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이 군사를 이끌고 이각과 곽사를 사칭해 헌제를 잡으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양봉은 그가 이낙임을 알아차렸습니다. 서황이 말을 몰고 달려가 단 1합에 이낙의 목을 베었습니다. 헌제는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낙양에 입성했습니다. 그러나 궁궐은 모두 불타고 황무지엔 다북쑥만 지천으로 널렸습니다. 헌제는 작은 궁을 하나 지어 기거했고 문무백관은 가시덤불에 서서 조회를 열었습니다.
헌제는 ‘흥평(興平)’이란 연호를 버리고 ‘건안(建安)’으로 고쳐 부르게 했습니다. ‘흥하고 평안한’ 시대는 허황한 꿈이고, ‘안정을 세우는’ 것이 작금의 간절한 소망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늘은 또다시 흉년을 안겨주었고 모두가 초근목피로 연명해야만 했습니다. 전쟁에서 죽은 자 못지않게 배고파 굶어 죽은 자가 담장 사이에 널렸습니다. 한나라 4백년의 역사에서 이보다 더 쇠약한 적이 없었으니 헌제의 운명도 참으로 기구할 뿐입니다.
산동을 장악한 조조가 낙양으로 돌아온 황제의 소식을 듣고 참모들과 상의를 했습니다. 순욱이 속히 천자를 받들어 모시고 여망을 따르는 것이 좋은 책략이라고 제안했습니다. 때마침 천자가 부른다는 조서도 도착합니다. 조조는 기쁜 마음으로 서둘러 군사를 출동시켰습니다.
한편, 헌제는 이각과 곽사가 낙양으로 쳐들어온다는 소식에 다시 몸을 피해야만 했습니다. 이때 조조군이 도착해 황제를 진정시키고 이각과 곽사를 상대했습니다. 이각과 곽사는 가후의 진언도 듣지 않고 조조군과 싸우다가 대패하고 겨우 목숨만 건져 산속으로 도망쳤습니다. 이제 헌제는 조조의 보호로 큰 시름을 놓았습니다.
동소가 헌제의 사자로 조조를 찾아왔습니다. 동소는 조조에게 춘추 오패(五覇)의 공업(功業)을 이루기 위해서라도 거가(車駕)를 허도(許都)로 옮겨 모실 것을 제안했습니다. 조조는 동소와 생각이 맞아 떨어지자 그의 손을 꼭 잡으며 말했습니다.
이 조조가 꾀하는 일들을 공께서 잘 지도해 주시오.
나관중은 이 부분을 다르게 표현했습니다.
공이 조석(朝夕)으로 나를 따르면서 해서는 아니 될 일들을 가르쳐주시오. 내가 후하게 보답하겠소.
나관중은 조조가 ‘해서는 아니 될 일들’을 가르쳐 달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모종강은 조조가 ‘꾀하는 일들’을 지도해 달라는 것으로 고쳤습니다. 같은 결과라 하더라도 ‘아 다르고 어 다른 법’인데, 모종강이 쓴 조조의 어투에는 기본적으로 ‘간사함’이 배어있습니다.
![서황. [출처=예슝(葉雄) 화백]](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303/08/b97961ec-7a39-441e-81a4-0789f9ffbf7e.jpg)
서황. [출처=예슝(葉雄) 화백]
조조는 허도로의 이전 준비를 완료하고 헌제의 승낙을 받습니다. 좋은 날을 잡아 허도로 향하던 중, 양봉의 부하인 서황이 길을 막았습니다. 조조는 허저와 싸우는 서황을 보고 부하로 삼고 싶었습니다. 그를 알고 있는 만총이 나서서 서황을 데리고 왔습니다. 조조는 허도에 궁전을 짓고 종묘와 사직을 세웠습니다. 낙양에 버금가는 성곽과 건물들을 세우고 헌제와 황후를 모셨습니다. 조조는 이 공훈으로 대장군에 오르고 참모들에게도 각각 벼슬을 주었습니다.
조조는 서주의 유비와 소패의 여포가 함께 쳐들어올 것이 걱정돼 참모들과 이를 논의했습니다. 그러자 순욱이 ‘이호경식지계(二虎競食之計)’를 제안합니다. 두 마리의 호랑이를 싸우게 해 서로를 죽게 만드는 계략입니다. 조조는 헌제에게 주청해 유비를 공식적인 서주목(徐州牧)으로 임명합니다. 그리고 별도로 ‘여포를 죽이라’는 밀서(密書)를 보냈습니다. 유비는 천자의 조서는 받고, 밀서는 천천히 생각하겠다며 계략을 빠져나갔습니다. 여포를 극도로 미워하는 장비가 말했습니다.
여포는 원래부터 의리가 없는 놈입니다. 죽인다고 무슨 상관이 있겠사옵니까?
그는 형편이 곤궁하여 나에게 의탁하러 왔는데 내가 만일 죽인다면 나 역시 의롭지 못한 사람이 아니겠느냐?
사람이 좋기만 해서는 아무 일도 못 하는 법입니다.
유비는 여포에게 밀서를 보여주고 조조의 계략에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여포는 유비에게 감사를 표했고 관우와 장비도 그제야 이해했습니다.
순욱은 계책이 실패하자 호랑이를 몰아 이리를 잡아먹게 하는 ‘구호탄랑지계(驅虎呑狼之計)’를 내놓습니다. 이에 조조는 유비에게 천자의 조서를 보내 원술을 공격하게 했습니다. 원술에게도 사람을 보내 유비가 황제께 밀표(密表)를 올려 원술의 영역인 구강군(九江郡)을 빼앗으려 한다고 귀띔했습니다.
유비는 조서를 받고 이 또한 조조의 계략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천자의 명령을 어길 수는 없었습니다. 유비는 서주성을 장비에게 맡기고 원술을 공략하기로 했습니다. 유비는 술고래 장비가 성을 지키는 것이 걱정돼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장비가 다짐했습니다.
지금부터는 술도 안 마시고 병사도 안 때리겠소. 그리고 모든 일을 충고대로 하면 될 것이 아니옵니까?
말로 하는 약속은 언제나 쉽습니다. 그러나 행동으로 지키기는 정말 어렵습니다. 장비는 며칠이 지나자 술이 그리워 몸살이 났습니다. 관원들을 초대해 잔치를 열고는 ‘오늘만 취하도록 마시고 내일부터는 모두가 술을 끊자’고 했습니다. 자신만 안 마시면 될 것을 남들을 끌어들이며 너스레를 떠는 꼴이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습니다.
![술을 사양하는 조표에게 강제로 마시게 하는 장비. [출처=예슝(葉雄) 화백]](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303/08/281cf81d-0382-4c75-90a1-cb66c82f744a.jpg)
술을 사양하는 조표에게 강제로 마시게 하는 장비. [출처=예슝(葉雄) 화백]
장비는 술을 못 이기는 체질인 조표를 한사코 먹이려다가 재삼재사 사양하자 곤장 1백대를 때리겠다고 엄포를 놓았습니다. 이에 조표가 사위인 여포를 봐서라도 용서해 달라고 했습니다. 조표의 이 말은 불에 기름을 부은 꼴이 됐습니다. 장비에게 있어서 여포는 죽이고 싶도록 미운 놈인데, 조표가 죽이고 싶은 놈의 장인이라니 술 취한 장비가 가만히 있겠습니까.
나는 원래 너를 때리지 않으려고 했는데, 네가 여포를 가지고 나를 겁주려고 하니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너를 때려야겠다. 내가 너를 때리는 것은 바로 여포를 때리는 것이다.
조표는 말 한마디 잘못해서 그야말로 치도곤을 당했습니다. 조표는 너무 분하고 원한에 사무쳤습니다. 그 밤으로 소패에 편지를 보냈습니다. 여포는 즉시 군사를 이끌고 서주로 왔습니다. 조표가 성문을 열어주었고 장비는 술에 취해 싸울 수가 없었습니다. 장비는 조표만을 죽이고 수십 명의 기병과 함께 원술과 대치 중인 유비에게로 갔습니다. 장비를 본 유비는 너무 놀라 한숨만 나왔습니다. 가까스로 마음을 진정시키고 말했습니다.
![유비의 첫 번째 부인인 감부인. [출처=예슝(葉雄) 화백]](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303/08/ab4fa353-4717-49e1-b41c-64d2d394467b.jpg)
유비의 첫 번째 부인인 감부인. [출처=예슝(葉雄) 화백]
얻었다고 기뻐할 것도 없고, 잃었다고 원통할 것도 없다!
형수가 성안에 갇혀 있다는 말에 관우가 펄쩍 뛰며 받아쳤습니다.
네가 당초에 성을 지키겠다고 했을 때 뭐라고 말했느냐? 형님께서는 또 뭐라고 당부하셨느냐! 그런데 이제 성도 잃고 형수님마저 그들 수중에 빠뜨려 놓았으니 어떡하면 좋으냐!
죽을죄를 지은 장비는 할 말이 없었습니다. 칼을 뽑아 자결하려고만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