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태진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는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온라인 게임 중 차별과 성희롱을 겪은 이들이 많다”고 했다. 김종호 기자
‘혜지’ ‘여왕벌’ ‘보르시’는 모두 온라인 게임 공간에서 탄생한 멸칭(경멸하여 일컫는 말)이다.
‘혜지’와 ‘여왕벌’은 실력도 없으면서 남의 도움을 받아 레벨을 높이는 기회주의적 플레이어를 가리킨다. ‘보르시’는 슈팅 게임 ‘오버워치’의 캐릭터 ‘메르시’를 여성 성기에 빗댄 단어다. 주로 메르시 플레이어를 비하하려는 목적으로 쓰인다.
지난달 28일 출간된 『여성 게이머는 총을 쏠 수 있는가』(몽스북·사진)에 소개된 내용이다. 책은 한마디로 온라인 게임 속 성차별 연구 보고서다. 여성 플레이어들이 게임 캐릭터를 고를 때 ‘비주류 역할’을 고르도록 강요받고, ‘실력 후려치기’를 당하며 성희롱·성차별에 노출되는 현실을 기록했다.

여성 게이머는 총을 쏠 수 있는가
이 책의 저자 윤태진(59) 연세대 커뮤니케이션 대학원 교수를 지난 6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연구실에서 만났다.
윤 교수는 여자 게이머를 향한 편견을 여과 없이 드러낸 사례로 ‘게구리’ 논란을 들었다.
‘게구리’라는 닉네임을 쓰는 여자 프로게이머 김세연이 고등학생이던 2016년 오버워치 경기에서 탁월한 성적을 거두자 게이머들 사이에서 ‘핵’(부정 프로그램) 사용이 의심된다는 논란이 일었다. 설상가상으로 ‘게구리’가 여고생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여고생이 이렇게 잘할 리 없다”는 여론까지 번졌다. 논란은 김세연이 방송에 출연해 실력을 입증하고서야 종결됐다.
게임 도중 “혜지야, 오빠가 살살해줄게” “혜지치곤 잘 한다” 등의 말을 들은 여성 플레이어들은 어떻게 행동할까. 윤 교수에 따르면 이들은 남자인 척하거나, 싸우거나, 게임을 그만두는 방식으로 대응한다. 그는 “여성 플레이어를 홀대하는 것은 게임 업계 발전 차원에서 매우 근시안적인 태도”라고 지적했다.
윤 교수는 게임이 여성 캐릭터를 재현하는 방식에도 문제를 제기했다. 슈팅 게임 ‘서든어택 2’는 2016년 7월 출시 직후부터 여성 캐릭터 선정성 논란에 휘말렸다. 게임 속 여성 캐릭터들이 다리를 벌리거나 가슴을 난간에 걸친 채 죽은 모습이 부자연스럽고 자극적이라는 이유였다.
그는 “과거 영화나 드라마에서 여자 캐릭터가 전형적인 역할에 머무른 것처럼 게임 속 여자 캐릭터도 남성의 시선에서 재현되기 때문”이라며 “다만 게임 산업이 성숙하고 여성 유저가 많아질수록 더 다양하고 현실적인 여성 캐릭터들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그에게 이 책을 쓴 이유를 묻자 “이런 문화를 바꿔보자는 것”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는 “게임은 머지않아 가장 보편적인 형태의 오락이자 여가 활동이 될 것”이라며 “즐겁자고 하는 게임이 분노와 모욕의 도구가 돼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