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날 줄 알았던 미국발(發) 금리 인상 공포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금리 인상 속도와 최종 금리 수준을 모두 높일 수 있다고 발언하면서다. 오락가락하는 미국 통화 당국의 행보에 원화가치는 급락하고 주가는 큰 폭으로 내렸다. 기준금리를 동결했던 한국은행의 고민도 커지게 됐다.
美 기준금리 6% 가나…“속도·수준 높일 수 있다”
7일(현지시간) 미국 상원 은행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한 파월 의장은 “지표상 더 빠른 긴축이 필요하다면 우리는 금리 인상 속도(pace)를 높일 준비가 돼 있다”고 했다. 또 그는 “최종적인 금리는 지난 12월보다 높을 수 있다”고 언급했다.
파월 의장 발언 직후 시장 분위기는 급변했다. 7일(현지시간)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오는 21~22일 예정된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기준금리가 5~5.25%를 기록할 확률은 74.2%로 예측됐다. 현재 미국 기준금리(4.5~4.75%)에서 해당 금리에 도달하려면 ‘빅스텝(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을 밟아야 한다. 파월 의장이 발언이 있기 하루 전에는 ‘베이비 스텝(기준금리 0.25%포인트 인상)’ 확률이 68.6%로 다수였다.
미국 최종금리에 대한 예측도 바뀌었다. 지난해 12월 FOMC는 회의 직후 공개한 점도표에서 올해 말 금리 수준을 5~5.25%(중간값 5.1%)로 전망했었다. 하지만 7일(현지시간) 페드워치의 전문가 설문에 따르면 오는 6월 FOMC에서 기준금리가 5.5~5.75%까지 올라갈 가능성이 다수 의견(59.3%)으로 바뀌었다. 파월 의장 발언 전에는 거의 예상한 전문가가 없었던 5.75~6% 확률도 17.0%까지 올라왔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의 릭 리더 글로벌 채권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연준이 기준금리를 6%로 올린 뒤 장기간 유지할 가능성이 상당히 있다고 본다”고 했다.
예상 밖 지표에 파월 ‘말 바꾸기’
금리 인상과 관련한 파월 의장의 ‘말 바꾸기’는 최근 미국의 경제 지표가 예상보다 강세를 보여서다. 대표적 물가 지표인 1월 소비자물가지수(CPI)와 개인소비지출(PCE) 모두 전년 동월 대비 각각 6.4%, 5.4% 상승하면서 시장의 전망치를 넘어섰다. 미국의 1월 비농업 신규고용도 전월 대비 51만7000명 증가하면서 예상치의 2배가 넘는 호조를 보였다.
이날 파월 의장도 원래 예상보다 물가 상승 압박이 더 크다는 점을 시인했다. 그는 “우리가 불과 한 달 전에 봤던 (물가 상승률) 완화 추세가 1월 고용·소비자 지출·생산·물가 지표에서 부분적으로 뒤집어졌다”면서 “지난 FOMC에서 생각했던 것보다 물가 상승률 압박이 높게 유지되고 있다”고 했다.
한·미 금리차 2%대 갈 수도
문제는 한국에 몰아칠 후폭풍이다. 한국은행은 지난달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를 3.5%로 일단 멈췄다. 주요국 가운데서는 가장 빠른 동결이었다. 가계부채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화, 경기침체 우려가 큰 상황에서 일단 기준금리 인상 효과를 지켜보자는 의도였다. 미 Fed가 금리 인상 속도 조절에 나선 것도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파월 의장이 긴축 기조 강화를 다시 시사하면서, 한은의 계획이 꼬이게 됐다. 만약 3월에 Fed가 빅스텝을 단행하면 현재 1.25%포인트인 한·미 금리 차는 역대 최대인 1.75%포인트까지 벌어진다. 이후 기준금리 인상이 추가로 계속 단행되면, 금리 격차는 2%포인트 이상으로 더 벌어질 수 있다. 양국의 기준금리 격차가 벌어지면 원화가치 하락으로 인한 외국인 자금 이탈, 수입물가 상승 등 거시 경제 불안이 커진다.
실제 파월 의장의 강경 발언 이후 8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거래된 달러 대비 원화 가치는 전 거래일보다 22원 떨어진(환율은 상승) 1321.4원에 거래를 마쳤다. 올해 달러 대비 원화 가치는 지난달 27일(1323원) 최저를 기록한 뒤, 최근 진정세를 보이다 전날 파월 의장 발언 직후 다시 급락했다. 코스피도 전 거래일(2463.35)보다 31.44포인트(1.28%) 내린 2431.91에 장을 마쳤다. 지난해 한국 경제를 괴롭혔던 ‘킹달러(달러화 초강세)’ 국면이 재현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익명을 요구한 한 시중은행 외환 담당 임원은 "일찍 기준금리를 동결한 것이 국내외 경제 주체들에게 '한국의 긴축은 끝났다'는 메시지를 준 것 같다"고 했다. 실제 외국인 투자자는 한국의 기준금리 동결 이후 3거래일 연속 순매도로 약 1조원 어치 주식을 팔아치우기도 했다.
중국 리오프닝 효과도 불확실
그나마 믿을 구석이었던 중국의 ‘리오프닝(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방역 정책 완화로 인한 경제 활동 재개)’ 효과가 불확실하다는 평가가 나오는 점도 통화 당국의 고민을 키운다. 특히 미·중 갈등으로 인해 반도체 등 주력 수출 상품의 수출이 제약되고 있는 점은 또 다른 변수다. 실제 지난 1월 한국 반도체 산업은 재고율이 26년 만에 최고(265.7%)를 기록할 정도로 불황을 겪고 있어 중국발 특수가 필요한 상황이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부동산PF·가계부채 등 국내 경제 문제가 크기 때문에 미국의 금리 인상에도 불구하고 한은이 기준금리 인상에 쉽게 나서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다만 실제로 미국 기준금리가 6%대까지 만약 올라간다면 한은도 버티기 힘들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