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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집 토토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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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유성운 기자 중앙일보 기자
유성운 문화부 기자

유성운 문화부 기자

최근 런던에서 가장 큰 화제를 모은 공연을 꼽는다면 단연 뮤지컬 ‘이웃집 토토로’였다. 공연 한달 전에도 좋은 좌석을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다. 이 작품은 일본 지브리 스튜디오가 1988년 제작한 애니메이션이 원작이다. 한국에서도 인기가 높다. 이것을 뮤지컬로 만든 것은 일본이 아니다. 런던 로열 셰익스피어 컴퍼니다. 영국에서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유서 깊은 극단 중 하나다.

영국은 다른 나라 콘텐트를 가공해 우수한 문화 상품으로 내놓다. 2000년대 초·중반 런던을 가면 어디서나 4대 뮤지컬의 포스터를 볼 수 있었다. ‘캣츠’ ‘레 미제라블’ ‘오페라의 유령’ ‘맘마미아’가 그것이다. 이 작품들이 대성공을 거두면서 런던은 세계의 문화도시로 재도약할 수 있었다.

이웃집 토토로

이웃집 토토로

그런데 살펴보면 ‘캣츠’를 제외하면 딱히 ‘영국적 소재’라고 할 만한 것은 없다. ‘레 미제라블’과 ‘오페라의 유령’은 프랑스 소설이 원작이다. ‘맘마미아’도 스웨덴 그룹 아바(ABBA)의 노래들로 만든 작품이며 공간적 배경은 그리스다. 그렇지만 이 작품들은 영국의 대표적 문화상품이 됐고, 관광객들은 런던에 가면 한 번쯤은 봐야 할 작품으로 꼽았다.

이제 세계 문화의 최전선이 된 한국도 더 이상 한국적 소재에만 집착해야 할 필요는 없다. 간혹 작품 공모 요건을 보면 소재를 ‘한국적’ ‘전통’으로 제한하는 경우를 적잖게 본다. 하지만 『삼국지』나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처럼 인지도 높고 재미있는 소재가 있다면 일본, 중국 등 외국에서 가져와서 잘 만들면 된다. 그러면 한국 작품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