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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 속 탄소 포집, 향수·의약품서 탄산수까지 만든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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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0호 24면

인문학자의 과학 탐미

최근 유럽에서 폭염과 한파, 태풍과 폭설, 대형 산불 등 극한기후 발생빈도가 4.8배 늘어났다. 지구 온난화를 막으려는 탄소중립의 갖은 노력이 수년 동안 쏟아지고 있지만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뚜렷했던 사계절의 경계도 점차 사라지고 이상 기후는 가속화되고 있다. 현재 지구 평균 온도는 산업화 이전 대비 평균 1.09℃ 높아졌고 해수면도 1901년보다 0.2m 상승했다고 한다. 이상 기후로 채소들을 비롯한 먹거리의 품귀 현상까지 일어나면서 우리의 삶은 더욱 팍팍해졌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2021년 8월 제54차 총회에서 지구의 평균 온도가 1.5℃ 이상 도달하는 시점을 기존 2030~2052년에서 10여년이나 앞당긴 2021~2040년이라고 분석했다. 2℃  상승할 경우 지구는 생존하기 어려운 곳이 돼버릴 것이다. 그나마 상승하는 온도를 1.5℃ 로 억제할 경우 큰 위험을 막을 것이라고 한다.

보령화력 등 국내 업체도 탄소포집

스위스에 있는 클라임웍스의 이산화탄소 포집 설비. [사진 valser]

스위스에 있는 클라임웍스의 이산화탄소 포집 설비. [사진 valser]

2015년 기후변화회의에서 채택한 파리 협정은 극한기후로 발생할 비상사태를 미리 막고자 2050년까지 ‘넷제로(Net Zero)’를 이루자고 밝혔다. 넷제로란 온실가스 배출량과 흡수량이 균형을 이루어 실질적으로 순(純, net) 배출을 제로(0)로 만들자는 강령이다. 이산화탄소, 메탄, 이산화질소, 수소불화탄소, 과불화탄소, 육불화황 등 6가지 온실가스의 배출량과 관련되지만 이산화탄소가 온실가스의 대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흔히 탄소중립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산화탄소는 식물의 광합성, 동물의 호흡 등을 통해 자연계에 순환되면서 흡수량과 배출량이 지구에서 오랜 세월 균형을 유지했지만, 2차 산업혁명 이후 그 배출량이 많아지면서 균형이 무너졌다. 최근 우리나라 통계만 봐도 탄소 흡수량이 2018년 4560만t인 반면 2019년 배출량은 6억4380만t으로 배출량이 14배나 높다.

코카콜라 소유의 브랜드 발저는 이 설비(위 사진)로 포집한 이산화탄소로 탄산수를 만들어 출시했다. [사진 valser]

코카콜라 소유의 브랜드 발저는 이 설비(위 사진)로 포집한 이산화탄소로 탄산수를 만들어 출시했다. [사진 valser]

병든 지구를 살리자는 노력은 기업들의 ESG 실천으로 이어졌고 탄소중립을 위한 기후테크(Climate Technology, CTech)가 활황을 이루면서 이산화탄소포집·활용·저장(CCUS) 기술이 그 중심에 서게 됐다. 지난 3월 2일 우리나라 소재기술 전문회사 중 하나인 SK머티리얼즈가 탄소포집 분야에서 선도 기술을 보유한 미국 아이온에 지분을 투자하고 전략적 제휴 관계를 체결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마디로 현재 탄소중립을 위해 인위적인 탄소포집·활용·저장 기술이 본격적으로 강구되고 있는 것이다.

CCUS(Carbon dioxide Capture Utilization and Storage)가 실현가능한 기술로 주목을 받는 이유는 미국·노르웨이 등에서 이미 성공한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산화탄소가 석유 및 가스전에 주입되어 유전에 남아 있는 원유를 추가적으로 생산해내는 원유회수 증진법(EOR, Enhanced Oil Recovery)은 1972년부터 현재까지 미국에서 사용되고 있으며, 2017년부터 가동된 일리노이 인더스트리얼 탄소포집·저장(CCS, Carbon dioxide Capture and Sequestration) 프로젝트는 포집된 이산화탄소를 2㎞깊이의 지질에 저장한 최초의 프로젝트로 평가 받았다.

이 프로젝트는 노르웨이에서 1996년에 상업적으로 활용된 이산화탄소의 지층 저장 사례를 개발한 결과였다. 또한 2008년부터 가동된 노르웨이의 스노비트 저장소는 천연가스 공정 중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를 연간 약 70만t 저장할 수 있으며 최대 용량 4000만t의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CCS는 2021년 8월 기준 전 세계적으로 25개 프로젝트가 상업운영 중이며 38개의 추가 프로젝트가 계획되어 있다.

여기서 한 단계 더 발전하여 활용까지 포함된 CCUS 기술은 지구온난화의 강도 높은 해결책으로 집중 조명되고 있다. 각국 정부를 비롯해 MS의 빌게이츠, 아마존의 제프 베이조스의 지지를 적극적으로 받았을 뿐만 아니라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에 의해 그 기술이 최고 수준으로 개발되는 곳에 1억 달러가 베팅된다는 말이 돌면서 많은 사람들의 기대감 또한 최고조에 달한 것도 사실이다.

CCUS 개념도

CCUS 개념도

CCUS의 과정은 미국과 노르웨이를 통해 이미 시행되고 있는 CCS 단계와 앞으로 특정 소재로 개발될 탄소포집·활용(CCU, Carbon dioxide Capture Utilization) 단계로 나뉘는데 특히 CCS는 국제표준화기구인 ISO 기준에 따르면 이산화탄소 포집, 이송 및 지질 저장(Carbon dioxide Capture, Transportation and Geological Storage) 전반을 말한다.

우선 이산화탄소를 효율적으로 포집하는 방법부터 살펴보자. 이산화탄소의 대기 중 농도는 0.04%로 미미하지만 석유화학, 정유, 시멘트, 철강 공장의 굴뚝에서 나오는 배기가스 중 농도는 보통 10% 정도다. 이런 산업은 탄소를 모으려고 이미 일찍부터 이산화탄소에 흡수제를 넣어 탄소를 제거하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이 방법으로 포집하는 대표적인 산업체는 보령화력, 태안화력, 포항제철소, 성신양회 시멘트 등을 들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탄소포집에는 아민(Amin)계 흡수제가 주로 쓰이는데, 아민에 흡수된 이산화탄소에 열을 가하면 두 물질이 쉽게 분리된다. 이후 아민은 재활용되어 또 다른 이산화탄소를 포집하도록 하고 분리된 이산화탄소는 온도와 압력이 가해져 액체상태가 되면서 탄소 포집이 완료된다.

이제 탄소의 이송을 살펴보자. 포집된 이산화탄소를 효율적으로 이송하려면 액체나 기체와는 다른 상태가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액체일 경우는 밀도가 크지만 점성이 높아 배관에 손실을 입히며, 기체일 경우는 점성과 밀도가 모두 낮아 이송되는 양이 매우 적기 때문이다. 결국 이산화탄소는 액체와 기체의 중간인 초임계 상태가 되어야 다량으로 안전하게 이송될 수 있다.

빌 게이츠·일론 머스크도 적극 지지

이렇게 이송된 탄소는 지하 해저에 저장된다. 대기 중 이산화탄소는 25%가량이 바다에 자연적으로 흡수되어 심해로 가라앉아 탄산염·석회암과 같은 암석이 된다. 이런 자연의 순환 과정과 가장 유사하여 친환경적인 방법이라고 선호되는 저장소가 바다에 있는 폐유전이나 폐가스전이다.

울산 앞바다에 있는 우리나라 최초 유전인 동해가스전도 저장소로 쓰일 예정이다. 이 유전은 2004년부터 17년간 천연가스를 생산해오다가 2021년에 생산종료 되었다. 현재 비어있는 동해가스전 저류층은 단단한 암석층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이산화탄소가 안정적으로 저장될 수 있으며 2025년부터 연간 40만t씩 30년간 총 1200만t이 저장될 계획이다. 깊은 바다 속에 저장된 이산화탄소는 혹시 조금씩 새어 나오더라도 서서히 물에 녹게 되고, 오랜 시간이 지나면 땅속 암석이나 광물과 반응해 암석이 되긴 하지만 요즘엔 아예 주입할 때 압력을 높여서 단단한 광물 상태인 탄산염으로 저장하는 ‘암석화’가 채택되기도 한다.

아무리 좋은 저장소라고 해도 공간적 한계는 있기 마련이다. 넓은 저장소를 확보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지진이나 전쟁 등으로 이산화탄소가 다량으로 유출될 위험도 있다. 그래서 탄소를 포집과 저장만 해서는 안 되고 활용할 수 있는 CCU가 다각도로 모색되고 있다. 예를 들어 폐콘크리트, 석탄재, 탈황석고 등의 산업부산물을 처리하여 거기에 있던 이산화탄소가 광물탄산화 되면 친환경 건축자재를 생산하는 데 활용될 수 있다. 그 뿐만 아니라 탄소로 미세조류를 배양시켜 바이오매스를 얻게 되는데 이것은 바이오디젤 등의 연료로 사용되거나 화장품·식품·의약품으로 제품화될 수도 있다.

흥미로운 활용 사례들도 있다. 코카콜라 소유의 브랜드 발저(Valser)는 대기 중에서 포집된 이산화탄소로 탄산수를 만들어 출시했다. 또한 미국에서는 포집된 이산화탄소를 에탄올로 화학전환하여 보드카로 제조하기도 했다. 조만간 향수·선글라스·옷 등에도 이산화탄소를 활용한 제품들이 선보일 예정이다. 아직까지는 높은 기술적 난이도와 막대한 개발 비용 때문에 상용화하기에 역부족이지만 최근 탄소중립 정책의 가속화와 함께 연구개발이 지속되고 있다.

친환경을 앞당기기 위해서 CCUS가 반드시 필요한 분야가 있다. 아직까지는 수소 생산 공정에서 온실가스가 발생한다는 가장 큰 약점을 갖고 있는데, 이것을 극복할 수 있는 기술이 바로 CCUS다. 수소는 그 생산 방식과 친환경성에 따라 그린수소, 그레이수소, 블루수소 3가지로 구분된다.

그린수소는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에서 나온 전기로 물을 전기분해하여 생산된 것이지만 원가가 너무 높아서 아직까지는 현실성이 부족하다. 현재 생산되는 수소의 약 96%에 해당하는 그레이수소는 메탄과 고온의 수증기를 촉매 화학반응하여 얻어낸다. 이때 이산화탄소가 다량으로 발생되는데 수소 약 1㎏당 10㎏이라고 한다. 이때 발생하는 이산화탄소가 대기로 배출되지 않도록 하여 생산한 수소가 블루수소인데, 이것을 생산하려면 CCUS 기술이 반드시 전제되어야만 한다. 이렇듯 CCUS는 신재생에너지와의 연계와 활용이 높아 그 잠재력 또한 높다고 할 수 있다.

전 지구적으로 전기·가스·석유를 비롯한 에너지 가격이 급등하면서 생필품의 가격이 오르고 있다. 어쩔 수 없이 연탄과 같은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상황도 벌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제 탄소중립의 다른 차원도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 모든 동물의 호흡에서 그렇듯 인간의 모든 활동에도 이산화탄소가 발생한다. 탄소의 배출량과 흡수량이 균형을 잃은 상황에서 탄소중립을 지키려는 개인의 실천과 함께 탄소를 포집·활용·저장하는 일에도 우리의 눈길을 돌릴 때이다. 그렇게 할 때 저탄소 수소인 블루수소의 생산을 앞당길 수 있을 것이다.

김동훈 인문학자. 서양고전학자·철학자. 서울대와 고려대에서 희랍과 로마문학 및 수사학, 철학을 공부했다. 희랍어와 라틴어 및 고전과 인문학을 가르친다. 인문학의 서사를 담아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퓨라파케’ 대표. 『인공지능과 흙』 『브랜드 인문학』 『키워드 필로소피』 『별별명언』 등을 썼고,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등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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