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WBC 첫 경기에서 패해 나 역시 무척 아쉽다. 호주 타자들이 한국 선발 고영표(KT 위즈)의 공을 잘 대비하고 나왔다는 느낌을 받았다. 원태인(삼성 라이온즈) 외에는 투수들이 전체적으로 제 몫을 못해준 게 아닌가 싶다.
4-2로 앞선 7회 초 소형준(KT)이 투입됐다가 상대에 역전 분위기를 만들어준 게 안타깝다. 소형준은 소속팀에서 선발을 맡던 투수라 경기 초반 페이스가 좋지 않은 편이다. 이번에도 나가자마자 몸에 맞는 볼과 안타로 주자 두 명을 내보내면서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다.
1사 2·3루 위기에서 올라온 김원중(롯데 자이언츠)은 첫 타자를 삼진으로 잘 막았지만, 두 번째 타자까지 잘 잡고 위기를 무사히 해결하고 싶은 마음에 공격적으로 피칭하다 실투가 들어간 것 같다. 경기가 안 풀리는 날엔 그런 상황에서 꼭 홈런이 나온다.
베테랑 양현종(KIA 타이거즈)은 4-5로 뒤진 8회 초 다시 3점 홈런을 허용했다. 이미 역전으로 1점 리드를 잡은 호주가 기(氣)에서 앞서 있었다. 제아무리 양현종이라 해도 호주 쪽으로 흐름이 넘어간 분위기에서 버티기 쉽지 않았으리라고 본다.
개인적으로는 오히려 소형준보다 양현종이 7회에 먼저 올라갔다면 더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까 싶다. 사실 투수 교체는 모두 결과론이다. 이강철 감독도 일본전 선발을 김광현으로 결정한 상황에서 마무리 투수 고우석도 출전할 수 없으니 투수 교체를 두고 고민이 많았을 것이다.
단기전은 아주 작은 플레이 하나에도 냉정해야 하는 승부다. 한동안 부진했던 강백호(KT)가 7회 말 중요한 상황에서 안타를 쳐서 팀도, 본인도 무척 기분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아주 잠깐 방심하는 찰나, 상대는 계속 경기에 집중하고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할 것 같다. 2루타 직후 주루사는 무척 아쉬운 장면이지만, 어려운 경험이라고 생각하고 다음 경기에서 더 잘해줬으면 좋겠다.
그래도 포수 양의지(두산 베어스)의 활약은 칭찬하고 싶다. 타자로서 중요한 홈런도 쳤지만, 포수로서도 아주 영리해 보였다. 1회부터 호주 타자들이 고영표의 체인지업을 적극적으로 공략했는데, 이후 양의지가 슬라이더를 섞어가며 위기를 잘 넘어가는 모습을 봤다. 또 원태인이 올라왔을 때도 상대 타자들의 스윙 궤도를 파악한 뒤 변화구 코스를 바꿔 사인을 내는 모습도 몇 번 발견했다.
다시 한 번 양의지가 노련한 포수라는 점을 느꼈다. 최근 국제대회 성적이 안 좋아 힘들었을 텐데, 호주전을 계기로 팀의 고참답게 선수들을 잘 추스르고 남은 경기에서도 좋은 활약을 했으면 좋겠다.
한국은 10일 일본전을 앞두고 있다. 첫 경기를 보고 선수들이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많이 갖고 있다는 걸 느꼈다. 특히 일본전은 관심도 많이 쏠리는 경기라 더 압박감이 클 수도 있다. 하지만 일본은 어차피 누구나 인정하는 강팀이다. 객관적인 전력상 한국보다 한 수 위다. 선수들은 오히려 마음을 비우고 자신의 힘을 다 쏟아부으면 된다. 후회 없이, 최선을 다하기를 기대한다.
김태형 (전 두산 베어스 감독·SBS스포츠 해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