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단독] 지방의료원 20곳 휴진…여긴 '연봉 4억'도 못주는 까닭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4면

전라남도 강진의료원은 신경과 환자를 못 본다. 의사를 구할 수 없어 해당 과를 휴진하고 있다. 정기호 의료원장은 “사실상 1년간 폐과하고 있다”라며 “봉직의(페이닥터)를 구하려는데 쉽지 않다”라고 했다. 정 원장은 “시골이라 나이 든 분이 많고 치매나 혈관 질환 등 노인성 질환 환자가 꽤 많다”라며 “가벼운 질환은 내과, 외과에서 진료하지만 진행된 경우라면 목포한국병원과 전남대병원 등으로 환자를 보낸다”라고 말했다. 노인 백내장 환자가 많은데 안과도 전문의가 없어 진료를 할 수 없다.

전국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35곳 지방의료원 절반이 강진의료원처럼 일부 진료 과목 의사를 구하지 못해 휴진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지방의료원은 각 지방에서 지역 거점 공공병원 역할을 맡는데, 만성적인 구인난에 시달려 의료 공백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의사 부족 심각…필수과 진료도 불안 

6일 중앙일보 취재팀이 전국 35곳 지방의료원을 전수 조사하고, 김원이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각 지자체로부터 받은 자료를 종합하면 의사 미채용으로 일부 진료과의 진료를 중단한 의료원은 20곳(57.1%)에 달한다. 전문의를 못 구해 다른 과 전문의나 공보의가 대신 진료하는 곳을 포함하면 더 많은 의료원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대구·목포·안동·강진 등이 가장 많은 4개 진료과목을 휴진하고 있다. 안동의료원 관계자는 “소아청소년과에 봉직의 1명이 있었는데 코로나19가 터진 뒤 나갔다”라며 “구인을 해도 사람이 오지 않아 2020년 12월 말 이후 휴진 중인 상태”라고 했다. 신장내과 전문의는 지난해 4월 1일부터 공석이다. 인공신장실을 운영하지 못해 투석 환자를 볼 수 없다. 외과도 위태롭다. 의료원 관계자는 “공보의가 대체하고 있다”라며 “다른 과도 의료진이 언제 그만둘지 몰라 늘 불안하다”라고 했다. 이비인후과·재활의학과·가정의학과 등 3곳 문을 닫고 있는 충주의료원 측은 “연간 의사 공고료만 700만~800만원이 나온다”라면서 “365일 공고를 하는데 의사들이 오지 않으려 해 답답하다”고 했다. 순천의료원은 지난해 10월 외과 의사를 겨우 뽑았는데 4개월 만에 그만뒀다. 환자가 오면 일단 정형외과에서 진료를 보되 수술이 필요하면 환자에 타병원으로 옮겨가도록 안내한다.

 대구의료원. 뉴스1

대구의료원. 뉴스1

이 의료원 관계자는 “일반 공고로는 모집이 잘 안 돼 메디게이트(의사 구인 사이트)에 일주일에 33만원을 주고 유료 공고를 내는데도 지원 문의가 오지 않는다”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심평원(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3개월의 채용 기간만 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구해야 한다”라며 “기간 내 의사를 못 구하면 현재 종합병원인데 병원급으로 내려가 수가가 하락할 위기“라고 털어놨다. 현행 의료법상 100~300병상 종합병원은 내과·외과·소아과·산부인과 중 3개 진료 과목을 포함해 7개 이상 진료 과목을 갖추고 전문의를 두도록 한다. 의료원 측은 연봉을 높여 다시 공고를 낼 계획이다.

공보의 중심 진료도

진안의료원은 휴진 중인 과는 없지만, 응급의학과 전문의 확보가 어려워 2020년 3월부터 3년째 소아과, 성형외과, 흉부외과, 신경과, 신경외과를 전공한 5명의 공보의가 진료를 본다. 이 의료원 관계자는 “심각한 중증 환자가 아니면 처치가 가능하지만, 응급실에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지역 주민들 의견이 있다”라며 “공보의를 응급의학과 전문의로 골라 받을 수 없으니 애로가 크다”고 전했다. 전문과가 아니라 혹여나 응급 상황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할 수 있단 우려가 나온다.

최근 연봉 4억원대라는 파격 조건을 내걸어 화제가 된 속초의료원처럼 마냥 몸값을 올려 채용에 나서기도 쉽지 않다. 조승연 인천의료원장(전국지방의료원연합회장)은 “속초는 다급하니 그랬겠지만 공공병원은 정보가 다 공개돼 있어 특정 의사만 월급을 두배, 세배 줄 수 없다”라고 했다. 설사 그렇게 뽑는다 해도 경영 악화 등의 문제로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게 의료원들 설명이다.

아무리 페이가 높아도 열악한 정주 여건, 높은 근무 강도 등이 기피 요인으로 꼽힌다. 경상북도 한 지방의료원의 30대 공보의는 “페이가 아무리 높아도 배우자의 직업을 포기하고 자녀의 열악한 교육 환경을 감수할 만큼은 아닌 것 같다”라고 했다. 이 공보의는 “여기 있는 전문의는 두 부류”라며 “아예 자녀를 다 키운 뒤 시골 생활을 누리고 싶은 나이 많은 의사, 아니면 주말 부부하는 젊은 의사”라고 했다. 그는 자신의 주거래 은행 지점, 휴대폰 AS센터가 없어 인근 다른 지역을 찾아야 할 만큼 지방 생활이 불편하다고 전했다. 전공의 부족으로 1,2명의 전문의에 업무 부담이 쏠리는 것도 문제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정기호 강진의료원장은 “군 단위 의료원은 정거장 같다”라며 “머물다가도 조건이 맞으면 다른 도시로 금방 옮기기 때문에 의사를 채용하는 데 항상 어려움이 많다”라고 했다.

수도권 의료원도 어려움…간호직 이탈도 심해

특히 코로나19 이후 감염병전담병원으로 지정되며 일반 환자를 못 보게 된 점이 이탈을 부추긴 요인이 됐다. 성남시의료원 관계자는 “의사들이 수술감을 잃지 않기 위해 수술하는 병원을 찾아간 상황”이라고 했다.
서울의료원의 경우 의사 구인에는 문제가 없지만 간호직 이탈로 총 655개 허가 병상 중 200병동을 못 열고 있다. 코로나19 때 민간 간호사와의 임금 격차 현실이 드러나면서 베테랑인 중견급 간호사가 많이 떠났다는 게 의료원 설명이다.

김원이 의원은 “지방의료원은 지역 주민을 비롯해 의료급여환자 등 저소득층을 위한 공공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이라며 “전국에서 유일하게 의대가 없는 전남의 경우, 지역 내 의사 양성이 불가능해 의료 공백이 더욱 심각하다. 의대를 신설하고 특정 지역에서 10년간 의무 근무하도록 하는 지역의사제를 추진해야 한다”고 했다.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성남시의료원의 모습. 뉴스1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성남시의료원의 모습. 뉴스1

수가나 의사 수련 문제, 정주 여건 개선 등을 위한 정부 정책이 필요하겠지만 단기적으로는 인력 보충을 위해 퇴임한 의대 교수 등 시니어 의사를 활용하잔 의견도 나온다. 임준 서울시립대 도시보건대학원 교수(의료관리·예방의학)는 “정년하는 교수들 가운데 지역 출신도 있을 거고 선호하는 곳이 있을 것”이라며 “응급실 당직 등은 힘들지 몰라도 부족한 인력을 보충한다는 개념에서 원하면 대한의사협회와 매칭해 배치하자는 것”이라고 했다.

코로나19 회복도 더뎌…병상 절반도 가동 못해

한편 코로나19 회복이 더딘 점도 의료원 어려움을 가중하고 있다. 전국지방의료원연합회 측에 따르면 35곳의 1월 말 기준 병상이용률은 42.9%에 그친다. 병상 절반도 채 가동이 안 되는 것이다. 코로나19 이전 80% 이상을 유지하던 것에 비하면 턱없이 낮은 수치다. 정부가 손실보상금을 지급했지만 거의 바닥나고 경영 악화가 이어지면서 의사 임금 체불까지 우려하는 의료원도 있다.

2020년 부산의료원 선별진료소에서 의료진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중앙포토.

2020년 부산의료원 선별진료소에서 의료진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중앙포토.

조승연 의료원장은 “메르스 때를 고려하면 회복에 4, 5년 걸릴 것이란 예상도 있는데 정부의 대책이 없다”라며 “공공병원은 민간처럼 구조조정을 할 수도 없고 전쟁이 없어도 동원할 군대를 늘 갖춰야 한다. 의료원들의 정상 운영을 정부가 지원해야 한다”고 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