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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면 목구멍' 이선권도 있다…북 파워엘리트 '삼지연 20인' 실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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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80주년 생일을 맞아 15일 영하 30도의 백두산 인근 삼지연시 김정일 동상 앞에서 중앙보고대회가 열렸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군중의 환영에 손을 들어 화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80주년 생일을 맞아 15일 영하 30도의 백두산 인근 삼지연시 김정일 동상 앞에서 중앙보고대회가 열렸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군중의 환영에 손을 들어 화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올해 집권 12년차를 맞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대대적인 인사 물갈이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강대강 정면승부 투쟁을 다짐한 '삼지연 20인 그룹'을 요직에 포진시킨 것으로 나타났다. 중앙일보가 지난 달 통일부가 발표한 2023 북한권력기구도 및 김정은의 주요 공개 활동을 분석한 결과다.

삼지연 20인은 지난해 2월 북한이 김씨 일가의 성지라고 주장하는 백두산 삼지연(三池淵)에서 전격적으로 이뤄진 김정일 생일 80주년 기념 중앙보고대회에 참석했던 파워엘리트다. 당시 김정은의 '대변인' 김여정 부부장, 김정은의 '복심'으로 불리는 조용원 노동당 조직비서 등 20명이 중앙보고대회 주석단에 자리했었다. 삼지연 20인 회의가 중요한 이유는 당시가 대미 핵 대결을 공식화한 직후 열린 전략회의여서다.

북한이 지난해 2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생일 80주년을 기념해 삼지연에서 개최한 중앙보고대회의 주석단 모습. 조선중앙TV캡처, 뉴스1

북한이 지난해 2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생일 80주년을 기념해 삼지연에서 개최한 중앙보고대회의 주석단 모습. 조선중앙TV캡처, 뉴스1

대북 소식통은 "김정은이 핵실험·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모라트리엄(유예) 파기 검토를 지시한 직후인 지난해 2월 삼지연에서 핵심 친위그룹 20여 명과 특별 회동을 했다"며 "삼지연 회동을 계기로 미국 등 국제사회가 정한 '레드라인'을 넘는 ICBM 발사, 강대강 정면승부 투쟁과 같은 큰 방침을 세워놓고 그에 따른 진용을 꾸린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은은 삼지연 회의 한달 후인 지난해 3월 16일 신형 ICBM인 '화성-17형'을 시험 발사했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통일부는 지난달 16일 '2023 북한 권력기구도'를 발간하면서 최근 1년간 당·정·군 조직 전반에 걸쳐 50% 안팎의 대폭 인사가 이뤄졌다고 밝혔다. 하지만 인사 물갈이에도 삼지연 20인이 자리를 지키며 김정은을 보위하는 건 대미 초강경 대결노선이 계속될 것임을 보여준다. 올해 핵·미사일 고도화를 통해 미국과 장기전을 대비하는 것은 물론 미사일 발사, 국지도발, 사이버 공격 등 예측불가능한 대남 도발을 계속할 가능성이 크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1월 대미 신뢰구축 조치를 전면 재고하고 '잠정 중지했던 모든 활동'을 재가동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힌 제8기 제6차 정치국회의를 진행하는 모습. 김정은은 이날 회의에서 핵실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 중지라는 '모라토리엄' 선언의 철회를 시사했다. 뉴스1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1월 대미 신뢰구축 조치를 전면 재고하고 '잠정 중지했던 모든 활동'을 재가동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힌 제8기 제6차 정치국회의를 진행하는 모습. 김정은은 이날 회의에서 핵실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 중지라는 '모라토리엄' 선언의 철회를 시사했다. 뉴스1

오경섭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하노이 노딜 이후 핵·미사일 능력 고도화를 통한 장기전으로 정책노선 전환이 이뤄지는 과정에서 파워엘리트의 재편이 이뤄졌을 것으로 보인다"며 "삼지연 중앙보고대회에 참석했던 20인이 지난 1년간 몰아친 인사 '칼바람'에도 건재하다는 것은 이들이 핵심권력에 자리매김했음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평양 권력의 핵심은 2011년 12월 김정일 국방위원장 영결식에서 운구차에 손을 얹고 호위했던 '운구차 7인 그룹(장성택, 김기남, 최태복, 이영호, 김영춘, 김정각, 우동측)'에서 2013년 11월 김정은 위원장과 삼지연에서 장성택 숙청을 모의했던 '삼지연 8인 그룹(황병서, 김원홍, 김병호, 김양건, 박태성, 한광상, 홍영칠, 마원춘)'을 거쳐 '삼지연 20인 그룹'으로 변화하는 모양새다.

북한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생일 80주년을 맞아 지난해 2월 백두산 인근 삼지연시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참석한 가운데 중앙보고대회를 열었다. 사진은 김 위원장과 조용원 당 조직비서가 대화하는 모습. 조선중앙TV 캡처, 연합뉴스

북한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생일 80주년을 맞아 지난해 2월 백두산 인근 삼지연시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참석한 가운데 중앙보고대회를 열었다. 사진은 김 위원장과 조용원 당 조직비서가 대화하는 모습. 조선중앙TV 캡처, 연합뉴스

삼지연 20인 그룹에는 북한의 대미·대남 정책을 총괄하며 김정은의 대변인 역할을 맡고 있는 김여정 당 부부장과 김정은의 최측근인 조용원 당 조직비서, 김일성과 빨치산 활동을 함께 한 혁명1세대이며 인민무력부장을 지낸 최현의 아들인 최용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역시 혁명 1세대 오진우의 아들 오일정 당 민방위 부장이 포함돼 있다. 또 테크노크라트 출신 북한 경제사령탑인 김덕훈 내각 총리, 정준택 전 내각 부수상의 아들인 정경택 군 총정치국장, 2018년 정상회담 당시 '냉면 목구멍' 발언을 했던 이선권 외무상도 있다.

김정은을 보위하는 당·군·정 엘리트에는 삼지연 20인을 비롯해 충성파 인사들이 배치됐다. 이들은 통일부가 공개한 북한 권력기구도의 주요 직책에 이름을 올리거나 김정은의 현지지도를 빈번하게 수행하며 '정치적 친밀도'를 보여줬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노동당 권력지도에서 핵심 실세는 김정은의 대변인 김여정과 함께 김정은의 '복심'으로 추정되는 조용원 노동당 조직비서다.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한 그는 1995년 강원도당 조직부의 지도원으로 시작해 평양의 중앙당 조직부 종합과 지도원으로 발탁됐다. 김정은 집권 이후 시찰 담당 부부장에 올랐고, 2016년부터 김정은의 공개활동을 거의 모두 동행하면서 핵심 실세로 떠올랐다.

조용원은 2021년 1월 8차 당대회에서 북한 권력의 핵심인 정치국 상무위원에 선출됐다. 같은 해 2월 당 중앙위원회 8기 2차 전원회의에선 "당 조직들은 태만하는 일군들을 절대로 방관하지 않을 것"이라고 간부들을 질책하는 모습을 관영 매체를 통해 보여줬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2019년 10월 백마를 타고 백두산에 올랐다. 사진은 김 위원장이 동생인 김여정(왼쪽) 부부장, 조용원(오른쪽) 조직비서와 함께 말을 타는 모습. 조선중앙TV,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2019년 10월 백마를 타고 백두산에 올랐다. 사진은 김 위원장이 동생인 김여정(왼쪽) 부부장, 조용원(오른쪽) 조직비서와 함께 말을 타는 모습. 조선중앙TV, 연합뉴스

김여정 당 선전선동부 부부장은 '김씨 일가'를 지칭하는 '백두혈통'의 핵심으로 오빠인 김정은 위원장의 '입' 역할을 하는 동시에 대남·대미 정책을 총괄하는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고 있다. 이 때문에 김여정의 담화는 단순히 개인 의견을 넘어 북한의 공식 입장으로 간주된다. 일각에선 김정은의 딸 김주애가 공개석상에 등장하면서 김여정의 입지가 축소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그러나 최근 잇따라 남측을 몰아세우는 담화를 내놓으면서 김여정의 기존 직책과 역할에 변화가 없음을 간접적으로 확인해줬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내각에선 실세 총리로 불리는 경제사령탑 김덕훈 총리가 경제를 이끌고 있다. 그는 대안전기공장과 대안중기계공장 지배인 출신 기술 관료로 당과 내각을 두루 거치며 실무에서도 상당한 능력을 보여줘 김 위원장의 신뢰를 받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최근에는 각 지역의 식량공급소, 양곡판매소 등 유통현장을 돌며 식량 공급실태를 파악하고 필요한 대책을 강구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각종 경제 현안을 직접 책임지고 있다.

북한은 2021년 1월 평양 4·25문화회관에서 8차 당대회를 진행했다. 사진에는 회의 2일차 김정은 위원장의 사업총화보고를 들으며 요지를 받아적는 최용해 국무위원회 제1부위원장과 김덕훈 내각총리. 뒤쪽에 김 위원장의 동생인 김여정 당 제1부부장의 모습도 보인다. 조선중앙TV 캡처, 연합뉴스

북한은 2021년 1월 평양 4·25문화회관에서 8차 당대회를 진행했다. 사진에는 회의 2일차 김정은 위원장의 사업총화보고를 들으며 요지를 받아적는 최용해 국무위원회 제1부위원장과 김덕훈 내각총리. 뒤쪽에 김 위원장의 동생인 김여정 당 제1부부장의 모습도 보인다. 조선중앙TV 캡처, 연합뉴스

빨치산 출신인 최현 전 인민무력부장의 아들인 최용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은 대를 이은 최측근 실세다. 그는 2019년 4월 김정은이 직접 관할하는 핵심 국정기구인 국무위원회 제1부위원장에 오르는 동시에 21년 만에 교체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직도 차지했다. 최근 주요 행사에 나타나지 않아 나이 문제로 거동에 불편함이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있지만, 빨치산 2세라는 신분 때문에 확고한 지위를 가진 것은 분명하다.

군부에선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으로 북한 미사일 개발의 핵심 인물인 이병철과 '승진→해임·강등→복권'을 반복하며 군부 내 최고 권력자로 복귀한 이영길도 김정은의 최측근으로 분류됐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테크노크라트(기술관료) 출신의 약진도 김정은 집권 초기부터 계속되는 특징이다. 미사일 과학자 출신인 조춘룡 군수공업부장, 농업전문가인 주철규 농업위원장, 중공업 분야 전문가인 양승호 내각 총리, 경제관료 출신인 전현철 당 경제부장 등이 대표적이다.

또 권력지도에는 직책은 낮지만 김정은을 지근에서 보좌하는 현송월 선전선동부 부부장과 김정은의 최대 관심사안인 미사일 개발의 주역 김정식 군수공업부 부부장도 이름을 올렸다.

지난해 3월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인 화성-17형 시험발사 현장을 방문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북한 미사일 개발의 주역인 김정식 군수공업부 부부장이 수행하는 모습. 연합뉴스

지난해 3월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인 화성-17형 시험발사 현장을 방문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북한 미사일 개발의 주역인 김정식 군수공업부 부부장이 수행하는 모습. 연합뉴스

이수석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김정은은 집권 초기 정권을 조기에 안정시키려고 빠르지만, 경직된 용인술을 보였다"며 "이제는 향후 10년을 준비하는 포석의 일환으로 핵심엘리트를 재편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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