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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데이 칼럼] 담대한 교육개혁, 늦었다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르다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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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0호 31면

오세정 전 서울대 총장

오세정 전 서울대 총장

윤석열 정부는 노동개혁, 연금개혁, 교육개혁의 소위 3대 개혁을 추진하겠다고 천명하고 나섰다. 우리나라의 미래를 위해서 3대 개혁이 필수적이라는 이야기는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과거 정부에서는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뒤로 미루어 왔었다. 현 정부가 그러한 과제를 정면으로 다루겠다고 나선 것만으로도 칭찬받을 일이다. 물론 앞으로 갈 길이 멀고 많은 이해당사자들의 저항이 예상되지만, 노동개혁은 이미 첫발을 떼었다고 볼 수 있다. 연금개혁도 적어도 중요한 이슈들이 무엇인지는 서로 공감하는 상태이다. 그러나 교육개혁은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추진할지 아직도 오리무중이다.

사실 과거에는 교육이 우리나라의 가장 큰 장점이었다. 모두가 동의하듯이 우리가 빠른 시일 안에 개발도상국에서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루어 선진국의 문턱에 들어선 것은 교육의 힘이었다. 미국 컬럼비아대학의 유명 경제학자 제프리 삭스는 2015년 세계교육포럼에 참석해 “한국의 경제발전은 전례가 없는 성과이고, 교육이야말로 경제 발전의 연료 역할을 했다는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라고 말했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재임 시절 “한국에서는 교사가 국가 건설자(Nation Builder) 라고 불린다”고까지 말한 바 있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나라 교육에 대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불평하고 있다. 학생들은 “공부가 재미없고 지겹다”면서 “열심히 공부해도 취업에 도움이 안 된다”고 불만이고, 기업인들은 “대학을 나와도 쓸 만한 인재가 없다”고 아우성이다. 학부모들은 사교육비가 너무 비싸서 감당할 수 없다고 비명을 지르고, 대학들은 재정난으로 경영이 불가능하다고 토로한다.

우리나라를 일으켜세웠던 교육
이제는 문제를 일으키는 원인 돼
대대적 교육개혁에는 저항 예상
사회적 대타협 시도 필요한 시점

선데이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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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불평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교육이 국가 주요 문제의 원인이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예를 들어 지난해 인구보건복지협회가 실시한 조사에 의하면 청년세대가 출산을 원치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양육비, 교육비 등 경제적 부담이었다. 즉 막대한 사교육비가 출산율 저하의 큰 원인인 것이다. 또한 총인구가 감소하는 것뿐만 아니라 인구의 수도권 집중현상이 큰 문제인데, 이것도 지역별로 교육기회가 고르지 못한 것이 큰 원인이다. 게다가 우리나라의 청소년 자살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악으로서 OECD 평균의 두 배가 넘는다. 학생들이 지나친 경쟁으로 내몰려 과도한 학업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는 것이다. 이처럼 과거 우리나라를 일으켜 세웠던 교육이 이제는 오히려 문제를 일으키는 원인으로 전락했다.

이러한 우리나라 교육의 문제는 단편적인 처방 몇 가지로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데에 심각성이 있다. 교육의 틀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사회적 대전환이 필요한 것이다. 마침 시대의 변화도 이러한 대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영국 옥스퍼드대학 연구팀에 의하면 인공지능(AI)으로 대표되는 제4차 산업혁명이 본격화되면 전문직을 포함해서 현재 있는 직업의 47%가 사라질 것이라고 한다. 또한 세계경제포럼 (WEF)의 예측에 의하면, 지금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학생들의 65%는 현재 존재하지도 않는 직업을 가지고 일할 것이라고 한다. 학생들이 졸업 후 어떠한 일을 할지도 모르는데, 학교에서 무엇을 가르칠지는 어떻게 결정하나.

제4차 산업혁명시대에 필요한 인재상은 과거 산업화시대의 인재상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산업화시대에는 지식을 빠르게 습득하고 응용하는 능력이 중요했지만,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남과 다르게 생각하고 복잡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창조적 인재가 필요한 것이다. 특히 선진국 문턱에 들어선 우리나라는 모방추격형 경제에서 창의선도형 경제로 전환해야하는 시점에 있다. 이제 선진국의 지식을 빠르게 습득해 추격하는 시대는 지났고, 우리 나름대로 독창적인 모델을 개발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나라의 교육제도는 과거 산업화시대의 패러다임에 머물러 있다. 중고교 교과과정이 그러하고, 대학입시나 대학에서의 교육도 학생들의 창의력을 길러주기보다는 정해진 지식을 빠르게 전수하는 것에 맞추어져 있다. 결국 미래 시대가 요구하는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서는 우리나라 교육을 전반적으로 뜯어고치는 대개혁이 필요한 것이다.

물론 이 같은 대대적인 교육개혁에는 상당한 저항이 예상된다. 교육에는 학부모 및 교사, 사교육 종사자 등 관련자가 매우 많으며, 이들은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념적인 대립도 만만치 않다. 과거 국정교과서 문제라든지 교육과정 개편 등 교육 현안이 있을 때마나 얼마나 시끄러웠는지를 생각해보면, 사회적인 합의를 끌어내기가 쉽지 않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미리 포기할 수는 없다. 그러기에는 우리의 학생들이 너무 불쌍하다. 곧 쓸모없어질 지식을 달달 외우느라 인생의 좋은 시절을 허송하고, 살인적인 경쟁에 짓눌려 초중고 학생 4명 중 1명이 자해나 극단적 선택까지 생각해보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우리 미래 세대의 행복과 나라의 발전을 위해 담대한 교육개혁의 큰 그림을 그리고 사회적 대타협을 시도하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다. 물론 대타협에 이르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그러나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르다고 하지 않는가.

오세정 전 서울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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