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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면서 진급하냐" 낙인…같은 공무원인데도 '육휴 격차' 왜 [출산율 0.78의 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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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율 0.78의 나라②]

수도권 소재 지방자치단체에서 일하는 9급 공무원 A(31)씨는 지난해 아이를 출산하고 육아휴직을 냈다. 지방공무원법이 정한 최장 육아휴직 기간 3년을 사용한 A씨는 “동료들보다 뒤처진다는 허망감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지금은 언제든 돌아가서 일할 수 있다는 생각에 경력단절에 대한 걱정은 크지 않다”고 했다.

공무원은 현행법(공무원법)에 따라 육아휴직을 최장 3년까지 쓸 수 있다. 남녀고용평등법을 적용받는 일반인(1년)보다 3배 길고, 복직 이후 신분도 보장돼 경력 단절 우려가 없다. 이 때문에 육아휴직은 공무원의 고용상 최대 이점 가운데 하나로 알려져있지만, 이런 공직 사회 내부에서조차 ‘육아휴직 격차’가 존재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육아휴직 사용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직군이나 조직별로 달라서다.

중앙정부 부처에서 5급 사무관으로 일하는 B씨(32)는 육아휴직 생각에 임신·출산이 종종 망설여질 때가 있다고 한다. “전체 커리어를 놓고 봤을 때 한창 일해서 능력을 인정받아야 할 시기인데, 장기간 자리를 비우면 승진이나 유학 경쟁에서 밀릴까봐 걱정”이라는 이유다. B씨는 “여성 사무관 중에 3년을 모두 사용하는 경우는 거의 없고 길어봐야 1년 6개월 쓰는 정도”라며 “승진을 앞뒀거나, 일이 많은 경제 관련 부처 소속일수록 육아휴직을 덜 쓰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지난달 5일 오후 경기 수원시 영통구 수원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23 수원베이비페어'를 찾은 시민들이 다양한 육아용품을 살펴보고 있다. 뉴스1

지난달 5일 오후 경기 수원시 영통구 수원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23 수원베이비페어'를 찾은 시민들이 다양한 육아용품을 살펴보고 있다. 뉴스1

남성의 육아휴직의 경우는 편차가 더 심했다. 경기도 소재 초등학교 남교사인 C씨(32)는 “10년 전만 해도 남교사가 육아휴직을 쓰면 ‘아이한테 무슨 문제가 생겼나’ 생각했지만, 지금은 아주 당연해져서 동료들끼리 눈치를 준다거나 압박을 받는 경우는 보지 못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업무 특성상 남성 성비가 높은 한 지자체 공무원 D씨(42)는 “육아휴직을 쓴다고 하면 ‘쉬면서 진급하려고 한다’는 낙인이 찍히기 일쑤”라며 “그런 낙인효과를 감수하고 장기간 육아휴직을 하는 직원은 남성 중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3개월씩 쪼개 쓰는 것도 눈치를 보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공직사회보다 법정 휴직 기간이 짧은 일반 사기업의 ‘육아휴직 격차’는 더 큰 문제다. 선제적으로 기업문화 개선에 뛰어든 대기업이나 외국계 기업에선 육아휴직 사용에 대한 허들이 낮은 편이다. 글로벌 제약회사에서 계약직으로 근무하는 E씨(31)는 “제약업계 자체가 영업직을 제외하면 여초라서 육아휴직이 자유롭다”며 “이직도 잦은 업계다 보니 육아휴직을 쓰는 입장에서도 경력단절 우려는 덜 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그러나 중소·남초 기업 종사자에게 육아휴직은 여전히 언감생심이다. 중소기업 여직원 F씨(38)는 “면접관이 내가 기혼자라는 걸 알고 대놓고 의자를 돌려버리는 등 임신 가능성이 있는 여성이란 사실만으로 불이익을 받았다”며 “육아휴직을 쓰면 내 자리가 사라져 있을 것 같아 아이는 포기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남성 직원이 대다수인 한 건설사 직원 G씨(35)는 “핵심 직군에 종사하는 남직원 중 육아휴직을 쓴 경우는 아직 못 봤다”고 전했다.

김석호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서로 다른 조직 간이나 같은 조직 안에서의 육아휴직 격차는 조직을 이끄는 관리자들의 인식이 제도를 따라가지 못한 결과”라며 “공무원 조직이든 일반 회사든 관리자의 인식 전환, 그에 따른 인력과 비용 투입이 이뤄져야 제도 취지를 살릴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부 차원에서 사후관리 또는 평가를 통해 적절한 페널티를 부여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출산율 0.78의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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