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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 위 풍선여행, 황금빛 빌딩숲 펼쳐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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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열기구를 타고 올라 바라본 호주 멜버른의 도심 풍경. 고층 빌딩들이 아침 햇살을 받아 황금빛으로 빛나고 있다.

열기구를 타고 올라 바라본 호주 멜버른의 도심 풍경. 고층 빌딩들이 아침 햇살을 받아 황금빛으로 빛나고 있다.

팔방미인이라는 말로는 뭔가 부족하다. ‘사기캐(사기 캐릭터)’라는 표현이 적절할 것 같다. 호주 빅토리아 주의 주도 멜버른 이야기다. 음식과 커피 맛 빼어난 대도시의 풍모를 풍기면서도 도심을 조금만 벗어나면 광활한 대자연이 펼쳐진다. 뭐 하나 빠지는 구석이 없다. 지난달 27일부터 일주일간 멜버른과 빅토리아 주의 매력을 탐닉하고 왔다.

멜버른 서쪽 소도시에서 만난 야생 코알라.

멜버른 서쪽 소도시에서 만난 야생 코알라.

도시 생활이 지칠 때면 우리는 자연을 찾는다. 힐링을 위해서라지만 여정이 길거나 차가 막히면 힐링은커녕 스트레스가 배가 된다. 멜버른에선 그런 걱정을 안 해도 된다. 야생 코알라와 캥거루가 사는 대자연의 품으로 들어가는데 채 두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필립 아일랜드엔 키 30㎝ ‘리틀펭귄’

그레이트 오션 로드의 하이라이트인 12사도상을 헬기에서 바라본 모습.

그레이트 오션 로드의 하이라이트인 12사도상을 헬기에서 바라본 모습.

멜버른 도심에서 남서쪽으로 차를 몰고 한 시간을 달리면 소도시 ‘토키’에 도착한다. 알랜스포드까지 약 243㎞ 이어지는 세계적인 명성의 해안도로 ‘그레이트 오션 로드’의 출발지점이다. 아폴로 베이까지 처음 94㎞ 구간은 말 그대로 해안도로다. 왼편으로 광활한 남극해를 바라보며 깎아지른 절벽 위 도로를 달린다. 가슴이 뻥 뚫린다. 아폴로 베이부터는 광활한 숲속을 오르락내리락 달린다. 약 84㎞를 더 가면 다시 바다가 모습을 드러내고 그레이트 오션 로드의 백미인 ‘12사도상’에 닿는다. 12개의 석회암 기둥을 예수의 열두 제자에 빗댄 건데, 해류 침식으로 지금은 7개만 남았다.

그레이트 오션 로드의 절경을 제대로 보고 싶다면 헬기 투어를 추천한다. 가장 짧은 16분짜리 코스만으로도 12사도상과 런던 브릿지, 로크 아드 협곡 등을 감상하기에 충분했다. 비췻빛 바다와 하얀 포말, 오랜 시간 자연이 공들여 빚은 기암괴석이 어우러진 풍경이 기막혔다. 인생에서 가장 빨리 흘러간 16분이었다.

멜버른에서 남동쪽으로 1시간 40분 거리의 ‘필립 아일랜드’에서는 ‘리틀 펭귄’을 만났다. 지구에서 가장 작은 펭귄 종으로, 별칭이 요정 펭귄이다. 키는 30㎝, 몸무게는 약 1㎏. 낮에는 바다에서 사냥하고 일몰 후에 집이 있는 육지로 돌아온다. 적게는 5마리, 많게는 20여 마리가 넘어질 듯 뒤뚱뒤뚱 걷는 모습이 정말 귀엽다. 해가 지며 시작된 펭귄 퍼레이드는 밤 깊은 시간까지 이어졌고, 고요했던 섬이 펭귄 울음소리로 가득 찼다.

증기기관차 퍼핑 빌리를 타고 숲속을 달리면 동심의 세계로 빠져든다.

증기기관차 퍼핑 빌리를 타고 숲속을 달리면 동심의 세계로 빠져든다.

단데농 국립공원의 우거진 원시림을 증기기관차로 달리는 퍼핑 빌리, 고즈넉한 산속에서 천연 미네랄 성분의 온천수에 몸을 맡기는 모닝턴 페닌슐라 온천도 일상에 지친 여행자의 마음을 달래주기에 충분했다.

카페만 2000개…대부분 오전 7시 오픈

멜버른은 세계적인 커피 도시다. 2000개 이상의 카페가 있을뿐더러 질 좋은 커피를 맛있게 먹는 문화를 선도하고 있어서다. 멜버른의 유명 카페 중에서 ‘듁스 커피’ ‘패트리샤 브루어스’ ‘브라더 바바 부단’ 세 곳을 가봤다. 한국에도 제법 알려진 곳이라 규모가 클 줄 알았는데, 정말 소박했다. 세 곳 모두 커피를 주문하고 마시는 방식이 한국과 달랐다. 매장 안에 테이블과 의자가 거의 없고, 사람들이 서서 커피를 마셨다. 테이크 아웃 손님은 주문한 뒤 매장 외부에서 대기했다. 음료가 완성되면 직원이 매장 밖까지 커피를 들고나와 손님에게 건넸다. 좁은 매장을 덜 복잡하게 유지하면서 손님과 스킨십을 늘리는 좋은 방법으로 보였다. 진동벨은 찾을 수 없었다.

브라더 바바 부단의 피콜로 라테.

브라더 바바 부단의 피콜로 라테.

세 카페 모두 메뉴가 간결했다. 블랙, 화이트, 필터. 듁스 커피에선 ‘엘살바도르 산’ 필터 커피를 주문했다. 가볍게 볶은 원두에서 깔끔한 산미와 석류 향이 느껴졌다. 패트리샤 브루어스에선 호주를 대표하는 ‘플랫 화이트’를 마셨다. 카페라테보다 우유가 적어 커피의 맛이 진했다. 브라더 바바 부단에선 ‘피콜로 라테’를 주문했다. 피콜로는 라틴어로 ‘적다’는 뜻이다. 플랫 화이트보다 더 적은 우유를 넣어 커피 맛이 더 진하게 느껴졌다.

호주 커피의 강점은 무엇일까. 질 좋은 스페셜티 커피(스페셜티 커피 협회 평가 80점 이상의 원두), 커피 맛을 더 깊고 부드럽게 해주는 호주산 고품질 우유, 단골의 이름과 음료 취향을 기억하고 손님과 유대감을 형성하는 바리스타. 이 세 가지가 결정적인 것 같다. 멜버른에 거주하는 커피 마니아 소피아 김(37)은 “멜버른 사람에게 커피는 일상 그 자체”라며 “하루의 시작을 여는 열쇠”라고 말했다. 멜버른 카페 대부분은 오전 7시에 열고 오후 4시면 문을 닫는다. 늦게 갔다간 낭패를 볼 수 있다.

멜버른은 커피만 맛난 게 아니다. 세계 최고 수준의 레스토랑이 많은데 무엇보다 퓨전 음식이 발달했다. 세계 각지에서 온 이민자의 입맛을 두루 만족시키려다 보니 미식 수준이 전반적으로 높아졌다고 한다.

145년 노천시장선 캥거루 고기도 팔아

남반구 최대 노천시장인 퀸 빅토리아 시장. 한여름 야시장을 찾은 시민들이 공연을 관람하고 있다.

남반구 최대 노천시장인 퀸 빅토리아 시장. 한여름 야시장을 찾은 시민들이 공연을 관람하고 있다.

1878년 개장한 남반구 최대의 노천시장 ‘퀸 빅토리아 시장’에 가보길 권한다. 과일 및 채소, 육류와 수산물 등 식재료는 물론이고 캥거루 고기도 살 수 있다. 매일 오전 6시~오후 3시 시장이 열리는데, 남반구 여름철인 11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는 야시장이 선다. 매주 수요일 오후 5~10시, 공예품과 먹거리를 팔고 덤으로 공연도 볼 수 있다. 3월 1일 야시장을 가보니 인산인해였다. 즉석 음식을 만드는 가게에선 음식을 굽고 찌고 튀기는 냄새가 진동했다. 아이스크림 가게는 젊은 사람들로 장사진이었다. 한국의 80년대 야시장처럼 친근한 풍경이었다.

그라피티 거리로 유명한 ‘호시어 레인’.

그라피티 거리로 유명한 ‘호시어 레인’.

멜버른에서는 아트 투어도 빼놓을 수 없다. 호주에서 방문객이 가장 많은 ‘빅토리아 국립미술관’도 좋고, 그냥 골목을 걸어 다녀도 멋진 작품을 만날 수 있다. 한국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에 등장한 그라피티 거리 ‘호시어 레인’이 대표적이다. 얼핏 보면 낙서 같지만 지역 예술가의 엄연한 작품이다. 주기적으로 그림이 바뀌기도 한다. 미사 거리 말고도 시내에는 골목마다 작품성 높은 벽화가 그려져 있다.

이제 멜버른 여행의 마지막 하이라이트가 남았다. 열기구 체험. 열기구가 한적한 시골이나 산천 위를 나는 게 아니라 70~100층짜리 고층 빌딩 위를 둥둥 떠다닌다. 열기구 업체 브로슈어에는 “세계에서 유일한 대도시 열기구 체험”이라고 쓰여 있었다. 도심 서쪽 뉴 포트 공원에서 출발한 열기구가 고도를 올린 뒤 남서풍을 타고 서서히 이동했다. 출발 당시에는 어둑했던 하늘이 서서히 밝아지는가 싶더니 동쪽 하늘에서 해가 떠올랐다. 열기구가 뜰 때만 해도 하늘이 흐렸는데 구름 사이로 찬란한 햇빛이 쏟아졌다. 이곳이 골드러시의 도시라는 걸 상기시키는 듯이 태양이 멜버른 도심의 마천루를 황금빛으로 물들였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여행정보=한국에서 멜버른으로 가는 직항편은 없다. 홍콩을 경유하는 게 가장 빠르다. 캐세이퍼시픽 항공을 이용하면 인천~홍콩 3시간, 홍콩~멜버른 8시간 걸린다. 호주가 한국보다 2시간 빠르므로 인천공항에서 오후 3시 비행기를 타면 다음 날 오전 7시 멜버른 툴라마린 공항에 도착해 바로 일정을 시작할 수 있다. 16분 동안 진행되는 12사도상 헬기투어는 165호주달러(약 14만원), 열기구 체험은 495호주달러(약 43만원), 퍼핑 빌리 증기기관차는 왕복 61호주달러(5만원). 기타 여행 정보는 빅토리아 주 관광청 한국어 홈페이지나 공식 블로그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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