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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文정부땐 '양금덕법' 방치한 野…이제와 "尹, 양금덕 능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1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104주년 3.1절 범국민대회'에서 올해 94세의 강제동원 피해자인 양금덕 할머니가 참석해 일본 정부의 사죄와 배상을 촉구하는 발언을 경청하고 있다. 연합뉴스

1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104주년 3.1절 범국민대회'에서 올해 94세의 강제동원 피해자인 양금덕 할머니가 참석해 일본 정부의 사죄와 배상을 촉구하는 발언을 경청하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은 6일 일제 강제징용 피해배상 관련 정부 발표에 대해 “양금덕 할머니 등 강제동원 피해자를 능멸한 것”이라고 맹비난했다. 그러나 정작 문재인 정부 때 과반 여당이던 민주당은 ‘양금덕 명예회복법’(일제강점기 여자 근로정신대 피해자 보호 및 지원법)을 국회 상임위에 상정하지 않은 채 방치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양금덕 명예회복법은 20·21대 국회에서 각각 한 차례씩 발의됐지만 여야 논의는 한 번도 없었다. 2019년 당시 김동철 국민의당 의원이 처음 발의했지만, 집권당이던 민주당의 무관심 속에 국회 여성가족위원회에 상정되지 못한 채 20대 국회 임기 종료로 자동 폐기됐다. 21대 국회 개원 초기 민주당 윤영덕 의원이 이를 재발의했지만, 정권이 바뀐 지난해 9월에야 상임위에 상정됐다.

일명 양금덕 명예회복법은 양 할머니와 같은 근로정신대 피해자를 국가의 지원 대상으로 지정하고 명예회복을 위한 기념사업 및 실태조사를 보장하는 내용이다. 근로정신대는 일제에 끌려가 강제노역을 제공한 여성들을 일컫는 것으로, 성 착취를 당한 위안부와는 다르다. 2018년 대법원이 일제 강제 징용 배상을 확정판결한 원고 15명 가운데 5명이 양 할머니를 비롯한 나고야 미쓰비시 근로정신대 피해자들이기도 하다.

104주년 3.1절인 1일 오전 서울광장에서 열린 서울시민 평화인권훈장수여식에서 강제동원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와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가 손을 잡고 인사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104주년 3.1절인 1일 오전 서울광장에서 열린 서울시민 평화인권훈장수여식에서 강제동원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와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가 손을 잡고 인사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해방 후 위안부 피해자로 오인당한 이들은 사회적 멸시와 가정불화 등을 겪어야 했다. 양 할머니는 지난해 9월 박진 외교부 장관에게 보낸 서신에서 "그때는 근로정신대가 뭔지도 몰랐다. 결혼해서도 하루도 편한 날이 없이 남편의 구박을 들었고, 시장에 나가면 사람들이 몇 놈이나 상대했느냐고 놀렸다”고 썼다.

이런 탓에 2004년 노무현 정부가 강제동원 진상규명에 착수했을 때 근로정신대 피해자들은 스스로 동원 사실을 감췄고 피해 실상이 제대로 수집되지 못했다. 이들을 위한 별도의 지원책이 필요하다는 논의가 시작된 배경이다.

국회 관계자는 “20대 국회에선 양 할머니를 비롯한 피해자들이 기자회견도 열었지만, 민주당은 일절 관심을 두지 않았다”며 “21대 국회에서도 민주당은 ‘노란 봉투 법’ 등 노조 지원법을 강행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강제 징용 피해 생존자가 워낙 소수여서 그런지 정치권의 관심 밖이었고, 그 결과 법안소위에서 한차례도 논의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해 12월 28일 광주 서구 주택가에서 최근 국민훈장 서훈이 취소된 일본 강제동원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를 예방하고 있다. 뉴스1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해 12월 28일 광주 서구 주택가에서 최근 국민훈장 서훈이 취소된 일본 강제동원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를 예방하고 있다. 뉴스1

이랬던 민주당 지도부가 양 할머니와 함께 각종 행사장에 나타나기 시작한 건 최근 일이다. 지난해 12월 외교부의 제동으로 양 할머니에 대한 국민훈장 서훈이 무산된 직후, 이재명 대표는 할머니와의 면담을 바로 추진했다. 이 대표는 1일에도 한 시민단체가 개최한 ‘제104주년 3·1 범국민대회’에 참석해 양 할머니의 손을 붙잡고 “할머니, 끝까지 싸우겠습니다”라고 강조했다.

양 할머니가 이날 정부 발표에 대해 “동냥처럼 주는 돈은 받지 않겠다”고 밝히자 최근 야권에서 결성된 ‘강제동원 사죄 촉구 의원모임’은 “정부 발표는 ‘일본의 사죄와 전범 기업의 배상 없는 돈은 굶어 죽는 한이 있어도 받지 않겠다’는 양금덕 할머님 등 강제동원 피해자의 절규를 철저히 무시하고 능멸한 것”이라는 입장문을 내기도 했다.

1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104주년 3.1절 범국민대회'에서 강제동원 피해자인 양금덕 할머니(왼쪽 두번째)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왼쪽 네번째) 등 참석자들이 만세삼창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1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104주년 3.1절 범국민대회'에서 강제동원 피해자인 양금덕 할머니(왼쪽 두번째)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왼쪽 네번째) 등 참석자들이 만세삼창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미쓰비시 근로정신대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가 지난달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일본의 강제동원 사죄와 전범기업 직접배상 촉구 의원 모임에서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등 참석 의원들과 함께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스1

미쓰비시 근로정신대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가 지난달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일본의 강제동원 사죄와 전범기업 직접배상 촉구 의원 모임에서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등 참석 의원들과 함께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스1

전문가들은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꼴”이라고 지적한다. 정혜경 일제강제동원·평화연구회 대표연구위원은 “국내에서 꾸준히 강제동원 관련 진상을 규명하고 피해자를 지원했어야 일본과의 협상 때도 명분이 생기는 것 아니겠나”며 “여야를 막론하고 그런 노력은 등한시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뒤늦게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정파적으로 소비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도 “강제동원은 일종의 폭탄 돌리기였다. 전 정부 누구도 해결하려 하지 않았고, 한·일 관계가 경색된 채 방치돼왔다”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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