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최선희의 문화예술톡

미술은 무엇을 먹고 사는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5면

최선희 초이앤초이 갤러리 대표

최선희 초이앤초이 갤러리 대표

지난달 25일 스페인 마드리드 중심가에서 관광버스 두 대가 마드리드 외곽에 있는 산탄데르 금융 시티로 출발했다. 아르코 아트 페어를 방문한 VIP들이 탑승한 버스였다. 스페인의 대표적 은행인 산탄데르 은행(Banco Santander)에서 만든, 일종의 소도시 같은 이곳에는 수천 그루의 올리브 나무가 손님을 맞았다. 시내 공원 곳곳에는 현대 미술계 주요 작가들의 조각품이 설치돼 있다.

산탄데르 은행의 소장품을 전시한 미술관도 있었다. 파블로 피카소나 살바도르 달리 같이 스페인을 대표하는 작가들의 작품들과 생존작가들의 현대 미술품들을 볼 수 있었다. 산탄데르 아트 컬렉션으로 불리는 작품들이다. 160년 역사를 자랑하는 스페인 유수의 컬렉션으로,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규모가 압도적이다.

이 은행은 또 산탄데르 예술상을 만들어서 젊은 작가들을 꾸준히 지원해오고 있다. 이번 방문은 아르코 기간에 기획된 VIP 프로그램 중의 하나였다. 프로그램 중에는 스페인 최고의 현대 미술관인 레이나 소피아 방문, 라틴 아메리카 나라들의 대사관에서 주최하는 전시 오프닝 투어 등이 포함돼 있었다.

스페인 아르코 아트 페어 활기
공기관·기업들 구입 열기 후끈
피카소·고야 등을 키워낸 토양
미래와 함께하는 미술 보여줘

올 스페인 아르코 아트 페어에 나온 피카소 형상의 조각품. [AFP=연합뉴스]

올 스페인 아르코 아트 페어에 나온 피카소 형상의 조각품. [AFP=연합뉴스]

아르코 아트 페어는 스페인 수도 마드리드에서 매년 2월에 닷새간 열린다. 스위스 아트 바젤이나 독일 아트 쾰른, 프랑스 파리 플러스 등 유럽의 다른 메이저 아트 페어 못지않게 중요한 행사로 자리를 잡아 왔다. 코로나19 때문에 지난해 열리지 못했지만, 올해 다시 미술의 향연을 펼칠 수 있게 됐다. 정열의 나라로 유명한 스페인의 예술에 대한 열정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르코가 유럽의 여타 메이저 페어와 다른 점은 ‘신선하다’라는 말로 정의할 수 있을 듯하다. 예컨대 대형 갤러리들이 바젤이나 파리, 런던이나 마이애미 등에서 선보인 스타 작가들의 작품들을 또다시 마주하는 ‘식상함’이 없었다. 대신 스페인이나 라틴 아메리카 출신 작가들의 다양한 작품을 발견하는 재미가 매우 컸다.

판매도 매우 활발해 보였다. 현지에서 만난 한 갤러리 관계자는 코로나 팬데믹 이후 같은 스페인어권인 라틴 아메리카 지역의 부호들이 스페인으로 대거 이주한 것도 스페인 미술시장 활성화에 기여하고 있다고 전했다. 흥미로운 현상이다.

아르코 아트 페어는 스페인 미술 생태계에 활달한 에너지를 공급하고 있다. 개인 컬렉터들의 구입도 중요하지만 스페인 현대 미술관이나 마드리드시를 비롯한 다양한 기관들이 작품 구매에 적극적이기 때문이다. 일례로 레이나 소피아 현대 미술관의 아르코 아트 페어 구입 예산이 40만 유로(약 5억5000만원)에 달한다.

레이나 소피아 현대미술관은 스페인 내전의 비극을 그린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소장한 곳으로 유명하다. 현장서 만난 이곳의 큐레이터는 “미술관은 과거가 아닌 미래를 보여주는 곳”이라고 말했다.

마드리드에는 세계적인 미술관이 여럿 있다. 예컨대 프라도 미술관에선 서양미술사 책에서 접하는 수많은 걸작이 소장돼 있다. 벨라스케스, 엘 그레코, 고야 등 스페인 출신의 작가들을 만날 수 있는 것은 물론이다.

프라도 미술관 앞은 관람객들로 북적였다. 오후 늦은 시간까지도 수백m에 이르는 줄을 서고 있었다. 이들 관람객이 한편으론 부럽기도 했다. 오늘을 넘어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미술관의 기능도 생각했다.

아르코 아트 페어에는 공공 기관들은 물론 산탄데르 은행 같은 사기업들이 만든 재단이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이들 기관이 구입한 미술품은 문화계 전체를 살찌운다. 갤러리 경영에 도움이 되는 것을 물론 해당 갤러리들이 소개하는 수많은 작가의 창작을 지원하게 된다. 아르코가 현재를 넘어 미래를 함께 만들어가는 셈이다.

우리나라의 상황을 돌아봤다. 국내 기업도 미술에 대한 투자를 늘려가고 있다. 하지만 ‘미술계 지원’이 아닌 ‘미술품 사업’을 하려는 기업도 많다. 우리 기업도 이제 ‘올리브 나무’를 사서 심는 마음을 키워가기를 바란다. 올리브 나무 한 그루에서 가지가 뻗어 나오고, 이파리가 돋고, 열매를 맺어 미래의 양식이 되고, 그 올리브 나무가 신선한 그늘과 공기를 세상에 주는 날을 상상해본다. 아르코 아트페어 한복판에서 한국 미술계의 새로운 미래를 그려보았다.

최선희 초이앤초이 갤러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