에서 벌어지는 부끄러운 모습이다. 과거 한국인들이 독일·중동 등 해외 각지에서 외국인 노동자로서 온갖 서러움을 겪었던 일을 까맣게 잊어버린 듯하다.

물론 한국에 온 모든 이주노동자가 열악한 환경에서 고생만 하는 건 아닐 것이다. 한국에서 번 돈으로 고국에서 사업가로 변신하거나, 우리 사회에 성공적으로 정착한 사례도 드물지 않다. 이들에게 한국은 가난과 실업을 극복하게 해준 ‘기회의 땅’으로 기억될 것이다. TV나 영화 등에선 우리에게 감동과 즐거움을 안겨주는 이주민 예술인도 늘어나고 있다.

이제 이주노동자는 이방인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생활하는 이웃이다. 저출산·고령화 속도가 빨라지면서 우리 사회는 점점 더 이들을 필요로 할 것이다. ‘코리안 드림’을 찾아온 이들에게 ‘코리안 악몽’을 안겨줘선 안 된다. 이들의 보편적 인권을 보장하고, 차별적 시선과 부당한 대우로부터 보호하는 건 선진국이자 인권 국가로서 지녀야 할 당연한 책무다. 미흡한 법적·제도적 장치는 서둘러 보완에 나서야 한다. 생산인구 감소에 대처하기 위해서라도 시급한 과제다. 이를 위해 이민청 설치를 포함한 전향적 이민 정책을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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