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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취 속 돼지 우리서 10년살이…"집 가야지" 그뒤 비극 닥쳤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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쁘라와세낭문추(사진)가 연락이 되지 않자 고국의 부인은 포천 태국인 커뮤니티에 남편을 찾아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태국인 커뮤니티엔 태국어로 쁘라와세낭문추의 행방을 찾는 글이 다수 공유됐다. 사진 라린

쁘라와세낭문추(사진)가 연락이 되지 않자 고국의 부인은 포천 태국인 커뮤니티에 남편을 찾아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태국인 커뮤니티엔 태국어로 쁘라와세낭문추의 행방을 찾는 글이 다수 공유됐다. 사진 라린

“몸이 아프다고 집에 가고 싶다 했다고…”

경기도 포천에 사는 태국인 라린(가명)은 이달 초 세상을 뜬 ‘문추 아저씨’의 마지막 모습을 되뇌고 되뇌었다. 태국에서 온 이주노동자 쁘라와세낭문추(60대)는 지난 4일 오후 일터였던 포천 한 돼지농장 뒤편 언덕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라린이 “문추 아저씨가 계속 연락이 되지 않는다”고 실종신고를 접수한 지 반나절 뒤였다. 사체유기 혐의로 체포된 농장주 김모씨는 경찰에 “아침에 숙소에 가보니 쁘라와세낭문추가 쓰러져 있었다”고 진술했다. 라린은 “태국에 있는 아저씨의 부인도 소식을 전해 듣고 침통한 상태”라며 “다들 비극을 막지 못해 마음이 어렵다고 한다”고 말했다.

쁘라와세낭문추는 부인과 아들을 둔 가장이었다. 태국 컨깬 왱너이에서 가족끼리 농사를 지으며 살아왔다고 한다. 50대에 접어든 2013년 그는 한국행을 결심했다. 현지에선 노년에 접어들기 전 한국으로 건너가 일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고 한다. 태국 은행원 수입보다 한국 이주노동자로 일해 얻을 수 있는 수입이 1.5배 가까이 많기 때문이라고 한다. 만 39세 미만으로 제한되는 취업비자를 받을 수 없던 그는 관광비자로 한국 땅을 밟았고 태국인이 많이 사는(지난해 기준 1000여명) 포천에 둥지를 틀었다.

쁘라와세낭문추는 10년간 경기 포천 돼지농장에서 일했다. 돼지 농장에 사는 어미돼지 100여 마리를 돌보는 일이었다. “기계가 있어 2명이 하기엔 벅찬 일은 아니었다”고 주변 농장 관계자는 전했다. 심석용 기자

쁘라와세낭문추는 10년간 경기 포천 돼지농장에서 일했다. 돼지 농장에 사는 어미돼지 100여 마리를 돌보는 일이었다. “기계가 있어 2명이 하기엔 벅찬 일은 아니었다”고 주변 농장 관계자는 전했다. 심석용 기자

월급 110만원. 2013년 돼지농장에 취업한 쁘라와세낭문추가 받은 첫 월급이었다. 숙식은 농장주가 제공했다. 기계가 있었지만, 돼지 100여 마리를 돌보는 일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적응이 빨랐다. 고국에서 농사를 지었던 경험이 도움이 됐다. 근속연수가 늘면서 월급도 180만원으로 올랐는데 매번 20만원 정도만 남기고 대부분을 고국의 가족에게 보냈다고 한다. 라린은 “아저씨는 월급을 송금할 때와 물건을 주문할 때만 농장 밖으로 나왔다”며 “한 달에 한 번 가게에 와서 커피와 담배를 뭉텅이로 주문하곤 했다”고 말했다. 이 농장과 자주 거래했다던 양모씨는 “쁘라와세낭문추는 돈사 안에서 살았다. 한국말을 잘 못 해서 농장주하고도 몸짓으로 대화했다. 주변과는 교류가 잘 없었다고 한다”고 전했다.

6일 중앙일보가 찾은 쁘라와세낭문추의 거주지는 쓰레기더미로 가득했다. 그의 숙소 옆엔 돼지가 살고 있다. 심석용 기자

6일 중앙일보가 찾은 쁘라와세낭문추의 거주지는 쓰레기더미로 가득했다. 그의 숙소 옆엔 돼지가 살고 있다. 심석용 기자

밤낮으로 돼지가 울고 악취가 풍기는 돈사 안 숙소. 폐비닐, 페트병, 이불, 옷 등이 엉켜 쓰레기장 같았던 방. 쁘라와세낭문추는 그곳에 10년 동안 머물렀다. 라린은 “태국의 부인이 ‘월급을 더 주고 방도 좋은 곳으로 옮기라’고 했지만 ‘지금이 좋다. 아픈 데 없다’며 부인을 안심시켰다”고 말했다.

결국 탈이 났다. 올해 들어 “몸이 좋지 않다”고 호소하는 날이 늘었다. 최근엔 부인에게 “집에 돌아가야겠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관광비자가 만료되면서 불법체류자가 된 그는 10년간 고국 땅을 밟지 못했다. 그러나 귀향의 꿈은 이뤄지지 못했다. 지난달 28일 오전 부인과의 통화를 마지막으로 연락이 끊긴 그는 지난 4일 차디찬 시신으로 발견됐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부검결과 “타살 혐의점은 보이지 않는다. 사인은 심장 계통 이상 건강상의 문제로 추정된다”는 1차 구두소견을 내놓았다. 경찰 관계자는 “정확한 사망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남편의 부고를 알게 된 부인은 여권이 발급되는 대로 한국행 비행기에 오를 예정이다. 시신을 직접 수습하겠단 마음이라고 라린은 전했다. 주한 태국 대사관 관계자는 중앙일보에 “쁘라와세낭문추의 사정을 알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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