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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보다 효과 더 크지만"…'김만배 일당' 2070억 묶은 이 법

중앙일보

입력

7886억원에 달하는 대장동 개발이익 중 어디까지를 범죄수익으로 볼 수 있느냐가 대장동 사건의 숨은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대장동 2기 수사팀은 ‘공무원이 직무상 알게된 공공기관의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제3자에게 이익을 취하게 해선 안 된다’는 이해충돌방지법 규정(14조 1항)을 끌어와 지금까지 대장동 일당이 거둬들인 개발이익 전체를 범죄수익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범죄수익 환수를 위한 검찰의 집념을 두고 법조계에선 찬사와 우려가 엇갈리고 있다.

대장동 개발을 통해 올해 1월까지 7886억원의 개발이익을 일당들과 함께 벌어들인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 검찰은 김씨를 포함한 대장동 일당의 자산 2070억원을 특정해 동결했다. 연합뉴스

대장동 개발을 통해 올해 1월까지 7886억원의 개발이익을 일당들과 함께 벌어들인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 검찰은 김씨를 포함한 대장동 일당의 자산 2070억원을 특정해 동결했다. 연합뉴스

수사 패러다임의 변화 복판에 놓인 범죄수익환수

 “지금까지는 범죄를 저지른 사람에 대한 개인적인 처분에 주력을 해왔는데, 지금부터는 그것과 병행해 범죄수익을 국가가 환수하는, 대물적인 처분에 더욱 주력하는 새로운 수사 패러다임이 시작이 된다.”

 2018년 2월22일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이 산하에 범죄이익환수부를 출범시키면서 한 말이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 취임을 계기로 범죄수익환수부 또는 전담팀은 전국 검찰청에 속속 뿌리를 내리고 있다. 김도읍 국민의힘 의원이 법무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법원의 선고로 추징이 확정돼 집행 대상이 된 액수는 2019년 27조4965억원에서 2020년 30조6571억원, 2021년 30조9556억원, 지난해 31조3831억원으로 증가 일로다.

범죄수익환수 업무 경험이 있는 한 검사는 “범죄이익의 환수는 그 자체가 범죄자에 대한 응징과 정의의 회복이라는 형벌의 목적을 달성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구속을 두려워하지 않는 범죄자들을 압박해 입을 열게 하는 효과적 수단이 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검사는 “다중 사기 등 대형 재산범죄 피의자들에게는 돈을 찾아 빼앗는 게 구속보다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범죄수익 환수가 검·경의 업무로 정착한 것은 수사 기법으로서 효과가 있다는 점이 작용했다는 설명이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범죄수익 환수 확대가 낳은 쟁점들

 검·경의 범죄수익 환수 시도는 제도적으로 마약거래 방지법 등 5개 법률에 흩어져 있던 ‘기소 전 몰수·추징 보전’ 대상 범죄의 법적 근거를 지난해 1월 범죄수익은닉규제법으로 통일하면서 탄력이 붙었다. 이론적으로 법정형이 ‘장기 3년 이상 징역형’에 해당되는 모든 ‘중요범죄’에서 발생한 수익이라면 기소 전이라도 그 처분을 차단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대장동 일당의 7886억원에 붙은 꼬리표인 ‘이해충돌방지법 위반’(7년 이하의 징역 또는 7000만원 이하의 벌금)이 그 대상이 된 것도 이 개정법 때문이다. 검찰은 김만배씨 등을 압박하는 과정에서 대장동 일당이 이리저리 숨겨둔 개발이익들을 찾아내 총 7886억원 중 2070억원에 대해 두 차례에 걸쳐 법원으로부터 기소 전 추징 보전 결정을 받아냈다. 이에 대해 김만배씨 측은 “사업 추진 과정에서 불법이 포함됐다고 한들 5900여 세대를 지어 공급했는데 개발이익 전체를 환수대상 범죄수익이라고 보고 처분을 제한하는 게 말이 되느냐”는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김씨가 주변에 “200만원이 든 계좌도 다 뒤진다”고 하소연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이같은 불만 또는 우려는 김씨만의 것은 아니다. 부장검사 출신의 변호사는 “일부 범법 행위가 발견됐다고 해서 사업상 이익 전체를 동결하면 기업활동은 사실상 마비된다”며 “유·무죄가 판가름 나기 전에 종업원·채권자·주주 등 이해당사자들의 이익이 침해된다”고 말했다. 검사출신의 또 다른 변호사 역시 “개정된 범죄수익은닉규제법은 법적으로 불확실한 요소가 많은데, 이번에 대장동 수사팀이 시범 케이스로 적용해본 것 같다”고 분석했다.

법원도 섣부른 범죄수익 환수 시도에는 제동을 거는 모양새다. 지난달 수원지법 형사15부(재판장 이정재)는 반도체 세정장비 핵심 기술을 해외로 유출했다는 혐의를 받은 일당에게 유죄를 선고하면서도 범죄수익 추징을 선고하지 않았다. 기소 전 추징 보전 절차를 거쳤지만 최종적으로 “범죄행위로 얻은 재산을 특정할 별다른 자료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집행률 미비…일부선 “독립몰수제 시급”

 중간에 끼인 일선 검·경은 이중고를 호소하고 있다. 범죄수익환수를 담당하는 한 검사는 “피의자 혐의 입증만으로도 시간이 빠듯한데 법원이 범죄 수익 산정 자체를 까다롭게 요구한다”라고 말했다. 한 현직 경찰관은 “수사에 6개월을 소요했는데, 범죄수익환수 입증에 4~5개월이 걸린다면 배꼽이 배만큼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 결과 필연적으로 정의의 선택적 실현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변호사는 “언론 주목도가 높은지, 어느 검찰청에 배당됐는지, 검사가 어느만큼 관심을 보이는지에 따라 범죄수익환수 시도여부나 환수 결과가 차이가 나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추징 대상액은 늘지만 집행률은 지속 하락세(2019년 0.66%, 2020년 0.40%, 2021년 0.39%, 지난해 0.32%)라는 점도 문제다. 법원이 추징을 선고해도 납부하지 않고 버티는 경우도 허다한 데다, 민사 절차인 집행 영역에서 검·경의 의지로 그 성과를 끌어올리는 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최근 개정된 범죄수익은닉규제법이 일반법이기 때문에 초기 시행 과정에서 모호한 부분이 존재한다”며 “법규와 판례로 몰수·추징 대상 범죄의 범위가 현실화·구체화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웅석 서경대 교수는 “관련 범죄의 유·무죄 판단과는 별도로 몰수·추징에 대한 법원의 판단이 신속하게 내려질 수 있도록 하는 ‘독립몰수제’ 도입이 범죄수익 환수의 정당성과 실효성을 높이는 길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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