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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반도체 살 길은 오직 기술…실천적 싱크탱크 될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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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김기남 한국공학한림원 회장 은 1981년 삼성전자에 입사해 반도체 부문 대표이사 등을 거쳐 지난해 SAIT(옛 삼성종합기술원) 회장으로 승진했다. 김종호 기자

김기남 한국공학한림원 회장 은 1981년 삼성전자에 입사해 반도체 부문 대표이사 등을 거쳐 지난해 SAIT(옛 삼성종합기술원) 회장으로 승진했다. 김종호 기자

“연구개발은 기술 변화와 창조적 파괴가 수시로 일어나는 분야입니다. 시대의 변화, 기술 트렌드를 빠르고 정확히 읽어내는 게 중요하지요. ‘열심히, 빨리, 잘’ 하자는 좌우명을 갖고 있어요. 43년 차 반도체 엔지니어로, 단 한 순간도 공부와 도전을 놓아본 적이 없습니다.”

김기남(65) 한국공학한림원 회장 겸 SAIT(옛 삼성종합기술원) 회장은 현역 시절 뛰어난 기술 역량을 쌓은 비결로 ‘꾸준함’을 꼽았다. 이어 “그 원동력은 기술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낼 수 있다는 신념”이라며 “지금도 누가 찾지 않아도 오전 6시~6시 30분쯤 사무실에 출근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2일 서울 강남구 공학한림원 집무실에서 올해 7대 회장에 취임한 김 회장을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공학한림원 회장으로 취임한지 2개월이 지났다.
“공학기술계 대표 단체 회장으로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 ‘공학한림원의 품격 향상’이 임기 중 최우선 과제다. 1300여 회원이 대학·기업·정부기관 등에서 쌓아온 경험과 지혜를 결집해 국가 산업 발전의 엔진이 될 수 있도록 하겠다. 또 민간의 목소리를 정부에 전달하는 가교 역할을 할 것이다. 중요한 건 사람이다. 시대 변화에 맞게 회원 선발 절차를 개선해 각 분야에서 최고의 업적을 이룬, 보다 젊고 역동적인 전문가를 회원으로 모시고자 한다.”
공학한림원의 강점과 사업 구상은.
“각국에 공학한림원이 있지만, 한국처럼 산업계와 학계가 균형 있게 참여하는 나라는 드물다. 신기술이나 공학 인력 양성 등을 가장 잘 논의하고 공유할 수 있는 조직이다. 최근 ‘반도체’가 화두다. 특히 시스템 반도체 산업 육성에 대한 의견이 많은데, 우리야말로 강력한 인재풀을 바탕으로 현실적인 정책 제안을 할 수 있다.”
2025년 창립 30주년이 된다.
“올해 안에 30주년 준비위원회를 가동할 계획이다. 새로운 30년은 공학한림원이 실천적 싱크탱크로서 정책을 제안하고, 기업의 어려움을 해결할 실마리를 제공하는 역할을 기대한다. 안정적 재정 확보도 필요하다. 이종 산업 간 교류, 산업 애로사항 해소 등 산업계 서비스를 확대하고, 글로벌 기업과 협력해 민간 기반의 재원을 늘릴 계획이다.”
코로나19 이후 외국 관련 기관과 교류는 어떤가.
“세계공학한림원평의회(CAETS) 등에서 꾸준히 활동해왔다. 특히 ‘차세대공학리더’(YEHS) ‘차세대지식재산리더’(YIPL) ‘주니어공학기술교실’ 같은 프로그램은 해외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1981년 삼성전자에 입사해 ‘43년차 반도체 엔지니어’가 됐다. 가장 뿌듯했던 순간은.
“훌륭한 선배를 만났다. 더욱이 후배 부하 직원들 도움이 없이는 못 한다. 그런 면에서 굉장히 운이 좋았다. 1986년 삼성의 독자 기술로 한국 첫 1메가비트 D램을 개발한 것이 가장 기억이 남는다. 한국의 1메가비트 개발은 1년 반 이상 시작이 늦었다.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회장과 이건희 선대회장이 대단한 게, 그 어려운 상황에서 개발팀을 국내와 미국에 두 팀을 두고 경쟁을 시킨 것이다. 결국 한국팀 결과물이 채택됐다. 삼성 반도체인의 신조 1호인 ‘안 된다는 생각을 버려라’를 가슴에 품은 시점이었다. 이런 도전이 없었다면 한국이 짧은 시간에 ‘메모리 기술 독립’을 하긴 어려웠을 것이다.”
2021년 그랙 애벗 텍사스 주지사(왼쪽)와 삼성전자의 미국 신규 파운드리 건설을 발표하는 장면. [뉴스1]

2021년 그랙 애벗 텍사스 주지사(왼쪽)와 삼성전자의 미국 신규 파운드리 건설을 발표하는 장면. [뉴스1]

말 그대로 맨땅에 헤딩을 한 것인데.
“미국에 연수생으로 갔을 때 현지 엔지니어들이 우리를 ‘코리안 엔지니어’의 준말이라며 ‘캔’이라 부르더라. 비하였다. 날마다 밤샘 근무를 하고, 이튿날 보고서를 공유했더니 인식이 조금씩 달라지더라. 5개월여 뒤엔 팹에서 발생한 문제를 나름의 논리를 세워 설명했는데, 그 논리가 맞았다는 결과가 나오자 ‘캔’이란 말이 쏙 들어갔다.”
한국 반도체산업은 메모리 의존도가 크다는 지적이 있다.
“메모리 분야를 수성하면서 시스템 반도체 역량을 제고해 ‘종합 반도체 강국’으로 나가는 게 한국이 살길이다.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메모리 비중은 30% 수준이지만, 시스템 반도체는 70%에 달한다. 파운드리→팹리스 순으로 제한된 자원을 전략적으로 잘 활용해 나가야 한다.”
반도체 핵심 인재 부족이 리스크로 등장했다.
“삼성도 반도체 계약학과를 만드는 등 투자를 해왔으나 해결이 쉽지 않다. 정부와 학계, 산업계가 역할을 분담해야 한다. 요컨대 국가는 첨단산업 관련 학과에 대한 지원 및 근무여건 개선 체계를 만들고, 기업은 학계가 양성한 고급 두뇌를 활용해 차세대 연구개발에 집중해야 한다.”
미·중 패권 경쟁 속 글로벌 반도체 시장 지형이 급변하고 있다.
“반도체가 미래 사회의 핵심 전략자산으로 부각되며 국가 간 기술패권 경쟁은 더욱 심화할 것이다. 독자 공급망보다는 우방국 중심의 신 공급망으로 재편될 것으로 전망한다. 한국이 살아남는 방법은 오직 기술혁신밖에 없다. 글로벌 시장이 주목하는 첨단 기술, 우수한 공급 능력 확보가 방법이다.”

☞김기남 회장=1981년 삼성전자 반도체 제조기술팀에 입사해 메모리사업부장, 반도체 총괄 겸 시스템LSI 사업부장, 반도체(DS) 부문 대표이사 등을 역임했다. 2022년 회장으로 승진하며, 삼성그룹에서 오너가를 제외하면 8번째로 회장직에 올랐다.

☞한국공학한림원=1995년 설립됐으며, 공학계·산업계 등에서 공학기술 발전에 공적을 세운 우수 공학기술인 1300여 명이 모인 단체다. 기업체 최고기술책임자(CTO)와 대학교수 등이 회원으로, 창조적인 공학기술 개발로 한국 공학의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싱크탱크’ 역할을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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