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혈하는 산모도 있었다"…베이비박스 벨소리, 왜 절반 줄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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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오전 서울 관악구 난곡로 우림시장 골목길 초입. 이곳에서부터 가파른 언덕길을 따라 10분 정도 가면 ‘주사랑공동체’ 교회가 있다. 건물 옆쪽 반 층 정도 되는 계단으로 올라가자 외벽에 가로 70㎝, 세로 60㎝ 크기인 수납장 같은 공간이 보였다. 아이 이름·생년월일 등을 적는 메모지도 비치돼 있었다. 공간 위쪽엔 ‘당신이 이 아이 생명을 지켰습니다’ ‘끝까지 기도하고 신중하게 생각해주세요’ 글귀가 선명하게 적혀 있었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아이를 키울 수 없는 부모를 위해 마련된 ‘베이비박스’ 다.

지난 6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 재단법인 주사랑공동체 운영 위기영아긴급보호센터에 있는 '베이비박스'가 열려 있는 모습. 나운채 기자

지난 6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 재단법인 주사랑공동체 운영 위기영아긴급보호센터에 있는 '베이비박스'가 열려 있는 모습. 나운채 기자

벨 울리면 뛰어나가…상담실엔 샤워실도

베이비박스를 운영하는 재단법인 주사랑공동체 위기영아긴급보호센터 직원들은 긴장의 끈을 늦출 수 없다. 베이비박스 문이 열리면 자동으로 멜로디가 울린다. 보살핌이 긴급한 아이가 센터에 왔다는 신호다. 직원은 달려가 아이를 받는다. 박스 안쪽엔 부드러운 담요가 온열 매트 위로 깔리고 폐쇄회로(CC)TV가 설치돼 있지만, 안심할 수는 없다. 아이가 갑작스러운 환경 변화에 놀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직원은 건물 밖으로 뛰어나가 부모를 만난다. 이곳에는 샤워 공간도 있다. 센터 관계자는 “아이를 낳자마자 제대로 씻지도 않은 채 곧바로 센터로 오거나 하혈하는 분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베이비박스를 찾은 부모는 대부분 마음을 가라 앉히지 못하고 끝내 눈물을 쏟아낸다. 상담 직원은 이들을 달래고 아이를 키우라고 설득한다.

부모는 시도 때도 없이 베이비박스를 찾는다. 한 관계자는 “주로 밤처럼 인적이 드문 시간대에 (아이를 맡기러) 온다고 생각하지만, 낮에 오는 사람도 많다”고 말했다. 그 때문에 센터 직원과 자원봉사자는 조를 편성해 당직 근무를 한다. 서울연구원 조사결과 지난해 베이비박스를 찾은 임산부 중 20대 51.9%, 30대 28.3%인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6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 있는 위기 영아 긴급보호센터(재단법인 주사랑공동체 운영)에 있는 상담실 '베이비 룸' 모습. 이곳에는 샤워 공간도 마련돼 있다. 나운채 기자

지난 6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 있는 위기 영아 긴급보호센터(재단법인 주사랑공동체 운영)에 있는 상담실 '베이비 룸' 모습. 이곳에는 샤워 공간도 마련돼 있다. 나운채 기자

지난 6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 위기 영아 긴급보호센터(재단법인 주사랑공동체 운영)에서 베이비박스를 통해 들어온 아이들을 관계자가 살펴보고 있다. 나운채 기자

지난 6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 위기 영아 긴급보호센터(재단법인 주사랑공동체 운영)에서 베이비박스를 통해 들어온 아이들을 관계자가 살펴보고 있다. 나운채 기자

13년 넘은 베이비박스, 2000여명 보호

베이비박스는 주사랑공동체 이종락 목사가 2009년 12월 교회 담벼락에 어린 아이 임시 보호함을 설치하면서부터 13년째 운영되고 있다. 이곳은 연간 10억원 정도인 후원금으로 운영된다. 서울에 있는 유일한 영아 보호시설이다. 지금까지 2060명이 보호를 받았다. 지난해 베이비박스에 맡긴 아이는 106명이다.

서울연구원에 따르면 이곳에서 돌보는 아이는 해마다 줄고 있다. 200명대를 기록했던 5년 전(2018년·217명)보다 절반 이하까지 내려왔다. 센터는 2019년 헌법재판소가 낙태죄에 대해 헌법 불합치 결정을 하면서 인공임신중절(낙태) 수술 처벌 효력이 사라진 점을 원인으로 꼽았다. 낙태죄 폐지 후속 법 제·개정은 미진하지만, 일단 ‘낙태 수술은 범죄’라는 굴레에서 벗어난 게 영향을 줬단 취지다.

아울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외부 활동이 줄어든 점, 지난해 합계 출산율이 0.78명으로 역대 최저를 기록한 ‘초저출산’ 현상도 한몫한 것으로 분석됐다.

숫자는 줄었지만, 도움을 청하며 센터를 찾는 아이와 부모는 꾸준하다. 지난 3일만 해도 오전과 오후 각각 1명씩 베이비박스에 담겼다. 이 중 한 아이 부모는 모두 10대로, 아이를 키울 여력이 없어 센터를 찾았다고 한다. 태국인 어머니와 한국인 아버지 아래 태어난 '요한'이도 지난해 7월 7일부터 베이비박스에서 자라고 있다. 심장 질환이 있는 요한이는 수술을 받는 데 3억원이 필요하다. 하지만 어머니가 불법 체류자 신분이어서 출생 신고를 하지 못해 국가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

베이비박스에 아이가 머무는 기간은 처지에 따라 차이가 있다. 부모가 양육을 포기해 시설로 보내는 아이는 보통 3~ 7일 보살핀다. 부모가 나중에 직접 키우겠다고 하면 이곳에서 1년까지 돌본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국민의힘 서울시장 예비후보였던 2021년 2월 13일 오전 서울 관악구 신림동 주사랑공동체 교회가 운영하는 베이비박스를 방문해 이종락 목사의 설명을 듣고 있다.  뉴스1

오세훈 서울시장이 국민의힘 서울시장 예비후보였던 2021년 2월 13일 오전 서울 관악구 신림동 주사랑공동체 교회가 운영하는 베이비박스를 방문해 이종락 목사의 설명을 듣고 있다. 뉴스1

“베이비박스, 더는 필요 없어졌으면”

이종락 목사는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아이를 살리려는 분들은 센터에라도 오지만, (아이를) 아무 데나 방치해 숨지게 하거나 쓰레기통에 버리는 사람도 있다”며 “그런 행태는 베이비박스만으론 막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 목사는 "베이비박스가 더는 필요 없어지는 게 바람직하다"며 "아이 생명을 지키기 위한 법과 제도, 행정기반이 갖춰진다면 이런 시설은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난 6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 주사랑공동체 교회에서 이종락 목사가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나운채 기자

지난 6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 주사랑공동체 교회에서 이종락 목사가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나운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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