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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여행 가볼 겸" 이러다 덜컥 합격…POB 27세 韓 발레리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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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젤'의 매력은 처녀 귀신 윌리(Wili)들이 군무로 표현하는 환상적인 사후 세계입니다. 처음 맡게 된 배역인데, 어떻게 하면 제가 유령처럼 가볍게 보일지 연구를 많이 했습니다.”

세계 최고(最古)의 발레단인 파리오페라발레(POB) 소속 한국인 무용수 강호현(27)은 한국에서 공연하는 '지젤'의 '윌리' 역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6일 인터뷰에서다. "주역을 맡았던 직전 공연은 감정의 격동을 드러내는 드라마 발레였는데, '지젤'에서는 감정을 배제해야 하는 귀신 연기를 하게 돼 새롭고 즐겁다”며 "인간의 혼을 연기하는 것이기 때문에 공중에 떠다니는 듯한 느낌을 연출하는 게 과제"라고 덧붙였다. 17세기 후반에 설립돼 역사가 350년이 넘는 POB는 1993년 지젤 공연 이후 30년 만에 같은 작품으로 한국을 찾았다. 3·4일 대전 공연을 마치고 8~11일 LG아트센터 서울에서 공연한다.

강호현 파리오페라단 발레리나가 6일 인터뷰에 앞서 발레 '지젤'의 윌리 군무 중 한 부분인 아라베스크 포즈를 취하고 있다. 강정현 기자

강호현 파리오페라단 발레리나가 6일 인터뷰에 앞서 발레 '지젤'의 윌리 군무 중 한 부분인 아라베스크 포즈를 취하고 있다. 강정현 기자

강호현은 2017년 말 준단원으로 POB에 입단해 정단원, 군무 리더를 거쳐 5년 만에 독무와 군무의 리더를 겸하는 쉬제(sujet)로 승급한 POB의 차세대 스타다. 한국에서 예원학교·서울예고·한예종으로 이어지는 엘리트 코스를 밟고 한예종 재학 중 “파리 여행도 하고 가르니에 극장도 구경할 겸 견학 차원으로 도전해본” POB 오디션에 덜컥 붙어 21살에 프로로 데뷔했다. 지난해 말 드라마 발레 ‘마이얼링’에서 여주인공 마리 베체라 역을 맡으며 프랑스 발레 팬들의 주목을 받았다.

지난해 11월 드라마발레 '마이얼링'에서 여주인공 마리 베체라를 연기 중인 파리오페라발레단의 강호현 무용수. 사진 강호현

지난해 11월 드라마발레 '마이얼링'에서 여주인공 마리 베체라를 연기 중인 파리오페라발레단의 강호현 무용수. 사진 강호현

이번 내한 공연에서 그가 맡은 역은 윌리들의 리더격인 ‘두 윌리’다. 발레 ‘지젤’은 달빛 아래서 춤을 추는 처녀 귀신(윌리)들이 남자를 유혹해 죽음에 이르게 한다는, 독일 설화를 바탕으로 탄생했다. 주인공인 시골 처녀 지젤도 연인에게 배신당한 충격으로 세상을 떠나 처녀 귀신 윌리가 되지만, 죽어서도 자신을 배신한 연인을 지키며 죽음을 초월한 사랑을 선보인다.

강호현은 윌리를 연습하며 “가볍게 보이도록 춤추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새삼 깨달았다”고 했다. 발레는 중력을 거슬러야 한다. 가벼운 착지와 높은 점프, 긴 체공 시간이 발레 무용수들의 테크닉 수준을 가늠하는 척도가 된다. POB의 에뚜알(최고 등급의 수석 무용수)인 도로테 질베르는 7일 기자간담회에서 “지젤은 이런 테크닉의 정점을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호세 마르티네즈 POB 예술감독(오른쪽부터)과 무용수 강호현, 도로테 질베르, 기욤 디옵이 7일 서울 강서구 마곡동 LG아트센터에서 열린 파리 오페라 발레 '지젤' 기자간담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호세 마르티네즈 POB 예술감독(오른쪽부터)과 무용수 강호현, 도로테 질베르, 기욤 디옵이 7일 서울 강서구 마곡동 LG아트센터에서 열린 파리 오페라 발레 '지젤' 기자간담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윌리를 맡은 무용수들에게는 유령처럼 보이기 위해 구름 위를 떠다니는 듯한 동작이 요구된다. 강호현은 “가볍게 보이는 동작일수록 사력을 다해야 한다”며 “어려운 동작을 아무런 힘도 들지 않는 것처럼 표현하는 동료 무용수들을 보며 감탄한 적이 많다”고 했다.

“높이 올라가는 것보다 행복하게 춤추고 싶다”는 강호현이지만 호세 마르티네즈 POB 예술감독은  그를 “미래의 에뚜알”이라고 불렀다. 그러면서 “강호현은 프랑스 스타일의 발레를 훌륭하게 해내는 뛰어난 무용수”라며 “POB의 미래를 이끌어 나갈 것”이라고 했다.

‘지젤’은 낭만발레의 대표작. 몽환적인 유령의 세계를 그리는 2막의 윌리 군무, 연인에게 배신당한 지젤이 정신을 잃는 1막 ‘매드씬’이 하이라이트로 꼽힌다. 강호현의 춤에 관심이 가는 이유다. POB는 1841년 지젤을 초연한 ‘원조’ 발레단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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