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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내 신체접촉…누군 유죄, 누군 무죄 왜

중앙일보

입력

[당신의 법정] 강제추행

일러스트=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일러스트=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피고인 소주혁(가명)은 신도림역으로 향하는 2호선 지하철 안에서 A씨에게 다가가 왼손을 갑자기 움켜쥐어 강제로 추행했다.’ 검찰 공소장만 보면 징역형이 선고된 다른 사건과 비슷합니다. 그런데 이 사건은 지난해 9월 무죄가 확정됐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날로 가 봅시다.

회사원 주혁씨는 연차를 내고 친구들과 낮부터 술을 마셨습니다. 주혁씨 행적이 확인된 건 오후 9시20분쯤. 서초역에서 경범죄처벌법 위반으로 범칙금을 부과받았습니다. 주혁씨 주장에 따르면, 역에서 커플이 다투던 중 남자가 여자를 때리려고 해 말리려던 건데, 출동한 경찰은 주혁씨가 불안감을 조성했다며 범칙금을 부과했습니다.

사건은 30분 뒤 벌어집니다. 지하철에 탄 주혁씨가 남자친구와 나란히 앉아 있던 A씨에게 다가가더니 갑자기 “떨어져라” “뭐하는 거냐”며 커플의 손을 떼어냈습니다. A씨 커플은 황당한 노릇이었습니다. 나중에 A씨는 경찰에서 “레깅스를 입고 있어 표적이 됐나 했다”고 말했습니다.

만취한 주혁씨 주장은 A씨 커플이 앞서 서초역에서 다투던 커플로 보였다는 겁니다. 폭력을 휘두른 남자와 손을 잡은 여성이 있어 말려야겠다고 착각했고, 확인 없이 냅다 실행에 옮겼다는 겁니다.

☞여기서 질문!

불쾌한 신체접촉은 언제 강제추행이 되나요?

관련 법령은?

형법상 강제추행죄 제298조: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에 대하여 추행을 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신의 법정

강제추행으로 기소된 주혁씨가 무죄를 선고받았다고 아무런 잘못도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주혁씨는 술에 취해 시비를 건 자신의 잘못을 ‘폭행’으로 인정하고 A씨와 합의했습니다. 만약 검찰이 강제추행 대신 폭행으로 기소했다면 다른 결과가 나올 수도 있었습니다. 검찰은 재판 도중 “폭행으로 공소장을 변경하지 않겠느냐”는 판사의 질문에도 강제추행을 고집했습니다. 이러면 판사는 강제추행인지만 따지게 됩니다.

‘당시 지하철 내 승객이 많았고 남자친구가 옆에 있어 범행이 쉽게 발각되거나 곧바로 항의받을 상황인데, 성적 의도로 신체를 접촉했을까?’ ‘접촉 이후 도망가지 않고 그 자리에 있다가 A씨 커플을 따라 내렸고,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하니 함께 센터를 방문했는데, 진짜 성추행범이면 이렇게 행동했을까?’

서울중앙지법 형사16단독 김태균 판사는 유무죄 판단 과정에서 이렇게 자문했다고 합니다. 그 결과, 주혁씨에게 성추행의 고의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결론은 강제추행죄 무죄. 검찰도 항소를 포기해 결국 이를 인정한 셈이 됐습니다. 추행 행위를 처벌하려면 객관적으로 불쾌한 신체접촉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추행의 고의가 있었던 점이 의심의 여지없이 증명돼야 합니다.

☞관련 판례

이런 경우는 어떤가요. 한 남성이 지하철 안에서 기둥을 잡은 여성의 손을 3~5초 잡았습니다. 남성도 잡은 사실을 인정합니다. 하지만 남성이 84세 노인으로 무거운 가방을 메고 있었다면요? 흔들린 열차에서 균형을 잡으려다 벌어진 사고였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습니다(서울중앙지법 2019년 4월 무죄 선고).

피해자 진술이 의심스러워 무죄인 경우도 있습니다. “옆자리가 텅텅 비었는데 짧은 반팔 셔츠를 입은 사람이 옆에 앉더니 내 팔뚝을 터치하고 허벅지를 주물렀다”는 피해자 주장에 따라 기소된 사건이에요. 재판부는 당시 사진·영상에서 옆자리에 2명이 더 있었고, 피고인이 긴팔 셔츠를 접어 입은 걸 확인했습니다. 재판부는 “둘 다 술에 취했고, 좁은 지하철 안에서 실수로 접촉했을 수 있다”고 봤습니다(인천지법 2022년 9월 무죄 선고).

접촉 이후 태도도 고의를 판단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주혁씨의 경우 제 발로 경찰서까지 함께 갔던 게 유리하게 작용했습니다.

'당신의 법정’은 중앙일보 프리미엄 디지털 구독 서비스 ‘더중앙플러스(The JoongAng Plus)’의 연재 시리즈입니다. 매주 수요일에 발행됩니다. '당신의 법정'의 이번 순서는 지하철 안에서의 불쾌한 신체접촉에 대한 법원의 상반된 판결을 다룹니다. 판례는 형법상 강제추행죄를 어떻게 규정하고 있을까요? 더중앙플러스 ‘당신의 법정’에 가면, 이와 관련된 보다 자세한 내용을 볼 수 있습니다.

더중앙플러스 기사 보기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437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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