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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핵 지키듯 사생활 엄호" 이랬던 만년 조연, 27년만에 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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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의 빌리 크루덥(오른쪽). 영화 공식 스틸컷.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의 빌리 크루덥(오른쪽). 영화 공식 스틸컷.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와 ‘어디갔어 버나뎃?’의 공통점은? 줄리아 로버츠와 케이트 블란쳇이라는 걸출한 두 여성 배우의 남편 역할을 빌리 크루덥이 맡았다는 것. 크루덥이라는 이름은 국내엔 다소 생소하지만 알고 보면 그는 할리우드의 내로라하는 명품 조연이다. 1968년생인 크루덥은이 미국 매체 문화면에 최근 단골로 등장하고 있다. 50대 중반에 들어서 첫 주요 작품의 주연 자리를 꿰차면서다. 미국 뉴요커는 최근호에서 크루덥과의 인터뷰 기사를 게재하며 “크루덥이 드디어 자신에 맞는 옷을 입었다”고 표현했다. 그가 엔딩 크레딧에 처음으로 이름을 올린 건 1996년. 주연 자리에 오르기까지 27년이 걸린 셈이다.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에서의 크루덥은 줄리아 로버츠와 이혼하는 남자 역할을 맡았다. 이혼 조정 중 엘리베이터에서 몰래 눈물을 훔치던 그의 모습은 숨은 명장면 중 하나다. 영화 말미엔 이혼의 아픔을 딛고 행복한 새 가정을 꾸리며 아빠로서 충실한 삶을 살아가는 것으로 그려진다. ‘어디갔어 버나뎃’에선 괴짜 천재 부인의 남편으로, 부인과 갈등하면서도 결국은 이해와 화해로 나아가는 역할을 소화했다. 영화의 꼭 필요한 조연이었으나 주연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는 묵묵히 30년 가까이 꾸준히 연기 생활을 해왔고, 그 결실을 50대 중반에 맺고 있는 것이다.

'내일이여 안녕!'의 홍보행사에 나선 크루덥. AP=연합뉴스

'내일이여 안녕!'의 홍보행사에 나선 크루덥. AP=연합뉴스

이번에 주연을 맡은 작품은 애플TV에서 방영 중인 드라마, ‘내일이여 안녕!(Hello Tomorrow!)’이다. 영업맨으로 나와 인생의 애환을 그린다. 영화는 시공간을 넘나드는 공상과학(sci-fi)과 코미디 및 드라마를 적절히 배합했다. 각 장르의 이물감이 없도록 가교를 놓는 존재가 주연인 크루덥이다. 연기의 비밀은 뭘까. 크루덥은 뉴요커에 “아버지의 영향”이라고 털어놨다. 그는 “아빠는 킹크랩부터 커피ㆍ우산까지, 돈이 되는 뭐든 닥치든 판매하며 생계를 이었다”며 “영업맨을 연기하면서 아버지를 많이 떠올린다”고 말했다. 아버지가 모범 가장이었다는 말은 아닌 듯하다. 아버지의 수입이 일정하지 않아 고생도 꽤 했다고 한다. 크루덥이 연기를 시작하며 우직하게 연기 한 우물을 파오면서 어떤 배역이든 마다하지 않고 수입의 안정성에 방점을 찍은 것도 아버지가 남긴 교훈과 맞닿아 있다.

크루덥이 그렇다고 모든 배역을 닥치는대로 한 건 아니다. 뉴요커는 “크루덥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그가 도박사 기질이 있음을 알 수 있다”며 “전통적이지 않은 배역을 위험을 무릅쓰고 맡으며 자기만의 우주를 꾸준히 구축해왔다”고 평했다. 그런 노력이 쌓이고 쌓여 50대 중반의 주연 배우가 만들어진 셈.

자기만의 원칙도 지켰다. 할리우드에 적을 두고 있지만 화려함과는 일부러 거리를 뒀다. 시상식이며 파티에도, 협찬 대신 자기의 일상복을 입고 간 것이 대표젹. 뉴요커는 “크루덥은 연기 이외의 분야에선 스스로를 판매상품처럼 다루고 싶어하지 않았다”며 “토크쇼 출연 등도 하지 않고 자기만의 평범한 삶을 살아왔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NYT)는 그런 그의 일상을 두고 “마치 북한이 핵시설을 엄호하듯 자기자신의 사생활을 엄호한다”는 표현을 쓴 적이 있다.

빌리 크루덥과 나오미 왓츠. '내일이여 안녕!' 관련 행사에 손을 꼭 잡고 등장했다. AP=연합뉴스

빌리 크루덥과 나오미 왓츠. '내일이여 안녕!' 관련 행사에 손을 꼭 잡고 등장했다. AP=연합뉴스

그의 사생활에 대해 알려진 바는 따라서 별로 없다. 그러나 그의 연인이 나오미 왓츠라는 사실만큼은 숨길 수 없다. 왓츠와 크루덥은 2017년부터 공개 연애를 했다. 둘은 이혼 경력이 있고 각자 자녀들이 있다. 둘은 지난해 에미상 시상식 등, 영화 관련 행사에서 함께 레드카펫을 밟았다. ‘오징어 게임’으로 이정재 배우 겸 감독 등이 상을 받았던 바로 그 시상식이다.

크루덥은 최근 피플지와 인터뷰에서 “달에 가서 살아야 한다면 데리고 가고 싶은 존재”에 대한 질문을 받고 이렇게 답했다. “내 기타와 맥주 6병, 그리고 내 아들과 내 여자친구인 나오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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