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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V까지 수출통제"…네덜란드, 中 겨냥 '반도체 옥죄기' 가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조 바이든(오른쪽) 미국 대통령과 마르크 뤼터 네덜란드 총리가 지난 1월 미국 백악관에서 만나 악수를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조 바이든(오른쪽) 미국 대통령과 마르크 뤼터 네덜란드 총리가 지난 1월 미국 백악관에서 만나 악수를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네덜란드의 대중국 반도체 제조 장비 수출 통제가 본격화되고 있다. 네덜란드 정부는 최첨단 반도체를 만드는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뿐 아니라 한 세대 전 모델인 심자외선(DUV) 노광장비까지도 중국으로 수출하는 걸 통제하기로 했다.

지난 1월 말 미국의 요구로 일본과 함께 대중국 반도체 장비 수출통제에 협력 의사를 밝힌 뒤 한 달 여 만에 본격적인 움직임에 나선 것이다. 일본도 조만간 반도체 장비 수출과 관련한 새로운 통제 방침을 밝힐 것으로 알려지면서 중국을 겨냥한 반도체 압박은 한층 더 거세질 전망이다.

8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과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리셰 스레이네마허 네덜란드 대외무역·개발협력부 장관은 이날 의회에 서한을 보내 “기술 발전과 지정학적 상황을 고려할 때 정부는 국가안보를 보호하기 위해 특정 반도체 제조 장비에 대한 기존 수출통제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며 “기업들은 해당 기술을 수출하기 전 라이선스(허가)를 신청해야 한다”고 밝혔다. 관련 규제는 올여름 이전에 도입할 계획이다.

스레이네마허 장관은 서한에서 수출 통제 확대조치를 따라야 할 회사와 수출 통제 조치가 적용될 무역 상대국이 어디인지를 명확하게 언급하진 않았다. 다만 “수출 통제 대상엔 네덜란드 회사 ASML이 만드는 DUV 노광장비 기술을 비롯한 작고 강력한 반도체칩을 만들 수 있는 매우 높은 사양의 시스템이 포함될 것”이라고 밝혔다. FT는 ASML의 DUV 노광장비인 ‘TWINSCANNXT:2000i’ 이후 모델이 통제 대상에 포함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네덜란드 정부는 지난 2019년부터 ASML의 장비 중 가장 최첨단인 EUV 노광장비의 대중 수출을 금지했다. EUV 노광장비는 10㎚(나노미터·1㎚은 10억분의 1m) 이하의 최첨단 반도체 칩에 미세한 회로를 새겨 넣는 장비다. 기존엔 이보다 전 단계 기술인 DUV 노광장비 등에 대한 ASML의 대중 수출을 막지 않았는데, 새로운 통제 조치가 만들어지면 이마저도 금지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21년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반도체 관련 무역 박람회에 참석한 한 여성이 광고판 옆을 걸어가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2021년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반도체 관련 무역 박람회에 참석한 한 여성이 광고판 옆을 걸어가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이번 발표를 통해 네덜란드 정부는 미국이 주도하는 대중 반도체 수출통제에 본격적으로 가담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1월 27일 네덜란드와 일본은 미 워싱턴에서 제이크 설리번 미 국가안보보좌관 주재로 열린 3국 회의에서 미국이 지난해 10월부터 시행 중인 대중국 반도체 수출 통제 조치에 동참하기로 합의했다.

네덜란드가 DUV 노광장비 수출 제동에까지 나서는 건 중국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기업 SMIC(中芯國際·중신궈지)가 지난해 EUV 장비가 아닌 DUV 장비를 이용해 7㎚ 반도체 칩 생산에 성공했다는 소식 때문으로 보인다. 이에 놀란 미국은 지난해부터 네덜란드에 DUV 장비의 대중 수출통제를 요구해왔다.

ASML도 중국으로의 기술 유출에 대해 경계의 눈초리를 키우고 있다. 피터 베닝크 ASML 최고경영자(CEO)도 지난 7일 FT와 인터뷰에서 “미국이 중국의 반도체 굴기에 대한 견제가 늘어나면서 ASML의 지적재산권 도용 위험이 커졌다”며 “노하우나 IP 유출에 대해 그 어느 때보다 민감하게 봐야한다”고 우려했다. 지난 2월 ASML은 중국 법인의 전 직원이 자사 제품과 관련한 기밀정보를 빼낸 사실을 적발하기도 했다.

“삼성·SK하이닉스에도 영향 가능성”

이재용(오른쪽)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해 6월 네덜란드 에인트호번에 위치한 ASML 본사에서 피터 베닝크 최고경영자(CEO)와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삼성전자

이재용(오른쪽)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해 6월 네덜란드 에인트호번에 위치한 ASML 본사에서 피터 베닝크 최고경영자(CEO)와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삼성전자

이번 조치로 한국 반도체 기업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로이터는 네덜란드 정부의 수출통제 확대 조치를 전하면서 “ASML의 최대 고객사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모두 중국 내에 상당한 생산설비를 갖추고 있다”고 지적했다.

네덜란드와 함께 미국의 반도체 수출 통제에 동참하겠다고 약속한 일본 역시 속도를 내고 있다. 로이터는 “일본은 이르면 이번 주 반도체 장비 수출에 대한 최신 정책을 발표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했다.

中, “네덜란드 수출 통제 결연히 반대…교섭 제기” 

네덜란드의 수출 통제 확대 방침에 중국은 강하게 반발했다. 마오닝(毛寧)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9일 정례 브리핑에서 “네덜란드가 행정 수단으로 중국 기업과의 정상적인 무역 왕래를 제한하고 간섭하는 것에 대해 결연히 반대한다”며 “우리는 이미 네덜란드 측에 교섭을 제기했다”고 말했다. 중국은 특정 사안에 외교 경로로 항의한 경우 ‘엄정한 교섭을 제기했다’는 표현을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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