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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방울 전주곡' 탄생시킨 피아노, 나치 약탈품이 되기까지[BOOK]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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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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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팽의 피아노
폴 킬데아 지음
배인혜 옮김
만복당

1838년 11월, 두 자녀와 하녀를 동반한 '뒤드방 부인'이 스페인의 제법 큰 섬 마요르카에 도착한다. 이 프랑스 여성 작가는 입항 기록에 남은 본명보다는 '조르주 상드'라는 남성적 필명으로 더 유명한 터.

이 섬에 여러 달 머물며 상드는 글을 썼고, 함께 온 6세 연하의 병약한 연인 쇼팽은 곡을 썼다. 유명한 '빗방울 전주곡'을 비롯해 전주곡집(Op.28)의 여러 곡이 이때 탄생했다. 미리 주문한 플레엘 피아노가 뒤늦게 도착했기 때문에, 이 무렵 쇼팽은 후안 바우사라는 현지 장인이 만든 피아노를 사용했다. 비록 상드는 이 악기를 "조악한 피아노"라고 했지만.

마요르카에서 쇼팽이 썼던 피아노. 후안 바우사라는 이름의 현지 장인이 만든 것이다. 이 사진은 1920년대 혹은 1930년대에 촬영한 것으로 추정된다. [사진 만복당]

마요르카에서 쇼팽이 썼던 피아노. 후안 바우사라는 이름의 현지 장인이 만든 것이다. 이 사진은 1920년대 혹은 1930년대에 촬영한 것으로 추정된다. [사진 만복당]

지휘자이기도 한 이 책의 저자는 바우사 피아노의 행방을 일단 제쳐두고, 마요르카 이후 39세로 별세하기까지 쇼팽의 삶을 따라간다. 상드에 대한 주변의 엇갈리는 시선, 연주자와 작곡자로서 각각 다른 쇼팽의 면모 등은 물론 피아노란 악기가 어떻게 변화했고, 전주곡집이 왜 혁신적이고 놀라운 작품인지, 쇼팽의 사후 그의 곡에 대한 해석과 연주 방식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등을 풀어간다. 사안마다 서로 다른 견해까지 아우르는 풍부하고 세밀한 인용과 해박한 지식을 통해서다.

특히 혁명과 반혁명, 역병 등 쇼팽이 살았던 시대의 흐름과 공간 역시 부각한다. 덕분에 쇼팽의 낭만주의 음악이 '낭만'에서 흔히 떠올리는 표피적 인상과는 크게 다른 시대와 삶에서 탄생했음을 실감하게 한다.

뒤늦게 플레엘 피아노가 마요르카에 도착한 직후에 조르주 상드의 아들 모리스 뒤드방이 그린 그림. 즉 이 그림에서 쇼팽이 치고 있는 것은 바우사 피아노가 아니라 플레옐 피아노다. [사진 만복당]

뒤늦게 플레엘 피아노가 마요르카에 도착한 직후에 조르주 상드의 아들 모리스 뒤드방이 그린 그림. 즉 이 그림에서 쇼팽이 치고 있는 것은 바우사 피아노가 아니라 플레옐 피아노다. [사진 만복당]

바우사 피아노는 이 책의 후반부에 다시 등장한다. 이제 이야기의 주인공이 바뀐다. 하프시코드 연주자로 이름을 날렸던 반다 란도프스카다.

쇼팽보다 70년쯤 뒤 태어난 이 여성의 삶도 순탄하진 않았다. 유대인이었던 그는 나치의 박해를 피해 유럽을 떠나야 했고, 그의 수집품은 모두 나치에 압수당했다. 그중 하나가 그가 앞서 마요르카를 찾았다가 손에 넣은 바우사 피아노였다. 그 행방의 실마리는 종전 이후 나치 약탈품 추적과 함께 다시 이어진다.

쇼팽과 낭만주의 음악이 그랬듯, 란도프스카와 바우사 피아노 역시 낭만 대신 잔혹함이 넘치는 시대를 거쳐왔다. 원제 Chopin's Piano: A Journey through Romantic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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