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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 목소리 달콤" 아파트 난리…트로트 스타된 무명 골키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축구 선수에서 트로트 가수로 변신하는 데 성공한 전종혁. (왼) 크레아 스튜디오. (오) 부천FC

축구 선수에서 트로트 가수로 변신하는 데 성공한 전종혁. (왼) 크레아 스튜디오. (오) 부천FC

"두 달 만에 저처럼 인생이 달라진 사람이 또 있을까요."

올해 프로축구 선수에서 트로트 가수로 변신한 전종혁(27)은 싱글벙글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무명 축구 선수였던 그는 최근 끝난 한 트로트 오디션에 참가해 12위에 올랐다. 100명의 도전자가 3개월간 경쟁한 TV 프로다. 오디션 톱13가 나서는 서울 콘서트를 준비 중인 그를 7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서 만났다. 전종혁은 "오디션 참가자 대부분이 가수나 가수 준비생이었다. 완전 아마추어 그것도 축구 선수는 내가 유일하다. 나에겐 몇 배나 더 힘든 도전이었는데, 해피엔딩으로 끝나서 기쁘다"며 웃었다.

현역 시절 골키퍼였던 전종혁. 2021시즌 부천에서 프로 데뷔 후 가장 많은 경기를 뛰었다. 사진 부천FC

현역 시절 골키퍼였던 전종혁. 2021시즌 부천에서 프로 데뷔 후 가장 많은 경기를 뛰었다. 사진 부천FC

신인 시절 전종혁. 사진 프로축구연맹

신인 시절 전종혁. 사진 프로축구연맹

전종혁은 장래가 촉망되는 골키퍼였다. 축구 명문 성남 풍생중·고를 거쳐 연세대에 진학했다. 청소년 대표(20세 이하)에도 뽑혀 김민재(27·나폴리), 황희찬(27·울버햄프턴), 나상호(27·FC서울)와 함께 그라운드를 누볐다. 하지만 프로 데뷔 후 고질적 무릎 부상에 시달렸다. 최근 1년 사이 왼쪽 무릎을 두 차례나 수술했다. 경기는 거의 뛰지 못했다. 전종혁은 "15세 때 처음 무릎을 다친 이래로 같은 부위만 총 다섯 차례 수술했다. 또 한 번 수술과 재활을 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내가 다시 예전처럼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 때문에 지난해는 무척 힘든 시즌이었다"고 털어놨다.

트로트 오디션 프로 참가자 모집글을 본 건 시즌이 끝난 지난해 10월 말이었다. 그는 '재활 후 복귀'와 '가수 오디션'의 기로에서 고민했다. 전종혁은 "사흘간 한숨도 못 자고 혼자 끙끙 앓았다. 축구는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자신 있고 행복한 일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무엇보다 내겐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매력이 있다고 판단해 과감하게 새 도전을 택했다"고 말했다. 그의 지난 시즌 연봉은 약 1억원이었다. 전종혁은 2020년 개인 유튜브 채널에 발라드 노래를 부르는 영상을 종종 올렸는데 동료들에게 '수준급'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트로트 오디션 12위를 차지한 축구 선수 출신 전종혁. 사진 크레아 스튜디오

트로트 오디션 12위를 차지한 축구 선수 출신 전종혁. 사진 크레아 스튜디오

전종혁은 "트로트 만큼이나 발라드도 잘 부른다. 박상민, 윤종신의 팬"이라고 했다. 사진 크레아 스튜디오

전종혁은 "트로트 만큼이나 발라드도 잘 부른다. 박상민, 윤종신의 팬"이라고 했다. 사진 크레아 스튜디오

하지만 오디션은 취미가 아닌 생존경쟁이었다. 게다가 트로트 경험은 전무했다. 최진희의 '사랑의 미로'를 도전곡으로 정한 그는 이때부터 밥 먹고 자는 시간 외엔 '사랑의 미로'만 불렀다. 전종혁은 "나는 운동 선수 출신이라 승부욕이 엄청나다. 하루도 빠짐없이 샤워하며 도전곡을 연습했는데, 며칠 뒤 입주민 단체 채팅방에 '밤마다 화장실에서 노래하시는 분 목소리가 너무 달콤하다. 자주 불러달라'는 농담 섞인 요청이 꾸준히 올라왔다. 이때부터 노래에 자신감을 얻었다"고 말했다.

기대대로 오디션에서 전종혁의 목소리는 심사위원과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1m85㎝의 훤칠한 키와 잘생긴 외모 덕분에 여성 팬이 많다. 그는 "식당에서 가면 나를 알아본 사장님이 반찬을 푸짐하게 주신 것도 모자라 포장까지 해주신다. 축구는 20년 해도 무명이었는데, 가수는 2개월 했는데 큰 사랑을 받아 아직도 얼떨떨하다"고 말했다. 친구들 반응도 뜨겁다. 방송 출연과 행사 제안도 쏟아진다. 전종혁은 "이탈리아에서 뛰는 (김)민재가 '은퇴한다고 했을 때는 안 믿었는데, 방송 보니 실감 난다'며 응원 메시지 보냈고, (나)상호는 '노래 좀 하네. 잘 봤다'고 했다"고 말했다.

청소년 대표 시절 전종혁과 함께 후방을 지켰던 김민재. 지금은 가장 든든한 응원군이다. 연합뉴스

청소년 대표 시절 전종혁과 함께 후방을 지켰던 김민재. 지금은 가장 든든한 응원군이다. 연합뉴스

전종혁은 요즘 가벼운 축구로 스트레스를 푼다. 부상 탓에 프로 생활은 못하지만, 웬만한 아마추어는 압도한다. 사진 부천FC

전종혁은 요즘 가벼운 축구로 스트레스를 푼다. 부상 탓에 프로 생활은 못하지만, 웬만한 아마추어는 압도한다. 사진 부천FC

전종혁의 외로운 어린 시절을 보냈다. 부모가 초등학교 3학년 때 이혼했다. 이후엔 사실상 혼자 살았다. 당시 축구부에서 합숙 생활을 했기 때문이다. 명절에도 숙소에 혼자 남았다. 친구들의 가족이 간식을 챙겨 훈련장을 찾는 날이면 부럽고 속상한 마음에 자리를 피했다. 그런 그에게 '음악'은 유일한 친구였다. 훈련 후 혼자 학교 인근 노래방을 찾아 외로움을 달랬다. 2~3시간 동안 목청이 터지라 노래했다. 전종혁은 "주로 고음의 발라드를 불렀다. 부드러운 멜로디를 따라 노래를 부르고 나면 외로움과 아픔이 치유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1등 가수가 되는 것도 좋지만, 내 노래로 상처받은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가수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하고 싶은 일이 많다. 당장은 음악 예능 프로 '복면가왕' 출연이 목표다. 팬들과도 더 많은 소통 기회를 갖기 위해 노력 중이다. 최종 꿈은 '축구장 콘서트'다. 그는 "축구 선수라면 누구나 수만 관중 앞에서 국가대표로 뛰는 모습을 꿈꾼다. 그 꿈을 가수로 이루고 싶다. 그때까지 히트곡을 쌓아가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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