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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 축소판”…무명 아이돌에게 ‘피크타임’ 선사하는 오디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JTBC '피크타임'은 데뷔라는 목표를 이뤘으나, 충분히 빛을 보지 못한 보이그룹들에게 두번째 기회를 주는 서바이벌 예능이다. 사진 JTBC

JTBC '피크타임'은 데뷔라는 목표를 이뤘으나, 충분히 빛을 보지 못한 보이그룹들에게 두번째 기회를 주는 서바이벌 예능이다. 사진 JTBC

“‘망돌’이라 무시했던 사람들 입 다물게 하겠습니다.”

K팝 아이돌이 빌보드 차트를 밥 먹듯 오르내리고, 100만장 이상 앨범 판매고를 올리는 게 더는 뉴스도 아닌 시대다. 하지만 기대를 품고 탄생하는 그룹 가운데 우리가 ‘아이돌’ 하면 흔히 떠올리는 화려한 무대, 객석을 꽉 채운 팬들의 함성소리 등의 환희를 맛보는 이들은 극소수다. 숫자로 따지자면 매년 쏟아지는 30여팀의 보이그룹 중 2~3팀만이 살아남는 현실. 스스로를 ‘망돌’, 즉 ‘망한 아이돌’이라 자조하는 이들이 예능에 등장하게 된 것도 그래서다.

지난달 15일 첫 방송을 한 JTBC ‘피크타임’은 바로 이런 아이돌이 됐으나, 진정한 의미의 아이돌이 되지 못한 그룹들에게 두 번째 기회를 주는 서바이벌 예능이다. 피크(peak), 그러니까 절정의 순간에 아직 도달한 적 없는 남자 아이돌 그룹 20여팀이 3억원의 상금과 글로벌 쇼케이스, 앨범 발매 기회가 주어지는 최종 우승팀이 되기 위해 대결을 펼친다.

출연 그룹들은 갓 데뷔한 신인부터 이미 해체했으나 다시 뭉친 팀까지, 연차도 연령대도 다양하지만 하나같이 사실상 무명에 가깝다. 30호(이승윤), 63호(이무진) 등의 스타를 배출한 ‘싱어게인’ 시리즈 제작진이 다시 뭉쳐 이번엔 기존 팀 명 대신 1시, 2시, 3시 등 시간으로 이들을 호명한다. ‘싱어게인’의 남자 아이돌 버전인 셈이다. 그간 그룹에 속한 일부 멤버가 오디션에 출연해 새로운 팀으로 재데뷔하는 사례나, MBN ‘미쓰백’처럼 걸그룹 멤버들이 솔로로 겨루는 프로그램은 있었으나, 무명의 그룹들이 팀 명을 떼고 단체전을 벌이기는 ‘피크타임’이 처음이다.

JTBC '피크타임'. 사진 JTBC

JTBC '피크타임'. 사진 JTBC

쏟아지는 아이돌 서바이벌 중 하나겠거니 싶을 수 있지만, ‘피크타임’은 1~2회 연속 방송 직후 공식 홈페이지 서버가 다운될 정도로 아이돌 팬덤 사이에선 적잖이 화제 몰이 중이다. 16일까지 1차 글로벌 투표가 진행되는데, 투표 시작과 함께 팬들이 한 번에 몰리면서 홈페이지가 마비된 것이다. 시청률은 아직 0~1%대를 맴돌고 있지만, 2월 3주차 비드라마 화제성 순위(굿데이터코퍼레이션 집계)에서 1위로 처음 등장한 데 이어 4주차에도 2위를 차지했다. 커버가 어렵기로 유명한 동방신기의 히트곡 ‘주문’을 흠잡을 데 없이 재현한 3인조 팀 23시, 멤버 모두 각자 알바를 뛰면서 활동하고 있다는 5인조 팀 11시의 공연이 호평을 받으면서 이들 무대를 담은 여러 버전의 유튜브 영상은 합계 96만회, 67만회(7일 기준) 조회 수를 기록 중이다.

‘피크타임’의 흡입력은 투표를 동반한 여타 아이돌 오디션들이 그렇듯, ‘내 픽을 내 손으로 키운다’는 효능감에서 주로 비롯된다. 마치 발굴되지 못했던 보석 같은 아이돌을 나의 한 표를 통해 더 높은 순위로 띄우고, 빛을 보게 할 수 있다는 점이 프로그램에 대한 몰입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런 실력 좋은 팀이 왜 아직 못 떴는지 의문이다” “이 팀 때문에 투표 시작했다” 등의 SNS 댓글들이 그런 심리를 반영한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이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는 지점은 서바이벌 예능 특유의 자극적인 ‘악마의 편집’ 없이 각 팀이 지닌 실력과 사연만으로 시청자들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점이다. 기존 아이돌 육성 프로그램들은 참가자들끼리의 갈등을 극대화하는 편집을 마치 공식처럼 활용하고, 극적 재미를 위해 특정 출연자에게 서사를 몰아주고 나머지는 통편집하기 일쑤였다. 긴장감을 불어넣기 위한 심사위원들의 독설도 필수 요소였다.

JTBC '피크타임' 포스터. 사진 JTBC

JTBC '피크타임' 포스터. 사진 JTBC

‘피크타임’에도 이런 요소들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되레 밋밋하다 느껴질 정도로 최대한 자극을 배제하고 모든 팀의 무대를 찬찬히 보여주려는 편집 방향이 눈에 띈다. 여기에 일명 ‘알바돌’이라는 별명을 얻은 팀 11시처럼 아이돌이란 꿈을 지키기 위해 보이지 않는 노력을 해온 청춘들의 사연 하나하나가 담담하게 얹히면서, 목표를 이룬 뒤에도 끊임없이 달려야 하는 무한경쟁 사회를 사는 시청자들과 공감대를 형성한다.

김윤하 대중음악 평론가는 “‘피크타임’은 소속사와의 계약 분쟁 등 사회의 어른들이나 구조적인 문제 때문에 꿈을 저당 잡힌 청년들이 주인공이라는 점에서 한국의 축소판처럼 보인다”며 “이런 점에서 이 프로는 다른 아이돌 오디션보다는 ‘슈퍼스타K’ ‘싱어게인’ 등 현실적 문제로 꿈을 이루지 못한 이들에게 기회를 줬던 서바이벌과 좀 더 맥이 닿아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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