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템 위기 공포…금리인상 여파, 美 4대은행 시총 70조 증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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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급격한 기준금리 인상 여파가 미국 은행권까지 흔들고 있다. 기준금리 급격한 인상으로 채권 가격이 폭락하면서 일부 은행이 대규모 자산 손실을 내서다. 금융의 마지막 방파제인 은행이 흔들린다면, 2008년 미국발(發) 금융위기 때와 같은 시스템 위기가 올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실리콘밸리은행, 하루 새 주가 60% 폭락 

SVB 파이낸셜 홈페이지 캡처

SVB 파이낸셜 홈페이지 캡처

9일(현지시간)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illicon Valley Bank·SVB)을 보유한 SVB 파이낸셜 그룹의 주가는 전 거래일 종가(267.83달러) 대비 60.41% 폭락한 106.04달러에 마감했다. SVB가 최근 보유 매도가능증권(AFS·만기 전 매도할 수 있는 채권과 주식)을 매각해 18억 달러(약 2조3800억원)의 손실을 보았다고 발표하면서다. SVB 파이낸셜 그룹은 이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신주 발행으로 22억5000만 달러(약 2조97000억원)를 추가 조달한다고 밝혔다.

미국 실리콘밸리 지역의 지방은행 격인 SVB는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자금을 빌려주는 벤처전문 은행이다. 실리콘밸리 지역의 벤처캐피탈과 테크 기업·사모펀드 등의 자금을 받아 자금력이 달리는 유망벤처에 기술력을 담보로 돈을 빌려준다. 현재 한국의 금융당국이 은행권 규제 완화를 위해 추진을 검토하고 있는 ‘스몰라이센스’의 성공 모델로도 거론되고 있다.

기준금리 인상에 채권 등에서 대규모 손실

SVB가 대규모 손실을 낸 것은 최근 Fed의 급격한 기준금리 인상 때문이다. SVB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한 지난 2021년, 테크 기업 열풍을 경험하면서 자산과 예금이 급격히 늘었다. 이 자금으로 비교적 안전하다고 여긴 미국 국채와 미국 정부 보증 채권에 투자했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Fed가 기준금리를 급격히 올리면서 채권 가격이 폭락했다. 여기에 최근 테크 기업이 불황을 겪으면서, 벤처캐피탈과 테크 기업들이 예치했던 예금을 인출하기 시작했다. 급격한 예금 인출에 자금이 부족해진 SVB는 막대한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채권 대부분을 팔아야 했다. 채권은 만기까지 보유하면 원금을 보장받을 수 있지만, 금리가 오르는 시기에 중간에 팔면 손해를 본다.

전체 은행권 전이 우려…시스템 위험 오나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 로이터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 로이터

SVB 사태는 자본력이 부족한 미국의 다른 은행들에서도 재연될 수 있다. 코로나19 당시 미국의 저축률이 급격히 늘면서, 은행들이 예금 등을 대표적 안전자산인 미국 국채에 많이 투자해서다. 최근 자체 청산을 발표한 암호화폐 전문은행인 미국 실버게이트도 급격한 예금 감소에 대규모 손실을 감수하고서도 채권 등 자산을 팔면서 재정난을 겪었다. 실제 미 연방예금보험공사(FDIC)는 미국 은행들이 보유 증권에서 총 6000억 달러 이상의 미실현 손실을 냈다고 추산했다.

SVB 사례가 전체 은행권을 추가 확산할 수 있다는 우려에 다른 은행주들도 급락했다. 9일(현지시간) 미국의 4대 은행으로 꼽히는 JP모건체이스(-5.41%)·뱅크오브아메리카(-6.20%)·웰스파고(-6.18%)·씨티그룹(-4.07%)의 주가가 전 거래일 대비 큰 폭으로 내렸다. 시가총액으로 520억달러(약 68조6천억원)가하루 새 증발했다. 그 여파로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금융섹터는 이날 4.1% 떨어져 코로나19 시기였던 2020년 6월 이후 최대폭 하락을 기록했다.

다만 미국 주요 은행들은 2008년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상당한 자금을 축적했고, 자산도 다양하게 분산돼 있어 큰 위기를 겪지 않을 거란 분석이 많다. 하지만 Fed가 계속해서 기준금리를 올리면, SVB처럼 자금력이 부족한 일부 소규모 은행의 ‘약한 고리’에서 의외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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