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를 찾아서] ‘사찰음식의 대가’ 대안스님

대안스님이 금아재에서 사찰음식에 담긴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최기웅 기자
“언니, 나 수녀 되려고 피정(가톨릭 신자의 수련생활) 들어갔는데 갑갑해서 보름 만에 나왔어.”
“그래? 그럼 너도 나처럼 깎아.”
“여자가 어떻게 깎아?”
“야, 얼마나 시원한데 그래.”
중학 시절, 수녀 선생님을 흠모해 수녀가 되려고 했던 소녀는 언니를 따라 머리를 깎고 비구니가 됐다. 그게 세상 살면서 가장 잘한 일이라고 했다. 그 소녀가 사찰음식을 전 세계에 알리는 대안(大安) 스님이 됐다.
대안스님은 경남 산청의 자리산 자락에 금수암이라는 암자를 짓고 산야초를 캐고 키우며 사찰음식을 연구·보급하고 있다. 서울 평창동에도 ‘토굴’이라고 부르는 조그만 집(금아재)에서 쿠킹 클래스를 열고 있다. 평창동에서 만난 대안스님은 “밥 먹는 건 우주를 만나는 일”이라며 “제철 재료로 만든 음식을, 감사한 마음으로, 꼭꼭 씹어서 먹는 것 자체가 수행이요 명상”이라고 말했다.
오방색 음식에 5대 영양소 다 담겨
![대안스님이 경남 산청 지리산 자락에 있는 금수암에서 제철 식재료로 만드는 사찰요리 강습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 대안스님]](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joongang_sunday/202303/11/a25b0474-3ebb-4fa4-ad9a-c52b059c60dc.jpg)
대안스님이 경남 산청 지리산 자락에 있는 금수암에서 제철 식재료로 만드는 사찰요리 강습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 대안스님]
- 하루에 몇 끼를 어떻게 드세요.
- “세 끼 잘 먹습니다. 아침은 백반식, 점심엔 식물의 뿌리·줄기·열매를 골고루 먹고, 콩고기(대체육)나 채식 만두도 먹어요. 저녁엔 주로 뿌리째 찐 채소를 따뜻하게 먹습니다. 과일을 좋아하는데 당 수치가 좀 높게 나와서 줄이고 있지요.”
- ‘한상 가득 차려진 밥상에 우주의 기운이 스며 있다’고 하셨는데요.
- “인간의 몸을 소우주라고 할 때 거기서 더 분해된 것이 음식이죠. 야생이든 재배한 것이든 식물은 우주의 기운을 받아서 마음껏 자라고, 각자의 색깔과 본성이 다르죠. 일미칠근(一米七斤·한 톨의 쌀에 일곱 근의 땀이 들어 있다)이라는 말도 있잖아요. 보통 귀한 게 아니죠. 어떠한 것도 다 우주예요.”
![대안스님이 쓴 사찰음식 관련 책과 논문. [사진 대안스님]](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joongang_sunday/202303/11/5746e076-8ba0-4663-a32a-4ac2c9060b62.jpg)
대안스님이 쓴 사찰음식 관련 책과 논문. [사진 대안스님]
- 오행(목·화·토·금·수)에 맞는 오방색(청·적·황·백·흑) 음식을 먹어야 건강하다고 하셨죠.
- “마트에 가면 식자재가 색깔별로 다 있죠. 양배추는 흰색, 버섯은 검은색, 단호박은 노랑, 당근은 붉은색, 시금치나 미나리는 녹색이죠. 본인이 필요한 대로 사서 요리에 활용하면 됩니다. 흰 쌀밥과 된장찌개에 김치만 있어도 오방색이 되고, 5대 영양소를 다 충족할 수 있어요.”
- ‘식습관을 개선하고 식욕을 조절할 수 있는 사람은 못 이룰 게 없다’고도 하셨죠.
- “오욕락(五欲樂, 재물·색·음식·명예·수명) 중에서 가장 앞선 게 식욕이잖아요. 자신을 극복하지 못하는 분들은 자기 합리화가 심해요. 사람들은 대부분 내 입에 맞으면 먹고, 맞지 않으면 안 먹습니다. ‘네 몸에 꼭 필요한 거니까 먹어야 돼’ 해도 아집을 내려놓지 못해요. ‘술은 피부를 급격히 나빠지게 만드니까 줄여야 해’ 해도 안 듣습니다. 식습관을 바꾸는 자제력이 있는 사람이 성공자입니다.”
- ‘알맞게’ 먹는다는 게 참 모호하거든요.
- “모호하지만 분명합니다. 각자의 에너지에 따라 음식을 먹었을 때 신호가 오게 돼 있어요. 음식을 먹다가 트림이 나오면 몸에서 ‘이제 그만 집어넣어라’는 신호를 보내는 거예요. 우리 몸은 입구(입)와 출구(항문)를 빼면 막혀 있죠. 먹고 싶은 양의 80%만 먹어서 몸에 공간을 남겨놔야 해요. ‘뷔페 왔으니까 본전 뽑아야지’ ‘내 돈 안 내고 먹는 고기니까’ 하면서 계속 먹는 건 지혜롭지 못하죠. 내 일의 형태나 양, 라이프스타일에 맞게 먹는 게 알맞게 먹는 겁니다.”
![대안스님이 만든 도시락. [사진 대안스님]](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joongang_sunday/202303/11/2f218d99-906f-4ad8-96f8-c39b735547d6.jpg)
대안스님이 만든 도시락. [사진 대안스님]
요리와 식도락 프로그램이 넘쳐나는 시대다. “설탕 투척”을 외치며 인공감미료나 조미료를 ‘과감하게’ 쓰는 유명 인사도 있다. 대안스님은 “그분은 요리사라기보다는 사업가잖아요. 어떻게 하면 내 음식을 많이 팔까 고민하는 사업가, 이 순간 사람들을 즐겁고 행복하게 하는 전략가라고 볼 수 있죠”라고 말했다. 그 다음 말이 정곡을 찔렀다. “그런데 그분이 설탕 한 스푼을 팍 넣으면서 미래에 대해 고민을 하는지 궁금해요.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있는 게 세상 법칙입니다. 음식을 잘못 먹었는데 어떻게 건강할 수가 있어요. 마음이 건강하고 컨트롤 할 수 있는 사람은 뭘 먹어도 상관없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죠.”
- 음식을 오락의 대상으로 삼고, 빨리 많이 먹는 걸 보여주는 먹방도 유행입니다.
- “음식을 우습게 아는 풍토가 만들어진 건 교육의 문제죠. 저는 초등학생에게도 요리와 식사 예절을 가르쳐야 한다고 봅니다. 일본은 유치원에서부터 그걸 합니다. 저희 학교 때는 가정·가사 과목이 있어서 요리도 배우고 생활관 같은 데 들어가서 식탁예절도 배웠는데 지금은 전혀 없어요. 이건 교육부가 고민해야 합니다. 또 일주일에 한두 끼는 엄마 아빠가 요리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해요.”
- 왜 그런가요?
- “‘음식은 만들어서 함께 먹는 거구나’라는 걸 알려줘야 하니까요. 지금은 영양·칼로리가 전혀 체계적이지 않은 음식을 주문하고, 비닐을 뜯어서 먹다가 아무렇게나 버리는 게 익숙해졌어요. 우리는 밥 한 톨도 함부로 버리면 안 된다고 배웠지만 요즘 친구들은 ‘내 돈 내고 샀으니 내 마음’이라고 생각해요. 환경 오염도 심각하지만 이기심이 더 큰 문제죠. 내 돈 내고 샀더라도 그 음식을 만든 사람의 공력, 식재료를 키우면서 쏟은 정성까지 돈으로 살 수는 없거든요. 음식을 만드는 게 얼마나 성스러운 건지, 음식을 우습게 알면 그 과보로 건강을 잃을 수도 있다는 걸 가르쳐야 해요.”
![대안스님이 만든 능이버섯찌개. [사진 대안스님]](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joongang_sunday/202303/11/9e4325d3-1582-4d6d-a793-5745f50e5c85.jpg)
대안스님이 만든 능이버섯찌개. [사진 대안스님]
절에서처럼 한 그릇에 밥과 반찬을 다 담으면 적당히 먹는 데 도움이 돼죠.
“눈대중으로 자신이 먹는 양을 잘 계량해서 습관화하는 겁니다. 한 접시에 담아 보면 내가 먹는 양이 생각보다 많다는 걸 알게 됩니다. 아무 생각 없이 먹거나 반대로 어떤 생각에 빨려 들어가면 얼마나 많이 먹는지 몰라요. 저는 밥 먹을 때 항상 밝은 음악을 틀어놓습니다. 음악을 들으면 비장을 활성화시켜 소화에 좋거든요.”
‘설탕 투척’ 외치는 요리사는 사업가
- 식품첨가제·보존제·응고제에 트랜스지방 등 건강을 위협하는 요소들이 많은데요.
- “주방의 블랙박스가 잡아내야 할 가장 중요한 두 가지가 있어요. 첫째 유지(油脂)의 산패(酸敗)입니다. 음식을 굽거나 튀길 때 기름을 많이 쓰는데 이게 굳어지고 변질되면 건강에 치명적입니다. 두 번째는 GMO라고 불리는 유전자변형식품입니다. 처음 이슈가 됐을 땐 사람들이 겁을 내다가 지금은 덤덤해진 것 같은데요. 당장은 괜찮지만 몇십년 동안 쌓이면 혈관에 큰 문제를 줘 피부의 탈색·변질, 발진과 통증을 일으킵니다.”
- 식품첨가제나 GMO를 전혀 안 먹고 살 수는 없잖습니까.
- “이들을 인식하고 먹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안 먹을 수는 없으나 최소한으로 먹고, 세포들에게 도움을 청해야죠. ‘이 음식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어. 그러니 세포들아 너희들이 알아서 밖으로 잘 내보내줘’라고 말하는 거죠. 이를 ‘세포 명상’이라고 합니다.”
- 아침 대용으로 abc주스(사과·비트·당근을 갈아 만든 것)를 먹는 분들이 많은데요.
- “식사량이 많지 않은 분들은 그것도 괜찮아요. 그런데 직장에 나가서 점심 전까지 일해야 하는 분들은 복합당이 필요합니다. 콩국물이든 현미든 탄수화물을 섭취해 주는 게 좋아요. 야채는 갈아서 먹는 것보다 삶거나 데쳐서 씹어 먹는 게 입안에서 소화액 분비를 일으키고, 치근을 자극해서 좋습니다.”
- 사찰음식은 육식을 하지 않는 게 비건과 비슷한 것 같은데요.
- “동물복지와 생명사랑이라는 점에선 뜻을 같이 합니다. 그런데 비건은 하다가 그만둘 수도 있지만 절집에서는 죽는 날까지 사찰음식을 먹어야 합니다. 아, 절에서 계란은 안 먹지만 우유는 먹습니다. 알에서는 생명이 태어나지만 우유에서 송아지가 나오지는 않잖아요(웃음). 스님들은 치즈를 정말 좋아합니다. 뜨거운 죽에 치즈 한 개를 넣어 먹으면 아주 녹아내립니다. 좀 부족한 가운데서 솟아나는 즐거움과 감사, 이걸 검박(儉朴)이라고 하지요.”

대안스님 1986년 해인사 국일암에서 출가의 길에 들어섰고, 37년째 불교 수행자로 살고 있다. 지리산 금수암에서 금당사찰음식차문화원을 운영하고 있다. 동국대에서 식품영양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대한불교조계종 사찰음식 명장으로 지정됐다. ‘식탁 위의 명상’ ‘마음의 살까지 빼주는 사찰음식 다이어트’ 등의 책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