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보증금 받아 빚 갚고, 전세서 월세로…은행 주담대 9년 만에 감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세종시에서 84㎡짜리 아파트에 전세를 들어 살던 A씨는 지난달 계약 만료를 앞두고 보증금 3억원 중 7000만원을 집주인으로부터 돌려받았다. 주변 전세 시세가 2억3000만원으로 떨어지자, 집주인이 A씨를 붙잡아두기 위해 먼저 제안한 재계약 조건이다. 인근 공인중개사는 “당장 7000만원을 내줄 사정이 안 되면, 7000만원어치 대출에 해당하는 이자를 쳐주겠다는 집주인도 있다”고 전했다.

은행이 가계에 빌려준 주택담보대출이 지난달 9년 만에 감소를 기록했다. 특히 전세자금대출이 크게 줄었다. 높은 금리 때문에 대출을 상환한 사람이 많아졌다. 또 전셋값이 하락하며 보증금을 일부 돌려받아서 기존 전세대출을 갚을 수 있게 된 A씨와 같은 사례가 늘어난 영향이다.

9일 서울 강남구 일대 아파트 단지의 모습. 연합뉴스

9일 서울 강남구 일대 아파트 단지의 모습. 연합뉴스

9일 금융위원회와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중 은행권이 가계에 내준 대출은 2조7000억원 감소했다. 주담대가 3000억원 줄며 지난 2014년 1월 이후 처음으로 줄었다. 한국주택금융공사(HF) 등이 공급하는 정책모기지가 1조원 늘고, 일반 개별 주담대도 7000억원 증가했지만, 전세대출이 역대 가장 큰 폭인 2조5000억원 줄었기 때문이다.

일단 비싼 대출 이자 탓이 컸다. 이날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전세대출 금리는 연 4.13~6.58% 수준이다. 올해 초에는 대출금리 상단이 연 8%대를 기록하기도 했다가 점차 하락한 모습이지만, 과거와 비교하면 여전히 낮지 않은 수준이다.

전세가격이 하락하자 임차인이 저렴한 전세를 찾아 이동하거나, A씨처럼 보증금 일부를 받아 대출을 상환하는 경우도 증가하고 있다. KB부동산에 따르면 지난달 전국 아파트 전세 평균 가격은 2억9782만원으로, 최근 고점이었던 지난해 6월 3억4188만원에서 4406만원 하락했다.

전세가격이 떨어져 있는 현시점에 임대차 계약이 끝날 경우 집주인은 큰돈을 기존 세입자에게 반환하고 새로운 세입자에게는 상대적으로 적은 액수의 보증금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보증금을 낮춰 주거나, 세입자 몫인 대출 이자를 대신 부담해줘서라도 기존 세입자를 유지하는 것이 이득인 상황이 많다. 세입자 입장에선 돌려받은 보증금으로 대출을 일부 갚으면 이자 부담을 덜 수도 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전세를 떠나 월세를 찾아가는 사람도 늘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올 1월 전체 주택 임차 거래 가운데 월세 거래량 비중은 54.6%로 지난해 같은 달(45.6%)보다 9%포인트 증가했다. 최근 5년 평균(41.3%)보다는 13.3%포인트 많은 수준이다.

KB부동산은 최근 보고서에서 “전세대출 금리는 연 2%대로 유지됐으나 지난해 하반기 6%에 이르자 전세 수요가 빠르게 위축됐다”며 “반면 월세 선호 현상은 가속화했다”고 분석했다. 또 “최근에는 소위 ‘깡통 전세’ ‘전세 사기’ 등이 사회적 이슈로 부각되면서 전세를 꺼리는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고 진단했다.

윤옥자 한은 금융시장국 차장은 “전세가격이 2년 전보다 낮아져 소위 ‘역전세 상태’이기 때문에 전세대출이 전반적으로 줄어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높은 금리와 대출규제 등의 영향으로 감소 흐름을 이어가던 가계의 은행 신용대출은 최근 대출금리가 소폭 하락한 영향으로 감소 규모가 전보다 축소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