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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수함에도 비슷한 기능…세균 세포 안 '길쭉한 깡통' 정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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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저온 전자현미경 기법으로 촬영한 세균(B. megaterium)과 남세균(A. flos-aquae) 세포 속의 공기주머니. 길쭉한 원통 양쪽에 원뿔이 달린 형태다. 공기주머니는 세균과 남세균이 부력을 갖도록 해준다. [자료: Cell, 2023]

초저온 전자현미경 기법으로 촬영한 세균(B. megaterium)과 남세균(A. flos-aquae) 세포 속의 공기주머니. 길쭉한 원통 양쪽에 원뿔이 달린 형태다. 공기주머니는 세균과 남세균이 부력을 갖도록 해준다. [자료: Cell, 2023]

세균 세포 속에서 부력(浮力)을 조절하는 공기주머니가 길쭉한 깡통 모양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

녹조를 일으키는 남세균(cyanobacteria)에서도 굵기만 다를 뿐 거의 똑같은 모양의 공기주머니가 관찰됐다.

네덜란드 델프트 공과대학 연구팀은 최근 '셀(Cell)' 저널에 발표한 논문에 세균의 '기체 주머니' 즉 기포(氣胞, gas vacuole, GV)' 구조와 합성 과정에 대해 이같이 소개했다.

세균 속 공기주머니의 구조를 나타낸 분자 모델. [자료: Cell, 2023]

세균 속 공기주머니의 구조를 나타낸 분자 모델. [자료: Cell, 2023]

GV는 물고기의 부레나 잠수함·선박의 평형수(ballast) 칸막이처럼 물속에 사는 세균이 부력을 조절할 수 있도록 해주는 세포 내 작은 주머니를 말한다. 이 속에 기체가 차면 세균이 부력을 얻게 된다.

초저온 전자현미경으로 구조 관찰 

세균 공기주머니. 대장균(E.coli) 유전자에 공기주머니 생성 단백질 유전자를 넣어 발현시킨 결과, 대장균 세포에 공기주머니(GV)가 생겼다. BC는 공기주머니로 자라기 전에 원뿔이 먼저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보여준다(A). 세균 세포 속 공기주머니(B), 남세균 세포 속 공기주머니(C). [자료: Cell]

세균 공기주머니. 대장균(E.coli) 유전자에 공기주머니 생성 단백질 유전자를 넣어 발현시킨 결과, 대장균 세포에 공기주머니(GV)가 생겼다. BC는 공기주머니로 자라기 전에 원뿔이 먼저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보여준다(A). 세균 세포 속 공기주머니(B), 남세균 세포 속 공기주머니(C). [자료: Cell]

연구팀은 이번에 초저온 전자현미경(cryo-EM) 방법으로 물이나 토양, 사람의 장 속에 사는 바실러스 메가테리움(Bacillus  megaterium)란 세균과 아파니조메논 플로스ㅡ아쿠애(Aphanizomenon  flos-aquae)란 남세균의 GV의 형태를 관찰했다.

연구팀은 또 작은 단백질이 모여 스스로 GV 껍질을 만들어가는 과정도 분석했다.

연구팀은 바실러스 세균의 GV가 길쭉한 원통이고, 원통 양쪽 끝을 원뿔(고깔)이 막는 모양이라고 밝혔다.

세균의 GV는 원통 지름이 평균 55.5nm(나노미터, 1nm=100만분의 1㎜), 남세균 GV의 지름은 평균 87.1nm로 관찰됐다.
GV의 길이는 0.1-1㎛(마이크로미터, 1㎛=1000분의 1㎜)로 다양하게 나타났다.

이런 GV는 단백질의 3차원 입체 구조가 마치 '해마((海馬)'처럼 생긴 GvpA라는 단백질이 수천 개 모여서 만들어진다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길이 3.2Å(옹스트롬, 1Å=0.1nm), 분자량 7000달톤(Da)인 이 작은 단백질이 블록 장난감처럼 켜켜이 연결돼 원통을 만든다.

세균의 GV 원통을 한 바퀴 감싸는 데는 평균 145개의 Gvp 단백질 단량체(monomer)가 필요하다.
남세균 GV의 경우 이 단백질 227개가 있어야 원통을 한 바퀴 감을 수 있다.

원뿔 2개 합쳐진 뒤 원통 부분 자라

단백질이 모여 공기 주머니를 만드는 모습. 공기주머니 단백질 단량체(A). 단백질이 여럿이 아래위로 연결되는 모습(B). 단백질이 아래위, 좌우로 연결되면서 원통을 만든 모습(D). 얇고 성긴 부위를 통해 기체와 액체가 드나드는 모습(D). [자료: Cell, 2023]

단백질이 모여 공기 주머니를 만드는 모습. 공기주머니 단백질 단량체(A). 단백질이 여럿이 아래위로 연결되는 모습(B). 단백질이 아래위, 좌우로 연결되면서 원통을 만든 모습(D). 얇고 성긴 부위를 통해 기체와 액체가 드나드는 모습(D). [자료: Cell, 2023]

이렇게 수백 바퀴를 뜨개질하듯이 나선형(나사못에 비스듬하게 돌아가며 홈이 파인 형태)으로 단백질이 쌓이면 마침내 GV가 만들어진다는 게 연구팀의 설명이다.

연구팀은 "GV는 생체 분자가 큰 구조를 스스로 조립하는 것을 보여주는 놀라운 사례"라며 "처음에 '조립 핵' 역할을 하는 단백질 분자가 있어서 원뿔 부분부터 GV 구조 조립을 시작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추정했다.

원뿔 꼭지부터 감돌면서 점점 원을 넓혀 나가면서 원뿔을 만들고, 원뿔 지름이 어느 정도 크기에 도달하면 원뿔에서 원통형으로 전환한 다음 계속 원을 그리게 된다는 것이다.

실제 조립 과정에서는 '핵'이 이중원뿔을 만든 다음, GvpA 단백질 단량체가 계속 비집고 끼어들면서 원통이 길어진다.

이 과정에서 GvpA 단백질은 횡으로도 연결되지만, 길이 방향으로도 서로 결합하게 된다.

원통 내부는 물 싫어하는 '소수성'  

세균 공기주머니가 스스로 조립해나가는 과정. 단백질 단량체(monmer)가 핵(nucleus)이 돼 이중원뿔을 만들고, 여기에 새로운 단백질 단량체가 계속 끼어들면서 원뿔이 자라고, 다시 원통으로 길게 자라면서 공기주머니가 완성된다. [자료: Cell, 2023]

세균 공기주머니가 스스로 조립해나가는 과정. 단백질 단량체(monmer)가 핵(nucleus)이 돼 이중원뿔을 만들고, 여기에 새로운 단백질 단량체가 계속 끼어들면서 원뿔이 자라고, 다시 원통으로 길게 자라면서 공기주머니가 완성된다. [자료: Cell, 2023]

이때 위아래 원이 서로 겹치는 두꺼운 부분과 겹치지 않는 얇은 부분이 생기는데, 얇고 성긴 부분의 단백질 틈새로 물과 기체가 드나들게 된다.

GV 원통 내부에는 단백질을 구성하는 아미노산 중에서도 물과 서로 밀어내는 성질을 지닌 소수성(疏水性, hydrophobicity) 아미노산이 배열돼 물 분자는 GV 밖으로 밀어낸다.
덕분에 물은 빠져 나가고 GV 안에는 기체만 모이게 된다.

원통은 또 두꺼운 부분과 얇은 부분이 겹겹이 반복되면서 파인애플 통조림이나 아코디언 모양의 주름을 갖는다.
이 주름 덕분에 GV는 압력에 견딜 수 있는 탄력성도 지닌다.

연구팀은 "바실러스 세균이나 남세균 외에 고세균인 할로박테리움(Halobacterium salinarum) 등에서 비슷한 GV가 관찰되는 점에서 이 GV가 생물 진화 과정에서 잘 보존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녹조 일으키는 남세균에 이점 제공 

지난해 7월 낙동강 합천창녕보에 생긴 남세균 녹조. 녹색 페인트를 풀어놓은 것 처럼 짙은 녹조가 발생했다. 남세균은 공기주머니를 가지고 있어 다른 조류보다 경쟁에서 유리하다. [대구환경운동연합]

지난해 7월 낙동강 합천창녕보에 생긴 남세균 녹조. 녹색 페인트를 풀어놓은 것 처럼 짙은 녹조가 발생했다. 남세균은 공기주머니를 가지고 있어 다른 조류보다 경쟁에서 유리하다. [대구환경운동연합]

한편, 남세균의 경우 여름철 성층화된 호수에서 다른 조류(藻類)를 경쟁에서 밀어내고 짙은 녹조를 일으키는 것도 이 GV 때문이다.

다른 조류는 잔잔한 호수에서 가라앉는 데 비해 남세균은 GV를 이용해 수층을 상하로 오르내리면서 적당한 태양광으로 광합성을 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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