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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우의 밀리터리 차이나] 中 '인해전술' 가고 '기해전술' 시대 온다(下)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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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上)편 내용과 이어집니다.  

중국이 대량 보급하고 있는 무인 장비들은 앞서 소개한 견마형 로봇이나 드론과 같이 완전히 새로 생산된 신규 장비들도 있지만, 현역에서 퇴역한 구형 장비들을 간단한 개조를 통해 무인 장비로 바꾼 ‘재생 장비’도 많다. 특히 최근에 무인 장비로 재생되고 있는 장비들은 과거 중국군이 인해전술·물량전 교리를 채택하고 있을 때 대량으로 생산됐던 모델들이기 때문에 무인 장비로 개조되는 수량도 어마어마하다.

중국이 지난 2018년, 59식 전차의 무인화 버전을 공개했을 때, 많은 사람은 큰 충격을 받았다. 59식 전차는 소련의 T-55 전차를 카피한 낡은 모델이지만 100mm 주포와 12.7mm 기관총, 7.62mm 기관총을 탑재하고 있고, 한때 주력전차로 운용됐던 차량이기 때문에 최근 개발되고 있는 일반적인 무인지상전투차량(UCGV : Unmanned Combat Ground Vehicle)보다 화력과 방어력이 훨씬 더 뛰어나다.

이미 대량으로 보유한 전차를 가져다가 원격조종장치와 자동장전장치만 부착하면 UCGV를 신규 생산하는 것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에 대량의 무인 전투차량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이다.

중국군 병사가 컴퓨터 앞에 앉아 원격으로 핸들을 조작, 59식 전차를 전진·후진시키고 있다. [중국 CCTV 캡처]

중국군 병사가 컴퓨터 앞에 앉아 원격으로 핸들을 조작, 59식 전차를 전진·후진시키고 있다. [중국 CCTV 캡처]

중국군은 이 무인 전투차량의 공개 시연 이후 양산 여부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싼값에 대량으로 장만해 유사시 유인(有人) 전차부대보다 앞서서 적의 대전차무기를 대신 맞아주고 화력을 퍼부어줄 수 있는 게 무인전차다. 개발해 놓고 대량 양산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더 이상한 일일 것이다.

참고로 59식 전차의 양산 물량은 1만 대에 달하며, 이 가운데 중국군이 보유했던 물량은 최소치로 잡아도 5000대를 가뿐하게 넘어간다. 이 물량이 무인전차로 개조돼 유사시 99식·96식 전차부대의 선봉에서 ‘탱커(Tanker)’ 역할을 하며 한 번에 수십·수백 대씩 달려온다고 상상해 보자. 방어하는 입장에서는 악몽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중국은 대량으로 보유했던 전투기들도 무인화하고 있다. 지난 2월, 중국은 1960년대부터 오랫동안 주력 전투기로 운용해 온 J-7 계열 전투기를 올해까지 전량 퇴역시킨다고 밝힌 바 있다. 소련의 MIG-21 전투기를 카피한 J-7은 1961년부터 생산을 시작했지만, 지속적인 개량을 거치며 2002년까지 개량 모델의 신규 생산이 이루어진 베스트셀러다. 중국은 이 전투기를 4000대 가깝게 보유했었지만, 2022년 기준으로 이 물량은 300대 미만으로 줄어들었다.

그렇다면 엄청난 수량이 생산됐던 J-7은 퇴역 후 전부 고철로 처분됐을까? 미 경제전문지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지난 2월 21일, 중국이 퇴역한 J-7 전투기들을 무인기로 개조하고 있다고 보도하며 대만 유사시 이 무인기들이 대만군에 엄청난 위협이 될 것이라고 보도한 바 있다. 중국은 J-7에 앞서 퇴역한 J-6 전투기도 확인된 것만 300대 이상 무인기로 개조해 대만 인근에 배치한 전례가 있다.

2018년 3월 22일 인민해방군 서부전구사령부 항공여단 소속 J-7 전투기 2대가 실사격 비행훈련을 위해 동시에 이륙하고 있다. [사진 중국 공군]

2018년 3월 22일 인민해방군 서부전구사령부 항공여단 소속 J-7 전투기 2대가 실사격 비행훈련을 위해 동시에 이륙하고 있다. [사진 중국 공군]

사실 ‘유인기’를 ‘무인기’로 개조하는 것은 생각보다 그 기술적 난도가 낮다. 기술 발전과 무인기 관련 기술 보급의 확산으로 대학 학부 수준, 또는 RC 항공기 동호인 수준의 지식을 가진 사람도 인터넷 쇼핑몰을 통해 RC 항공기를 자율비행이 가능한 드론으로 개조할 수 있는 시대가 됐기 때문이다.

RC(Radio Control) 항공기는 무선 조종을 통해 항공기의 각 부분을 제어해 비행하는 물건이다. 이러한 항공기에는 사람이 손에 쥔 무선 조작기의 신호를 수신해 엔진이나 날개의 조작 신호로 변환하는 제어 장치가 들어가 있다. 인터넷 쇼핑몰에서는 이러한 제어장치를 사람이 아닌 소프트웨어가 조작하도록 변환해 주는 자율비행 변환 칩셋을 싸게는 수백 달러, 비싸도 2~3천 달러 정도에 구매할 수 있다. 북한이 한국에 날려 보내는 소형 무인기들도 일반 RC 항공기를 자율비행 모델로 개조한 염가형 모델들이었다.

전투기도 마찬가지다. 기존의 유인 전투기에서 사람이 수행하던 페달과 스로틀 조작 기능을 무인조종장치로 대체해버리면 유인 전투기를 무인 전투기로 만들 수 있다. 물론 이러한 단순 개조 무인기의 경우 이륙과 비행 중 자세 제어, 무유도 무장 투발 등 간단한 동작만 가능하겠지만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이 무인 전투기는 기존의 유인 전투기가 수행하는 역할을 대체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자폭 돌격과 미끼로 사용되기 위해 만들어지는 물건이기 때문이다.

중국은 1995년부터 J-7의 무인화 버전을 만들어 실험해왔을 정도로 J-7 전투기의 무인화 작업에 오랜 공을 들여왔다. 300여 대 정도에서 무인화 개조 작업이 끝난 J-6와 달리 J-7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의 많은 물량이 개조될 가능성이 크다. 2002년에 J-7 유인 전투기의 양산은 종료됐지만, 이 전투기에 탑재되는 엔진과 동체 주요 부품의 생산은 현재도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2021년 9월 공개된 J-6 무인 항공기 개조 모습. [사진 Planet Imagery]

2021년 9월 공개된 J-6 무인 항공기 개조 모습. [사진 Planet Imagery]

중국 공군의 현용 주력 훈련기인 JL-9이나 중국이 최근 전차보다 저렴한 수출용 전투기로 제3세계 국가에 활발히 판촉하고 있는 FTC-2000시리즈는 J-7의 2인승 훈련기 버전인 JJ-7의 설계를 살짝 바꾼 모델이다. 엔진은 물론 기체 제어 계통의 부품이 J-7과 동일하기 때문에 이미 단종된 J-6와 달리 대량의 무인기 개조 작업을 진행하더라도 향후 유지·보수 측면에서 절대적으로 유리한 장점이 있다.

J-7은 J-6에 비해 기본 성능도 우수하다. 기본적으로 마하 2.0의 초음속 비행이 가능한 전투기이고, 최대 2톤의 각종 무장을 장착할 수 있어 무장 능력도 우수하다. J-7이 유인 전투기였을 때 이 전투기의 전투행동반경은 850km에 불과했지만 어차피 자폭 또는 미끼 임무를 맡아 귀환할 필요가 없는 J-7 무인기는 그 2배 거리에서 날려 보낼 수 있어 적의 지대지 공격 무기 사거리 밖에서 대량으로 띄울 수도 있다.

J-7 무인화 개조기는 유사시 대만해협 상공을 까맣게 각종 폭탄이나 로켓탄을 투발한 뒤 적의 레이더 사이트나 방공 진지를 향해 자폭 돌격을 감행할 수도 있고, 그런 임무 수행을 하지 못하더라도 유인 전투기 편대군에 앞서 대만군의 공대공·지대공 미사일을 소진하는 미끼로도 충분히 그 역할을 다할 수 있다. 군대의 규모를 고려했을 때 충분한 양의 요격용 미사일 확보가 어려운 대만 입장에서는 심각한 위협이 아닐 수 없다.

중국이 개발한 2세대 제트 전투기 청두 J-7. [사진 중국 공군]

중국이 개발한 2세대 제트 전투기 청두 J-7. [사진 중국 공군]

문제는 중국이 과거 대량 보유했던 유인 전투기들을 개조한 무인기들의 용도를 대만 공격에만 한정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대만 유사시 군사 개입 의지를 밝히고 있는 미국과 일본의 주요 군사시설들은 물론,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에 합의한 한국도 이러한 무인기들의 작전 영역이 될 수 있다. 중국은 유인 전투기 규모 면에서도 주변국들보다 우위에 있지만, 유사시 구형 전투기 개조 무인기와 각종 드론, 순항 미사일을 동시다발적으로 투발하며 적의 방공망을 압도하는 전술을 사용할 가능성이 높다.

다시 말해 유사시 서해 상공에 수백 대의 J-6 또는 J-7 무인 전투기들이 뜨지 말라는 법은 없다는 말이다.

오늘날 세계 최고 수준의 드론 강국이 된 중국은 70년 전 ‘인해전술(人海戰術)’을 무인화 기술을 이용한 ‘기해전술(機海戰術)’로 바꿔 새로운 형태의 물량전을 준비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6.25 전쟁 당시 그들의 물량전에 쓴맛을 보았고, 그 물량전에 당해 밀려 내려온 탓에 국토의 허리를 잘린 채로 70년을 분단국으로 살아야 했다.

역사는 되풀이된다. 중국이 무인기를 통한 새로운 물량전을 준비하는 이 상황을 엄중히 인식하고 대비하지 않는다면, 과거의 아픔이 되풀이되지 않을 것이라고 누가 보장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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