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한국 핵무장, 평양 놀라지 않고 기뻐할 것" 포드 전 의원 경고

중앙일보

입력

긴급진단-북핵 위협 속 한반도의 길을 묻다

북한의 미사일 도발과 핵 위협 강도가 갈수록 높아지면서 한반도를 둘러싼 긴장이 한층 고조되고 있다. 한반도 정세가 위태롭게 돌아가면서 한국의 독자 핵 개발론도 어느 때보다 거세다. 중앙일보는 거시적인 관점에서 한반도 안보의 현주소를 진단하고 나아갈 길을 모색하기 위한 기획 시리즈를 미주중앙일보와 함께 연재한다. 핵무기 권위자인 시그프리드 헤커 박사의 인터뷰를 필두로 미국과 유럽의 정책담당자 및 정보 전문가의 인터뷰 등을 통해 남북 및 북·미 간 대치 상황의 궤적과 방향성, 그리고 가능한 선택지들을 짚어본다. 두 번째 순서는 글린 포드 전 유럽의회 의원의 기고문이다.

[한반도의 길②] 글린 포드 전 유럽의회 의원 기고

글린 포드 전 유럽의회 의원.

글린 포드 전 유럽의회 의원.

한국이 독자 핵무장을 하겠다고 하면 평양 입장에선 놀랄 일이 아니라 축하할 일이 될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최근 독자 핵무장을 할 수 있다는 경고를 내놓았다. 이게 그동안 대형 미사일과 소형 핵무기들을 지속적으로 개발해온 북한에 위협으로 작용할 것으로 비쳐졌다. 북한에 대한 억지 효과는 일본 방위정책의 의도적인 방향전환과도 맞물린다. 일본의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GDP 1% 이하 국방비’라는 ‘유리 천장’을 깨트리고 향후 5~10년 사이 국방예산을 두 배로 확대하겠다고 선언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면 북한은 사실상 한일 양국의 공조 압박에 묶이는 셈이 된다.

미국의 반응은 양극단으로 나뉜다. 일본 평화헌법 9조를 무시하는 그 같은 조치는 워싱턴에서 환영을 받았다. 일본의 최고재판소(대법원)도 무력 불개입 원칙을 스스로 부정하는 판이다. 1947년 미 군정 시절 허술하게 만들어지긴 했으나, 이 헌법은 일본의 교전권을 부인하는 대신 자위권을 인정하고 있다.  이와 달리 한국은 일본의 움직임에 대해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윤 대통령의 발언은 분명히 한·미동맹에 대한 미국의 의지와 확장된 억제력에 의문을 제기한 것이었다.

그 의문을 풀어줄 답변은 없었다. 미국은 한국에 전술적 핵무기를 재배치할 생각이 없다. 동시에 미국과 한국이 핵 발사권을 공유하는 듀얼 키(dual key)와 관련한 논의의 여지도 없다. 그게 한국 스스로의 운명과 미래에 직결된 사안인데도 말이다. 국방부의 최종이자 최선의 방침은 미국이 핵 능력을 가진 플랫폼을 슬그머니 한국에 배치하고 클린턴 시절에 했던 것처럼 해당 군사장비에 대해 ‘묻지도 답하지도 말라’는 원칙을 적용하는 것이다. 주권을 찾고자 하는 한국 정부에 이는 매력적이지 않은 대답이 분명하다.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프로그램은 2월 초에 대규모 열병식에서 보여진 것처럼 핵 보복 능력을 갖춘 것으로 보인다. 이 미사일들의 대기권 재진입 능력, 발사할 수 있는 탄두의 숫자, 그리고 초보적인 목표관제 능력 탓에 질적으로는 아직 의문이 남는다. 양적으로는 김일성 광장을 가로지르던 12개의 화성-17형 미사일들은 미국의 방어망을 뚫기에 충분했다. 이는 미국의 미사일 방어체계와 안보 전력에 큰 구멍을 내는 것이다. 미국으로선 유례없는 취약함에 노출된 것이다.

북한은 이것이 ‘게임 체인저(game changer)’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향후 핵이 등장하는 어떤 위기에서도 미국은 이제 전선에 위치하게 됐다. 전투는 더이상 외국 영토에서만 행해지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확장된 ‘억제력의 우산’을 접도록 위협한다.

프랑스 드골 대통령이 미국 정부에게 핵 위협 상황에서 뉴욕과 파리를 맞바꿀 수 있겠냐고 물었을 때 많은 이들이 정말 그럴 수도 있겠다고 믿었다. 지금까지 동북아시아에서 나온 질문은 동경과 서울을 맞바꿀 수 있냐는 것이었다. 대답은 항상 ‘예스’였다.

이제 LA, 뉴욕 그리고 다른 미국 도시들을 두고 묻는다면 미국인들은, 또 미국 정치인들도 ‘노(NO)’라고 답할 것이다.

미국은 필시 북한의 도발에 대한 불균형적인 보복을 제시하면서 한국의 군사적 모험주의를 단단히 틀어쥐려 할 것이다. 그게 미국에겐 최선의 방법이다. 반면 최악의 경우 비대칭적인 억제력에 대한 기대는 윤석열 정부를 독자 무장론으로 몰아갈 수도 있을 것이다. 대중의 여론, 인기와 위치가 그를 자극할 것이다. 저조한 지지율을 끌어올리려면 그가 독자 핵무장 정책이 필요하다고 판단할 수도 있다. 그는 지난 70년간 한국을 옭아맸던 철칙, 즉 종속적 입장에서의 외교안보 정책에서 벗어나려고 할 것이다. 목표를 공유했을 때도 별로 안 좋았지만, 갈라진 상태에선 더 참기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이런 상황은 한국에서 팽창하고 있는 내셔널리즘을 자극할 것이다.

북한에겐 일본의 독자 행동을 늦추면서 한·미 동맹을 현저하게 약화시키기나 단절시키는 게 이득이다. 이 모두가 북한으로선 ‘감옥에서 풀려나는’ 카드인 셈이다.

비핵화는 사망 선고를 받았다. 북한은 실절적인 핵무장 국가이며, 앞으론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CVID)’라는 군축 상황이 남아 있다. 반면 서울, 워싱턴, 도쿄를 한데 묶어줬던 연대의 필요성은 사라지게 될 것이다. 북한은 한국과 일본이 앞으로 어떻게 연대해도 위협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용어사전글린 포드 전 유럽의회 의원

영국 노동당 국제위원회 위원을 지낸 글린 포드 전 의원은 1984년 유럽의회 의원에 선출됐다. 의회에서는 외무 및 국제통상위원으로 일했고, 한국과 중국 등 동아시아 국가 전문가로 인정받고 있다. 2009년 컨설팅 회사 ‘폴린트’를 만들었으며, 현재는 북한을 포함한 아시아 국가들의 교육 계몽을 위한 ‘트렉2아시아’를 이끌고 있다. 최근 30년 동안 북한을 50여 차례 방문했으며, 다수의 책을 저술하기도 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