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석환 대진대 건설환경공학부 교수·국가수자원관리위원
오는 22일은 유엔이 정한 ‘세계 물의 날’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8·15 광복절 경축사에서 대북 정책으로 제시한 ‘담대한 구상’ 속 ‘그린 데탕트’를 새삼 주목한다. 그린 데탕트는 경제와 함께 환경 문제를 북한 주민 삶을 개선하는 인도적 대북 협력 사업의 일종이다. 과거 정부의 녹색 성장이나 그린 협력에서 진일보한 계획이다. 주요 협력 과제로는 기후환경·산림·수자원·농업 등이 있다.
심화한 전 지구적 기후위기에 따른 생태 환경적 재난 위험에서 한반도도 이제 예외가 아니고, 북한도 이를 충분히 인지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남북 관계가 매우 경색된 데다 유엔 안보리와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상황이라 작은 협력도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22일 ‘세계 물의 날’ 맞아 주목
북한 무단방류에 홍수 되풀이
유엔 제재 예외항목, 협력 가능

일러스트=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그런데도 그린 데탕트를 실현하려면 몇 가지 원칙을 지켜야 한다. 첫째,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 방침에 어긋나지 않아야 한다. 제재를 피할 방법은 인도적 지원인데 식량과 위생 협력 정도가 해당한다. 하지만 식량은 북한이 자존심을 내세워 거부할 공산이 크기에 결국 남는 것은 위생이다. 둘째, 일방적 퍼주기에 대한 국민의 정서적 거부감을 고려해야 한다. 대한민국에도 가시적 편익을 줄 수 있는 호혜적 지원 사업이어야 한다.
셋째, 협력 과제는 북한 주민들에게 필요한 것이어야 한다. 도로나 철도 협력 등은 북한 주민들에게 필요한 긴급한 사업이 아니고 한국의 투자 사업 성격인 데다 안보리 제재도 피할 수 없다. 불확실성이 큰 남북한 직접 교류보다 국제기구를 통한 국제협력사업이 성공 가능성이 있다. 필자가 보기에 이런 조건을 두루 충족할 수 있는 그린 데탕트 대안은 남북 공유하천 협력을 통한 ‘워터 데탕트’다.
전 세계적으로 두 나라 이상을 흐르는 공유하천은 200개가 넘는다. 모든 공유하천은 상류와 하류의 갈등이 있고 국가 간에는 협력위원회가 존재한다. 적대적이든 평화적이든 위원회를 통해 갈등을 해결해 오고 있다. 유일하게 남·북한은 지금껏 협력 의지가 없다. 대표적 남북 공유하천인 임진강 유역에서 남북한은 2001년부터 15년 동안 7개의 댐을 경쟁적으로 건설했다. 북한은 ‘4월5일댐’과 황강댐을, 한국은 군남댐과 한탄강댐 등을 지었다.
좁은 임진강 유역에서 짧은 기간에 이렇게 많은 댐을 건설한 사례는 지구상에 없다. 그 결과 황강댐 무단 방류로 매년 여름 임진강 수해가 되풀이된다. 더 큰 문제는 북한의 유역 변경으로 매년 부족해지는 하류의 수자원 고갈 문제다. 필자가 분석해보니 북한 측에 댐이 집중적으로 건설된 이후 북한은 연간 2억톤 이상의 물을 남측으로 덜 보내고 있다. 임진강 하류에 위치한 한국에선 여름엔 홍수 위험이, 평상시엔 물 부족이 심각해진다. 북한강 상류의 평화의댐과 임남댐 관계도 상황이 비슷하다.
만약 공유하천 협력이 진즉에 이뤄졌다면 북한의 기습 방류에 따른 홍수 방어를 위해 지은 군남조절지댐과 한탄강댐 건설비용인 약 3조원을 절감할 수 있었을 것이다. 농업용수 부족, 임진강의 염분 피해, 어민의 생업 피해도 막대하다. 협력을 통한 치수·이수와 환경 편익 일부를 북한 측에 주더라도 한국의 이익이 훨씬 크다. 공유하천 협력을 통한 명분과 실리를 남북이 누리면서 덤으로 긴장 완화 효과도 노릴 수 있다고 본다. 따라서 하류의 편익 일부를 상류에 보상하는 전형적인 공유하천 협력 방식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다만 남북 대치라는 특수 상황에서 보상 지원은 유엔 안보리 제재의 예외인 위생 차원에서 상하수도 시설 지원으로 가능할 수 있다.
유엔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 주민은 깨끗한 수돗물과 하수처리 시설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북한 측의 홍수 대비 협조를 끌어내고 부족한 물도 받고, 한국은 상하수도 시설인 위생으로 보상하는 ‘워터 데탕트’를 시도해 볼 수 있다. 국제기구를 통한 대북협력사업을 통하면 위험을 더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윤석열 정부의 담대한 구상이 성공하려면 비군사적·비정치적 그린 데탕트가 필요한데 현실 가능한 첫걸음은 워터 데탕트라고 생각한다. 통일부뿐 아니라 집권당인 국민의힘 새 당 대표와 국회 외교통일위원회가 전향적 시각으로 대북 패러다임 전환을 검토하길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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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환 대진대 건설환경공학부 교수·국가수자원관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