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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초저출산의 덫에서 빠져나오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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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조영태 서울대 인구학 교수

조영태 서울대 인구학 교수

2022년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이 또다시 기록을 경신했다. 그런데 출생 관련 기록 경신은 합계출산율만이 아니다. 출생아 중 수도권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차지하는 비율도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2020년에는 약 27.2만 명의 신생아 가운데 수도권에서 51.9%가 태어났다. 26만여 명이 태어난 2021년에는 그 비중이 52.4%였다. 24.9만 명이 태어난 2022년 수도권 출생은 53.1%에 달했다. 이제는 태어나는 신생아들마저 수도권에 더 집중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럼 53.1%는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난 결과일까. 그럴 리 만무하다. 오늘 인구 현상의 많은 부분은 과거에 결정된 결과로 나타난다. 지금 자녀를 출산하는 주된 연령대인 30대 초반에 있는 인구는 1990년경 태어났다. 놀랍게도 이들 가운데 49.0%가 이미 수도권에서 태어났다.

초저출산 해결 특단 조치란 없어
최소 5~10년 내다보는 시각 필요
정부나 지자체 역량으로는 한계
청년층 참여 스타트업 육성 필요

지난 30여 년 동안 수도권 출생 비중이 49.0%에서 53.1%로 증가했는데,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 사실 이 질문에 대한 답도 거의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다. 2030년대 중반에 자녀를 낳아 줄 사람들은 2000년대 초반에 태어났는데, 2003년생부터 수도권 출생 비중은 50%를 넘어섰다. 가뜩이나 태어나는 아이의 수도 적은데, 그마저도 수도권에 집중되면 지역에서 아이를 낳고 기르기가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이미 산부인과 하나 없는 기초 지자체가 수두룩하다. 그렇게 되면 자녀를 낳아 기르고 싶은 사람들은 수도권으로 몰리게 되고, 수도권 출생 비중은 더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안타깝지만 이 속도대로라면 2030년대 중반에는 60% 가까이 수도권에서 태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수도권 출생아 비중이 높아지면 앞으로 태어날 아이들의 수에도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잘 알려져 있듯 언제나 서울의 출산율은 전국에서 가장 낮다. 도 단위에서 보면 경기도의 출산율도 다른 도에 비해서 낮다. 결국 태어나는 아이들이 수도권에 집중되면 수도권의 낮은 출산율로 인해 미래의 출생아 수가 예상보다 더 줄어들게 된다. 악순환의 반복이다.

필자는 오래전부터 우리나라가 겪고 있는 초저출산 현상의 근본적인 원인으로 인구, 특히 청년 인구의 수도권 집중에 주목해 왔다. 대학도 소위 ‘인(in) 서울’ 대학 혹은 수도권 소재 대학에 가야 하고, 직장도 수도권에서 구해야 하는 수도권 일극화 현상이 청년들이 느끼는 경쟁감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극도로 높여왔다, 내 앞가림이 어려우면 결혼하고 자녀를 낳는 일은 뒤로 미루는 것이 자연스럽다.

합계출산율 0.78이 발표되자, 수많은 언론에 당장 효과를 볼 수 있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글들이 실렸다. 대통령도 직접 이 문제를 챙기겠다고 했다. 그런데 아무리 대통령이 직접 챙겨도 1, 2년 새 갑자기 초저출산 덫을 빠져나갈 특단의 조치는 없다. 그런 것이 있었다면 지난 20년 동안 출산율이 이렇게 떨어지지도 않았을 거다.

그럼 해결책이 아예 없다는 것인가. 그렇진 않다. 우리나라 초저출산 현상의 해결을 위해 세 가지를 제안한다.

첫째, 지금부터라도 초저출산에 대한 근시안적인 정책을 쫓는 일은 그만두어야 한다. 출생아 중 수도권 비중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오늘의 인구 현상은 한 세대 전 인구에 배태된 결과다. 초저출산 대응책을 비롯한 인구 정책이 단기간에 효과를 보기 어려운 이유다. 대통령이 직접 챙겨야 할 인구정책은 최소한 5~10년 뒤에 효과를 볼 수 있는 정책이 되어야 한다. 그 중심에 수도권 일극화 해소가 놓여야 함은 말할 것도 없다.

둘째, 청년들의 가치관이 다양해진 만큼 결혼과 출산을 원치 않는 가치관을 인정하면서도 자녀를 원하는 사람들에 대한 정책은 (비록 출산율에 주는 효과가 크지 않더라도) 더 강화해야 한다. 출산 연령이 매년 높아져 난임 시술과 같은 의학적 지원의 필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커졌다. 또 물가가 오르면서 다자녀 양육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져 다자녀 가구에 대한 정책 강화도 절실하다. 예컨대 현재 다자녀 지원은 셋째 이상만 대상으로 하는데, 첫째와 둘째도 동시에 혜택을 받게 하는 식의 정책적 적극성이 필요하다.

셋째, 인구문제 해결에 민간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결혼하지 않거나 출산하지 않는 이유와 맥락은 사회가 다원화된 만큼 이제는 개인마다 다르다. 그 다양성을 중앙정부나 지자체가 정책으로 모두 담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만일 저출산과 관련되는 다양한 문제를 민간이 접근한다면 문제 하나하나를 대상으로 삼으면서, 동시에 이윤도 추구할 수 있는 스타트업이 나올 수 있다. 이미 얼마 전 스타트업을 발굴 육성하는 한 투자회사가 실시한 인구문제 해결형 스타트업 공모에 수많은 청년이 ‘인구문제는 우리의 문제이기에 우리가 가장 잘 해결할 수도 있다’며 도전장을 내기도 했다. 기업의 참여는 정책 아이디어 고갈에 허덕이고 있는 정부에게도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조영태 서울대 인구학 교수