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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식사로 ‘연역법’도 설명한 지식인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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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0호 21면

그 많은 개념어는 누가 만들었을까

그 많은 개념어는 누가 만들었을까

그 많은 개념어는 누가 만들었을까
야마모토 다카미쓰 지음
지비원 옮김
메멘토

‘서양 학술용어 번역과 근대어의 탄생’이란 부제가 전체를 요약한다. 과학·철학·학술·문장·문학·예술·연역법·귀납법·실험·시험·물리·심리 등 서양에서 건너온 개념과 용어를 19세기 일본에서 이렇게 옮긴 연유와 그 과정의 고민과 혜안을 살핀 책이다.

지은이는 학술·학술사의 독립연구가. 서양에서 옮겨온 지식과 번역의 문제를 파고들다 일본의 계몽사상가이자 서양철학자·교육자였던 니시 아마네(西周·1829~97)를 알게 된다. 니시는 유학을 공부하고 1863년 네덜란드 유학 후 귀국해 프랑스어 등을 가르치고 저술·번역·강의를 했다. 동양의 한학을 바탕으로 서양의 개념·용어를 새롭게 흡수하고 한자어로 제대로 옮기려고 애쓴 전환시대의 지식인이다.

그가 도쿄사범대 교장이 되기 전, 사숙(私塾·개인학교)을 운영하던 1870~71년 강의 내용을 제자가 필기한  『백학연환(百学連環)』이 이 책의 바탕이다. 지은이는 이를 독해하며 동서양 학문이 만나는 과정과 니시의 노력을 밝혀냈다.

앞줄 오른쪽 끝 사람이 니시 아마네. 19세기 중반 네덜란드 유학 시절의 사진이다. [사진 메멘토]

앞줄 오른쪽 끝 사람이 니시 아마네. 19세기 중반 네덜란드 유학 시절의 사진이다. [사진 메멘토]

필기내용은 150년 전의 것이라곤 믿을 수 없을 정도. 예로 현재는 논리학으로 부르는 신치지학(新致知學)이란 항목 아래 알파벳으로 영국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의 이름과 연역법과 귀납법이란 용어가 등장한다. 논리학에 몰두했던 밀을 연구한 흔적으로, 니시의 집요함을 보여준다.

번역에는 고대 그리스어, 갑골문자, 금석학 연구까지 동원됐다. 예로 ‘과학과 예술(Science and Arts)’은 학술기예(學術技藝)로 옮겼다. 니시는 “학(學)자는 배운다는 뜻의 동사로, 스승이 아이를 가르치고 보호하는 모양을 하고 있다”며 “술(術)자는 목적한 바가 있어 그 길을 간다는 의미”라고 밝혔다. 이를 지은이는 “‘길을 따라간다’는 어원의 고대 그리스어 메소도스에서 온 영어의 메소드(Method·수단이나 방법)라는 개념까지 끌어들인 결과”라고 분석했다.

이론(Theory)과 실천(Practice)은 관찰과 실제로 각각 옮겼다. 지은이는 “관찰이라는 니시의 번역은 어원인 고대 그리스어 테오리아가 ‘봐서 알게 된 것’이라는 뜻이기 때문에 나온 것”이라며 “(지금은 바뀌었지만) 사실은 상당히 훌륭한 번역”이라고 평가했다.

‘백학연환’은 백과사전(Encyclopedia)의 초기 번역이다. 니시는 “고대 그리스어 ‘엔큐클리오스 파이데이아’에서 온 것으로 이는 아이를 바퀴 안에 넣어 교육한다는 의미”라고 번역 연유를 밝혔다. 지은이는 니시가 19세기 독일 대학에서 철학자 헤겔 등이 했던 ‘엔치클로페디 및 방법론’이란 이름의 기초교양 교육을 파악하고 이런 번역을 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당시로선 생소했을 서양의 사고방식을 제자들에게 쉽게 가르치려고 애쓴 모습도 보인다. 일반적인 명제나 진리에서 개별적인 명제를 추론하는 연역법은 “고양이가 쥐를 먹을 때처럼 가장 중요한 머리에서 몸통, 네 발, 꼬리로 이어지는 것”이라고 비유했다. 맹자가 성군인 요임금과 순임금을 예로 들며 성선설을 설파한 것과 같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반대로 개별 사실에서 일반 원리를 추론하는 귀납법은 “사람이 반찬을 먹듯이 우선 가장 맛있는 부분을 조금씩 먹고 마지막에는 먹을 수 있는 부분을 전부 먹는 것”으로 비유했다.

니시는 인문학뿐 아니라 자연과학 용어도 정확하게 이해하고 알기 쉬운 한자로 옮겼다. 예로 독일 화학자 빌헬름 분젠(1811~99)은 태양빛을 분석하고 해석하는 연구를 했는데 니시는 이를 ‘관광분해술(觀光分解術)’로 옮겼다, 오늘날 ‘분광분석’에 해당한다. 한자 문화권은 치열한 지식인 니시에게 너무도 많은 빚을 지고 있다. 원제 『百学連環』 を読む(백학연환을 읽다).

채인택 전 중앙일보 전문기자 tzschaeit@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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