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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외교 무대에 복귀한 대한민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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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마이클 그린 호주 시드니대 미국학센터 소장·미국 CSIS 키신저 석좌

마이클 그린 호주 시드니대 미국학센터 소장·미국 CSIS 키신저 석좌

지난 5년간 중국의 호전성과 러시아의 보복주의라는 지정학의 ‘그레이트 게임’ 와중에 대한민국이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 가장 비정상적이었다. 그동안 한국을 둘러싼 많은 국가가 폭발적인 외교적 활동을 보여줬다. 예컨대 일본의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 전략, 호주·영국·미국 3개국의 오커스(AUKUS) 협약, 쿼드(QUAD)의 정상급 격상, 유럽과 동남아 국가들의 인·태 전략 등이다.

국내총생산(GDP) 기준으로 세계 9위인 한국은 그동안 무엇을 했을까. 자멸적인 ‘전략적 인내’라는 미명 아래 문재인 정부는 모두로부터, 모든 것으로부터 거리를 뒀다. 다른 주요국과 중견국이 관계를 다져가는 동안 문 정부는 근시안적으로 제3국 외교를 통해 미국이 북한 정권에 양보하도록 설득하는 데 급급했다.

이분법적 문 정부, 근시안 외교
윤 정부, 지난 실책 바로잡은 듯
강제징용 해법 잘 살려나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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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불안정한 역내 지정학적 환경 속에서 한국과 교류를 희망하던 유럽과 호주 외교관들은 오히려 한국 정부로부터 미국을 움직여 북한에 대한 압력을 줄여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이들 외교관은 한국이 과연 어떤 역할을 하고자 하는지 의구심을 갖기 시작했다.

당시 한국 외교부는 믹타(MIKTA) 협의체에 참여했다고 강변할 수 있겠지만, 필자는 믹타가 이룬 성과가 무엇이었는지 묻고 싶다. 2017년 발표된 문 정부의 신남방정책도 있었지만, 이 또한 실질적인 전략이었다기보다는 하나의 브랜딩에 지나지 않았다. 임기 말 호주 방문 즈음에야 문 정부는 전략의 실수를 깨달은 것 같다.

윤석열 정부는 취임 첫 10개월간 한국이 제 자리로 다시 돌아왔다는 것을 증명했다. 윤 대통령의 베테랑 외교 전략가들은 재빠르게 문 정부의 대외 정책이 지녔던 두 가지 잘못된 전제에서 탈피했다. 첫째는 역내 및 글로벌 지정학을 무시하는 것이 북한을 다루는 데 한국에 더 나은 환경을 제공한다는 잘못된 인식이다. 윤 대통령의 보좌관들은 그 반대가 맞는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둘째는 아시아가 미국과 중국의 전략적 결정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양극화된 전장으로 전락했고 그 외 기타 강대국들은 헤징 또는 회피에 급급했다는 잘못된 인식이다. 미·중은 군사적으로 경제적으로 물론 강대국임은 틀림없지만 인·태 지역은 강대국과 한국·일본·인도·호주 같은 중견국이 함께 공동의 노력을 기울여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다극의 전장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문 정부는 간과했다.

이와 같은 이분법적 관점을 지닌 문 정부에서 한국은 그 어떤 주체성도 지닐 수 없었다. 윤 정부는 다극화한 세상을 인지함으로써 한국의 미래와 안정을 강화할 수 있는 새로운 옵션이 가능해졌다.

윤 정부는 이러한 기회를 포착했고 일본·호주·뉴질랜드 정상들과 함께 2022년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했다. 지난해 12월 윤 정부가 발표한 인·태 전략에 따르면 한국 정부는 다른 해양 민주주의 국가와 힘을 모아 역내 환경을 회복 탄력성을 더 갖춘 지역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해 나갈 것이다. 이는 앞선 두 정부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모습이다.

윤 정부는 가장 중요하면서도 가장 어려워 ‘고르디우스의 매듭’(Gordian Knot)이라 불리는 한·일 관계에서 실질적인 진전을 보인다. 지난 11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윤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캄보디아에서 만나 북한 및 국방 분야에서 삼자 외교 협력을 지속해서 재개하기 위한 ‘인·태 삼자 파트너십’을 발표했다. 2월 말 한·미·일 ‘경제안보 대화’가 시작됐다.

윤 대통령은 3·1절 연설에서 “일본은 과거 군국주의 침략자에서 우리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파트너로 변모했다”고 말했다. 한국 대통령실은 아마도 강제징용 배상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길 원할 가능성이 큰데, 이는 사실 일본 정부의 체면도 살릴 수 있는 방법이다.

박근혜 정부가 2015년 체결한 한·일 위안부 해법이 문재인 정부에서 뒤집혔던 사례에 주목하면 유사한 상황이 재발하지 말란 법은 없다. 한·일 양자 관계의 놀라운 개선에도 일본은 좀 더 조심스러운 외교와 정치적 지혜에 의지할 것이다. 그래도 윤 정부가 전략을 계속 밀고 나갈 수 있다면 미국과 다른 국가들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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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그린 호주 시드니대 미국학센터 소장·미국 CSIS 키신저 석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