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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 대신 콩 키우면 보조금”…'양곡관리법'에 정부 맞대응

중앙일보

입력

지난달 28일 경기도의 한 미곡종합처리장에서 관리자가 보관중인 쌀을 확인하고 있다. 뉴스1

지난달 28일 경기도의 한 미곡종합처리장에서 관리자가 보관중인 쌀을 확인하고 있다. 뉴스1

쌀은 모자라선 안 되지만, 주로 넘쳐서 고민이다. 쌀 농가를 추가 지원하는 법안(양곡관리법)이 대통령까지 참전한 정치 쟁점으로 떠오른 상황에서 정부가 선수를 쳤다. 쌀 생산을 줄이거나, 논에서 다른 작물을 키울 경우 보조금을 주기로 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8일 ‘2023년 쌀 적정 생산대책 추진계획’을 발표했다. 대책의 핵심은 작황에 따라 널뛰는 쌀 수급을 안정시키기 위해 벼를 기르는 논 면적을 줄이고, 벼를 대체할 ‘전략작물’에 대한 직불제를 도입하는 내용이다. 김인중 농식품부 차관은 “현재 쌀 시장의 구조적인 과잉을 해소하고 수확기 쌀값을 안정시키기 위해 일정 수준의 벼 재배면적 조정이 불가피하다”며 “농업인과 지방자치단체 등과 함께 총력을 다해 대응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대책에 따르면 정부는 올해 적정 벼 재배면적을 69만 헥타르(ha)로 보고, 지난해 벼 재배면적(72만7000ha) 대비 약 5%(3만7000ha) 줄이기로 했다. 과잉 생산으로 쌀값이 하락하고, 쌀값을 방어하기 위해 정부가 재정을 쏟아 시장에서 격리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다.

쌀 생산을 줄이는 농가를 위해 주는 당근이 ‘전략작물 직불제’다. 기존 쌀 외에 콩과 가루쌀 등 작물에도 직불금을 주는 내용이다. 쌀과 소득 차를 고려해 논에서 콩·가루쌀을 키울 경우 ha당 250만원을 지급하는 내용이다. 콩은 희망 물량, 가루쌀은 전량을 정부가 매입하기로 했다. 지자체와 벼 생산을 줄이기로 협약한 농가에 시설·장비·유통 등을 지원하는 내용도 포함시켰다. 정부는 대책을 통해 쌀 생산을 줄일 경우 수확기 산지 쌀값이 약 5% 오르고, 쌀을 사들이는 비용은 약 4400억원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정부가 ‘전략 작물’이란 용어까지 내걸어 보조금을 주기로 한 건 식량 안보가 위기라서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치솟은 국제 곡물 가격이 밥상 물가를 위협하고 있다. 2016년 54.1% 수준이었던 식량 자급률은 2021년 44.4%까지 떨어졌다. 김인중 차관은 “전략작물 직불제를 통해 식량 자급률을 끌어올리고 수입 의존도가 높은 농산물을 국산으로 대체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쌀 소비도 예전 같지 않다. 통계청이 1월 발표한 ‘2022년 양곡 소비량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1인당 쌀 소비량은 56.7㎏으로 2021년(56.9㎏)보다 0.4% 줄었다. 하루 소비량은 155.5g(한 공기 반) 수준이다. 1963년 관련 통계를 작성한 이후 역대 최소다. 1인당 육류 소비량(58.4㎏)이 쌀을 역전한 건 지난해가 처음이었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이날 정부가 발표한 대책은 야당이 이달 23일, 혹은 30일 열릴 예정인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를 밀어붙이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한 맞대응 성격이다. 양곡관리법은 쌀 시장을 보호하는 취지에서 쌀 초과 생산량이 3% 이상이거나 가격이 5% 이상 떨어질 경우, 과잉 생산한 쌀을 정부가 의무적으로 수매(시장격리)하는 내용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1호 법안’으로 꼽힌다.

야당은 양곡관리법이 쌀값 폭락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판’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지만, 정부와 여당은 초과 생산량을 사들이는 데 매년 1조원 이상이 들어가는 들어간다며 재정 부담을 이유로 반대해왔다.

김진표 국회의장(뒷줄 가운데)이 지난달 27일 국회에서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3월 첫 본회의에서 처리한다고 발표하자 더불어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단상 오른쪽)와 진성준 원내수석부대표(왼쪽)가 항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진표 국회의장(뒷줄 가운데)이 지난달 27일 국회에서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3월 첫 본회의에서 처리한다고 발표하자 더불어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단상 오른쪽)와 진성준 원내수석부대표(왼쪽)가 항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경제보다 정치 논리가 끼어든 측면도 있다. 야당은 내년 총선을 앞두고 문재인 정부 시절 쌀값 안정 실패의 책임을 지우고, 호남 표를 지키는 측면에서 양곡관리법 처리를 밀어붙여 왔다. 윤석열 대통령은 “쌀을 정부가 무조건 매입하는 건 농민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양곡관리법이 국회를 통과할 경우 거부권(재의 요구권) 행사를 예고했다. 현실화할 경우 대통령 취임 후 첫 거부권 행사다.

김성훈 충남대 농업경제학과 교수는 “유럽과 동남아에서 (양곡관리법과) 비슷한 정책을 시행했다가 재정 부담이 크게 늘고 농업 경쟁력이 약화했다”며 “잘못하면 중증 환자(쌀 산업)를 일으키는 대신 정부 보조금에 기대 생명만 유지하는 ‘연명 치료’에 그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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