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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조가 있는 아침

(166) 개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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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유자효 한국시인협회장

유자효 한국시인협회장

개화
최도선(1949∼)

그대가 불러주면 꽃이 되고 싶었다

툭 치면 확 터지는
봉숭아 씨앗처럼

까르르 까르르 쏟아지는
봄날이고 싶었다
-나비는 비에 젖지 않는다(책만드는집)

이 봄은 밝은 빛이 가득하기를

김춘수 시인은 명시 ‘꽃’에서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고 노래했는데, 최도선 시인은 ‘그대가 불러주면 꽃이 되고 싶었다’고 했으니 두 시가 마치 대구(對句)와도 같다.

이 시조를 읽으며 참 오랫동안 웃음을 잊고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하였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국내외적으로 웃을 일이 별로 없었다. 아니, 웃기도 미안한 나날이었다.

그러나 때는 봄이다. 모두가 ‘툭’ 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듯하지 않은가. 그러면 쏟아질 듯한 ‘까르르 까르르’ 웃음소리가 들릴 듯하지 않은가. 그러고 보니 참 오래도 웃음을 참고 살았다.

‘아가가 쏘옥 내민/ 혀를 보고 있다// 환장할 일이다/ 미칠 일이다// 산수유 노란 꽃들이/ 온 하늘을 덮고 있다.’ (‘봄날’)

산수유 아름다운 이 봄날엔 세상이 아기 웃음소리 같은 밝은 빛으로 가득했으면 한다.

유자효 한국시인협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