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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 포비아, 육아휴직도 다 못 쓰는 젊은 부부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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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김경희 기자 중앙일보 기자
김경희 경제부 기자

김경희 경제부 기자

30대 공무원 A는 최대 1년까지 가능한 육아휴직을 4개월 남기고 최근 복직했다. 고물가·고금리 시대에 남편의 월급과 육아휴직 급여만으로는 버티기 힘들어져서다. 그는 “설 명절수당이라도 챙기려고 일찍 복직했다”며 “한 달 수입의 절반이 대출금으로 나가는데 둘째 계획은 사치인 것 같다”고 말했다.

A가 이례적인 걸까. 각종 통계가 그렇지 않다고 말해준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9월 말 기준 3040 대출자들의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은 각각 44.2%, 41.3%였다. 소득의 거의 절반이 대출 원금과 이자로 나간다는 얘기다.

14일 경기 안양시가 저출산 극복을 위해 내년부터 출산장려금을 인상했다. [중앙포토]

14일 경기 안양시가 저출산 극복을 위해 내년부터 출산장려금을 인상했다. [중앙포토]

평균 육아휴직 기간도 짧아졌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사용 기간은 9개월로 전년 대비 0.5개월 감소했다. 여성은 9.6개월, 남성은 7.3개월이었다. 육아휴직 기간을 남겨뒀다 나중에 쓰려는 경우도 있겠지만, 경제적 부담 역시 무시 못 할 요소로 보인다.

정부는 저출생 해결을 위해 육아휴직 급여의 소득대체율을 높여왔다. 지난해부터 부모 중 한 명이 육아휴직을 할 경우 1년간 통상임금의 80%(최대 150만원)를 지급한다. 하지만 이 중 25%는 복직 후 6개월이 되는 시점에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통장에 꽂히는 건 최대 112만5000원이다. 보건복지부가 고시한 올해 3인 가구 최저생계비(266만원)에 훨씬 못 미친다. 홀벌이라면 육아휴직은 꿈도 못 꾼다는 얘기다. 최근에는 육아휴직 기간을 1년에서 1년 6개월로 늘리자는 얘기도 나왔다. 다만 연장 기간에는 육아휴직 급여를 안 줄 가능성이 거론되자 ‘그림의 떡’이라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출산 포비아(공포증)’를 키우는 주된 원인은 경제적 부담이다. 최근 중앙일보·에스티아이가 전국 20~39살 남녀 8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응답자 10명 중 7명이 양육비 부담(27.4%), 일자리 불안정(20.7%), 주거 불안정(19.9%) 등 돈 문제를 주요 원인으로 꼽았다. 갈수록 불어나는 사교육비는 머지않은 미래의 경제적 부담으로 현실을 짓누른다.

합계출산율 0.78명의 시대다. 윤석열 대통령은 8일 정부와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에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과감하고 확실한 저출산 대책을 마련하라”고 주문했다. N개의 원인과 그 이상의 대책을 들여다보고 있겠지만 때로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한시적인 일몰제라도 좋으니 파격적인 지원으로 판을 흔들어보는 건 어떨까. 부작용도 없지 않겠지만, 도무지 돌파구가 안 보이니 하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