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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만에 튀어나온 '쪽지문'…택시기사 강도 살인범 검거 전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2007년 박모(30대)씨는 지인 A씨(30대)와 함께 강도 범행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둘은 박씨가 2000년 구치소에서 만나 친해진 사이였다.

7월 1일 폭우가 내리던 새벽. 박씨 등은 흉기를 들고 거리로 나섰다. 손님을 기다리던 흰색 택시를 발견한 이들은 흉기로 운전기사를 위협한 뒤 끈으로 양 손목을 결박해 뒷좌석으로 옮겼다. 운전기사가 결박을 풀면서 저항하자 박씨 등은 흉기로 운전기사를 17차례 찌르고 끈으로 목을 졸랐다. 운전기사가 숨을 거두자 택시에서 현금 6만원을 꺼낸 뒤 남동 IC 부근 수풀에 시신을 유기했다. 2.8㎞ 떨어진 미추홀구 주택가 골목길로 이동한 이들은 미리 준비한 불쏘시개를 이용해 택시에 불을 지른 뒤 자취를 감췄다.

박씨 등은 2007년 7월 1일 택시 운전기사를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한 뒤 택시를 훔쳐 몰다가 2.8㎞ 떨어진 미추홀구(당시 남구) 주택가에 버린 뒤 뒷좌석에 불을 지르고 도주했다. 사진 인천경찰청

박씨 등은 2007년 7월 1일 택시 운전기사를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한 뒤 택시를 훔쳐 몰다가 2.8㎞ 떨어진 미추홀구(당시 남구) 주택가에 버린 뒤 뒷좌석에 불을 지르고 도주했다. 사진 인천경찰청

경찰은 수사전담반을 만들고 탐문수사에 나섰지만, 수사는 난항을 겪었다. 택시에서 범인의 지문이 발견되지 않았고, 인근 폐쇄회로(CC)TV 영상은 화질이 좋지 않았다. 2016년 인천경찰청 중요미제사건 수사팀(미제 수사팀)이 사건을 넘겨받았지만, 진척이 없었다.

불쏘시개 속 쪽지문이 단서 됐다 

 인천경찰청 강력계 중요미제사건 전담수사팀은 16년간 미제로 남았던 택시기사 강도살인 범인들을 체포했다. 경찰은 강도살인 혐의로 박씨와 A씨를 각각 구속했다고 7일 밝혔다. 사진은 2007년 피의자들이 택시에 불을 지른 모습. 사진 인천경찰청

인천경찰청 강력계 중요미제사건 전담수사팀은 16년간 미제로 남았던 택시기사 강도살인 범인들을 체포했다. 경찰은 강도살인 혐의로 박씨와 A씨를 각각 구속했다고 7일 밝혔다. 사진은 2007년 피의자들이 택시에 불을 지른 모습. 사진 인천경찰청

미궁에 빠지는 듯했던 사건은 2021년 9월 1일 단서가 발견되면서 새 국면을 맞았다. 범인이 택시에 불을 지를 때 사용한 종이 불쏘시개에서 쪽지문(일부만 남은 지문 자국)이 발견된 것이다. 지문 검출 시약이 발달한 덕분이었다.

앞서 경찰은 범인이 크레도스 차량을 이용했을 것으로 보고 전국의 크레도스 차량 소유주를 추적해왔다. 방화 현장 인근 폐쇄회로(CC) TV 영상에도 흰색 번호판이 달린 검은색 크레도스 차량이 있었기 때문이다. 경찰은 과거 이 차량을 소유했던 이들을 전수 조사하면서 용의자를 압축해나갔다.

결국 지난해 10월 18일 경찰은 경기도에 거주하는 회사원 박모(40대)씨를 용의자로 특정했다. 범행 시점인 2007년 이 차량을 소유하고 있던 남성이었다. 경찰은 지난 1월 5일 강도살인 혐의로 박씨를 체포했다. 박씨는 “기억이 없다”는 취지로 범행 사실을 완강히 부인했지만, 경찰과 검찰은 지문 유전자 감정 결과 등을 토대로 박씨를 재판에 넘겼다.

공범 신상공개 검토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경찰은 박씨 외에도 공범이 있다고 확신했다. 범행 장소 주변 CCTV 영상엔 박씨로 추정되는 인물이 흰색 모자를 쓴 남성과 함께 도주하는 모습이 흐릿하게 담겨있었다. 경찰은 박씨의 주변인, 통신·금융거래내역을 토대로 인천에 사는 40대 남성 A씨를 공범으로 특정했다. 지난달 28일 체포된 A씨는 경찰 조사에서 “금품을 강탈할 목적으로 박씨와 사전 공모 후 범행에 필요한 물품을 미리 준비해 범행했다. 피해자가 저항한 데다 경찰에 신고할 것 같아 살해했다”고 혐의를 시인했다.

경찰은 8일 A씨의 신상 공개 여부를 심의할 예정이다. 경찰 관계자는 “박씨에 대한 신상공개도 검토했지만, 공범 수사 등 때문에 하지 못했다. A씨는 신상공개 요건에 부합해 신상공개위원회를 열기로 했다”며 “2007년 이후 이들의 추가 범행은 없는 것으로 현재까진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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